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의 트렌드터치] 질문을 디자인하라
‘노비 또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그처럼 대대로 천한 일을 해서 되겠는가?’ 이는 놀랍게도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 과거시험 문제였다. 마지막 관문인 대과시험의 출제자는 왕이었고 이는 세종이 낸 문제였다. 공기처럼 당연하던 신분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보도록 한 이 질문은 최고 5만 대 1의 극한 경쟁률을 자랑하던 급제의 수준을 보여준다. 해석적이고 사색적인 질문의 결정판으로서 탄탄한 지식과 지혜에 더해 창의성와 주도적 사고력을 두루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
「 정답사회 아닌 질문사회 성큼
‘어떻게’보다 ‘왜’가 더욱 중요
좋은 질문이 파괴적 혁신 불러
불확실한 경영환경 대비해야
」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사자성어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는 뜻으로 질문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나 상황에 사용된다. 여태껏 우리 사회는 현답(賢答)을 찾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기존 논리가 더이상 통하지 않고 신기술의 향연 속에 파괴적 혁신이 줄줄이 탄생하며 사람들의 인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 오늘날 답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질문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주입식 암기교육에서 기인한 ‘정답사회’의 한계가 명확했던 대한민국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성숙해지며 질문이 더 중요한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래야 할 것이 정답자판기 챗GPT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문(愚問)은 고맙게도 우리의 생각을 자극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당황스러운 질문, 금기를 건드려 생각이 익숙지 않은 질문이 사고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체 구조상 절대 하늘을 볼 수 없는 돼지가 뒤로 넘어졌을 때 처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예측하지 못한 실수가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하는 아이러니함은 잠든 사고력을 깨우는 우문의 힘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유지되어온 전통을 자랑하는 대입자격시험으로 가장 비중이 높은 철학 과목이 특히 유명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을 자아내는 질문들은 양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수험생의 생각 전개를 보기 위한 시험으로 정답은 없다. 소위 ‘답정너’가 아닌 자유로운 사색을 도모하는 것이 문제의 역할이다.
경영자들이 트렌드를 아는 것보다 왜 이런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는가를 살피고 고민하는 속에 고객에 대한 이해와 트렌드 소화력이 향상된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까 고민하기보다 고객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고객을 그곳까지 더 잘 모셔다드릴 수 있을까를 질문하라고 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교수도 파괴적 혁신의 원동력은 질문이라는 것을 설파한다.
질문에는 유형이 있다. 크게 사실적 질문, 평가적 질문, 사색적 질문, 해석적 질문으로 나뉘는데, 검색의 시대에 들어 약화된 사실적 질문은 이어 챗GPT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과정을 내포하는 평가적 질문은 한쪽으로 치우쳐진 보고서의 위험성을 시사한다. 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노력하는 의도적인 질문들은 하수의 것이다.
사색(思索)과 해석(解釋)이 없이는 결코 고수의 질문을 만들 수 없다. 사색적 질문과 해석적 질문을 훈련할수록 질문지능이 높아진다. 194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대인 이시도어 라비(Isidor Isaac Rabi)교수는 자신이 위대한 과학자가 된 성공 비결에 대해 수업 후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라고 묻는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오늘은 선생님께 어떤 좋은 질문을 했니?”라고 물으시는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다.
조직에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재해석을, 어떠한 가설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사색을,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 측정의 대상 탐색을 골고루 해보아야 한다. 상사의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급급한 인재는 점점 빛을 잃어갈 것이다. 질문하게 된 맥락을 해석하고 갈급함의 근원에 존재하는 불안함을 탐색함으로써 역으로 그것을 되물을 수 있는 능력, 나아가 모범답안을 갖고 오는 것이 아닌 앞서 모험을 실천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위대한 업적은 위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어떻게(How to)’를 아는 사람은 리더에게 인정받지만 ‘왜(Why)’를 아는 사람은 리더를 리드한다. 당신은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인가, 새로운 앵글로 문제를 잘 만드는 사람인가, 아니면 당신 옆에 그런 인재가 있는가.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나이 55세, 아직 괜찮아"…3만5000명 '떼창’ 이끈 ‘가왕’ 조용필 | 중앙일보
- 수차례 넘어진 '수상한 오토바이 맨'…세워주자 밀치며 한 말 | 중앙일보
- 강남 그 방엔 벽돌 가득했다…어느 모녀의 ‘극악무도 범죄’ | 중앙일보
- '킴 카다시안' 닮고 싶던 모델...엉덩이 시술 뒤 사망, 무슨일 | 중앙일보
- 폭설 갇힌 韓관광객 9명에 침실 내준 美부부…한국 온 까닭 | 중앙일보
- 여학생 기숙사 문 앞 노란 텐트...강원 고교에 무슨 일? | 중앙일보
- [단독] 이재명 경기도가 추진한 '북한군 묘 관리'…김동연이 폐기 | 중앙일보
- 국악 전공한 30대 트로트 가수 숨진채 발견…현장서 유서 발견 | 중앙일보
- 가속 페달 살짝 밟아도 '우르릉'…일자 눈썹 쏘나타 직접 타보니 | 중앙일보
- "내 전화 안받아 무죄" 판사에 통했던 스토커 수법, 반전 시작됐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