홍석현 “과거사 문제에 반성·사죄 표현을 안 썼는데…” 기시다 “역대 내각 계승 입장은 흔들리지 않을 것” [기시다·홍석현 특별대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특별대담은 11일 오후 도쿄 총리공저에서 진행됐다.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 12년 만에 복원된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한·일 정상회담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예상보다 일찍 방한했다. 어떤 마음으로 조기 방한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한·일 관계 개선을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지원사격이랄까, 혹은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닌가. 윤 대통령과 ‘케미’가 잘 통하는 것 같다.
▶기시다 일본 총리=지난 3월 윤 대통령이 제시한 결단력과 행동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일·한 관계 강화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뜻을 저도 공유하고 있다. (5월 19~21일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전에 기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기에 방한하게 됐다.
■ 12년 만의 셔틀외교 복원 의미
「 “총리와 윤 대통령 케미 잘 통하는듯”
“윤 대통령의 결단·행동력에 경의”
“징용 변제안에 일본 기업 참여는”
“민간기업 대응은 언급 삼가고 싶다”
“오염수 공동검증 필요하지 않나”
“한국에 악영향 주는 방류 안할 것”
」
▶홍 회장=한국에선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어떤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했다. 총리는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수많은 분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내놓은 표현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 조율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결정했나.
▶기시다 총리=기자회견에서 역사 인식에 대해 (일본) 정부의 지금까지 입장을 밝힌 후에 말씀드렸다. 이것은 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린 것이다. 당연히 한국 측과 사전에 조율한 것이 아니다.
▶홍 회장=그럼에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란 표현을 기다렸던 한국 국민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혹시 이 표현을 쓰지 않는, 아니면 쓰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기시다 총리=이번 회담에서도 1998년 10월 발표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 이런 일본 정부의 입장에 추가해 제 자신의 생각을 저 자신의 말로 솔직히 말씀드린 것이다. 이 같은 제 자세와 생각에 대해 많은 분이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홍 회장=윤 대통령과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추모하겠다고 발표했다. 양국 정상이 이곳을 참배하는 건 최초의 일로,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깊은 의미가 있다. 한국의 요청이었나, 아니면 총리의 결심에 따른 것인가.
▶기시다 총리=윤 대통령이 방문할 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 자신 히로시마 출신이고, G7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먼저 윤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뜻이 일치해 위령을 하기로 했다. 의미 있는 참배가 됐으면 한다.
▶홍 회장=이번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가 본궤도에 오르는 상징적인 만남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한국 내에선 지난 3월 강제징용 해법 발표 이후 일본 측의 호응 조치가 뒤따라야 양국의 미래 협력 기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여론이 있다.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제3자 변제안’과 관련,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봐도 되나.
▶기시다 총리=일본은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에 대해 2018년 대법원 판결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윤 대통령을 일본에 모시고, 저 자신도 한국을 방문하는 가운데 안보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또 전향적인 노력이 이미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개별적인 민간 기업의 대응에 대해선 정부로서 코멘트하는 것은 삼가고 싶다.
■ 민간 협력 강화
「 “영향력있는 현인회의 발족했으면”
“관계개선 선순환 더 가속화 기대”
」
▶홍 회장=양국 여론 동향이나 국민 간의 상호 부정적인 인식을 감안할 때 민간 차원에서도 여론을 관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저도 4년 전부터 한국의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지식인과 전문가 80여 명이 참여하는 ‘한일비전포럼’을 운영하면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 양국에서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민간 그룹이 힘을 합쳐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복원하고 1000년의 반석 위에 올려놓을지 토론하며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 ‘한·일 현인회의’를 발족시켰으면 하는데, 총리께선 어떻게 생각하나.
▶기시다 총리=각계각층의 지적 교류, 인적 교류가 보다 더 활발히 이뤄짐으로써 관계 개선의 선순환이 더 가속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기대한다. 양국 정부의 각 레벨이 민간 협력을 뒷받침하며, 양국이 함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진행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한·일 관계와 후쿠시마 오염수
▶홍 회장=양국 관계는 과거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을 맞는 가을께에 이에 비견될 ‘윤석열-기시다, 기시다-윤석열 선언’을 기대해 봐도 되나. 1963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양국 간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맺은 ‘엘리제 조약’이 상기된다.
▶기시다 총리=일본과 한국, 그리고 일·한·미 간 협력이 지금보다 더 중요한 시기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려고 한다. 향후 구체적인 외교 일정이라든가, 회장이 말씀하신 성과(윤석열-기시다 선언)에 대해 현 상태에선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번 방한을 통해 윤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고 지역 정세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국제사회가 직면한 제반 문제에 대해 협력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긴밀한 연대를 통해 양국 간의 구체적인 협력관계를 진전시키고, 이를 적절한 형태로 발신해 나가려고 한다.
▶홍 회장=대형 사고가 난 원전에서 나온 물을 방류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안전의 문제에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할 수 있지만 ‘안심’의 문제는 다른 이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 전문가의 현장 시찰단 파견을 수용했는데, 한국에선 그냥 단순한 시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총리께선 지난 서울에서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형태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혹시 한·일 공동 조사, 공동 검증까지도 받아들일 생각이 있나.
▶기시다 총리=일본은 원자력 분야의 국제적인 권위가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리뷰(review·조사)를 받으면서 높은 투명성을 갖고 과학적 근거에 따른 성실한 설명을 해 오고 있다.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과 한국 국민의 건강,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형태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이번 시찰은 일·한 양측이 IAEA의 권위를 공통의 전제로 하고 있다. IAEA의 리뷰와 알프스(ALPS·다핵종 제거 설비) 처리수 분석에 한국 전문가와 한국 기관이 각각 참가해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이에 더해 한국 전문가 현지 시찰단 파견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과학적 근거에 따른 설명을 함으로써 ALPS 처리수 해상 방류의 안전성뿐 아니라 ‘안심’에 대해서도 한국분들의 이해를 심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경제안보 협력
▶홍 회장=양국 기업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다. 양국 공동으로 대응할 의향이 있나.
▶기시다 총리=반도체나 배터리의 공급망 강화를 위해선 뜻을 같이하는 국가, 지역과 함께 연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미·한 3개국은 이 같은 분야에서 중요한 파트너다. 서로의 강점을 존중하고 서로 보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한·일 경제안보 협력
「 “미 IRA·반도체법, 한·일 모두 영향”
“한·미·일 서로 존중하고 보완해야”
“과거처럼 반도체 협력 가능할까”
“한·일 연계해 공급망 강화 중요”
“G7·쿼드에 한국 가입 반대하는지”
“회원국 확대 논의해 본 적 없다”
」
▶홍 회장=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관련해 미·일 간 협력이 구체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한·일 간 협력이 활발히 이뤄졌다.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개발 협력을 위한 한·일 양국의 ‘반도체 동맹’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나.
▶기시다 총리=반도체 분야에선 일본 기업의 제조 장비와 부품·소재 등을 활용해 한국 기업이 반도체를 제조하고, 그것을 일본 기업이 활용하는 호혜적인 공급망이 구축돼 있다. 자율운전 실현, IoT(사물인터넷) 단말기 다양화, AI 활용 확대 등을 위해선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 확보가 필요하며, 세계 유수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양국이 연계해 공급망 강화를 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쌍방향의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도 연계하면서 검토하고자 한다.
G7 정상회의와 북한 문제
▶홍 회장=총리께선 납치 문제를 포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북한과의 회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시다 총리=일·북 평양선언에 따라 납치, 핵·미사일 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저 자신 조건 없이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각오가 있다.
■ 북한과의 관계
「 “김정은과 대화 의사 표명했는데…”
“핵·납치 문제 해결 위해 만날 각오”
」
▶홍 회장=한국 내에선 G7에 한국이 새롭게 들어가 ‘G8(주요 8개국)’을 만드는 데 미국은 찬성하지만 일본이 반대한다는 시각도 있다.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의체)도 마찬가지다.
▶기시다 총리=G7 내에서 회원국 확대 논의를 지금까지 해 본 적이 없다. 미국은 찬성이고, 일본은 반대라는 구도는 사실이 아니다. 또 쿼드의 경우, 현재 네 나라 사이에서 실천적 협력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로) 참가국 확대를 위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떤 논의가 진행될지 예의주시하겠다.
대담을 마친 기시다 총리는 “귀중하고 유익한 질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 레벨과 분야에서 의사소통하는 것이 양국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귀중한 조언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 회장이 “두 정상이 이번에 좋은 케미를 만든 만큼 앞으로도 이 좋은 기회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하자 기시다 총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특별취재팀=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서승욱 논설위원, 이영희·김현예 도쿄특파원, 김상진·전민규 기자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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