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판사의 자격
판사 제도 도입한 국가 생겨나
인간과 AI 판사 중 선택 묻는
우리 여론조사에서도 AI 택한
비율 많아 판사 역할 생각케 해
대법원의 판사 임용절차 개선
추진은 반가운 일… 법률 역량
외에 인성·성실·소통·공정 등
국민이 바라는 자질 중요해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로스인텔리전스’가 제작한 로봇 변호사 ‘로스(ROSS)’는 미국의 대형 로펌에 채용돼 파산 사건 관련 판례를 수집·분석하는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 다른 미국 업체인 ‘렉스 마키나’는 기존의 소장과 판결문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사건에서 어떤 판결이 선고될지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픈AI가 만든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응시자 상위 10% 정도의 성적을 보였다고 한다.
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이 올해 2월부터 AI 양형정보시스템을 전면 가동했다. 2011년부터 재판 기록에 나타나는 양형 사유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AI를 이용한 분석을 통해 유사사건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2019년부터 소가 7000유로 이하의 민사소액 재판에 대해 AI 판사 제도를 시범도입하고 있다. 전 국민의 의료, 재산, 납세 정보 등 디지털 자산을 기초로 구축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간단한 사건은 사람이 아닌 AI 판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AI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그 이용이 대중화되면서 AI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 AI 시대에 가장 살아남기 어려운 직업이 무엇인지 이야기된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사건에 관한 판결이 선고되면 여지없이 AI 판사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리서치의 2020년 여론조사에서 AI 기술이 발달해 AI 판사 제도가 도입된다고 가정할 때 만약 자신이 재판받는다면 인간 판사와 AI 판사 중 누굴 선택할 것인지 물어본 결과 인간 판사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39%인데 비해 AI 판사를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48%에 이르렀다고 한다. AI 판사를 선택한 사람들은 과연 판사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대법원이 신임 법관 임용절차에서 법률서면 작성평가 폐지를 비롯한 임용절차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법관 임용절차에서는 먼저 법률서면 작성평가를 실시하고,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제 사건에 기반한 민형사 기록을 검토하고 답변하는 실무능력평가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임용 지원자에 대한 평판조회와 인성면접 등의 절차가 함께 시행되고 있지만 법률서면 작성 및 실무능력평가 결과가 실제 법관 임용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평가기준으로 자리하고 있다. 과거 사법시험 시대와 마찬가지로 누가 더 공부 잘하고 똑똑한지 보겠다는 것이다. 신임 법관 임용에서 서면 작성과 실무면접 결과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전국의 지방변호사회는 매년 회원들을 상대로 한 법관 평가 결과 우수법관과 하위법관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우수법관에 대한 변호사들의 선정 이유는 대체로 사건 쟁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예단 없이 재판을 진행하며, 친절하고 품위 있는 언행으로 소송관계인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면서도 신속·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반면 소송관계자에 대한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진행, 독단적이고 불합리한 소송 지휘, 사건에 대한 면밀한 파악 없는 상태에서의 부실한 재판 진행과 판결, 예단과 선입견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재판하거나 예의 없는 언행으로 모욕을 주는 행위, 자백을 강요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소송 진행 등이 두드러진 경우에는 하위법관으로 평가받았다. 변호사를 상대로 한 조사 결과이기는 하나 우리 국민이 원하는 판사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대법원이 뒤늦게나마 지금의 법관 임용절차 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사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법률적 역량은 판사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일 뿐이다. 국민이 바라는 판사의 자질로 볼 때 이른바 ‘공부 잘하는 판사’인지 여부가 전부가 아니다. 법적 판단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그 이후 절차는 오히려 원·피고가 제출하는 서면과 자료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밀하게 살필 줄 아는 꼼꼼함과 성실함, 재판에 참여한 소송관계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공감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능력, 예단을 갖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며 소송관계자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열린 마음, 친절하고 품위 있는 언행과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판사의 자격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해도 너무한 캠핑카 ‘알박기’…제주 해변 주차장 유료화
- “아빠의 인스타 팔로우,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사연뉴스]
- ‘20분간 女3명’ 성폭력 시도한 30대 구속 송치
- 놀이터 흔들의자 철제 기둥 뽑혀…10대 남학생 사망
- ‘구독자 25만’ 한국女 BJ, 캄보디아서 시신으로 발견
- 20분동안 ‘덜덜’… 33명 탄 롯데월드 놀이기구 멈춰
- “발 각질 만지고 커피 제조”…결국 ‘사과문’ 낸 커피점
- “카페에 프린터기 들고 온 손님은 6년 만에 처음 봅니다”
- “학생이 성폭력” 거짓말한 초등학교 담임교사, 당국 철퇴
- ‘한산모시 치마’ 입고 문화제 참석한 김건희 여사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