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봉책은 그만, 해법은 제대로 된 요금 현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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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요금 현실화에 더 이상 실기는 안 돼
목표에만 맞춘 무리한 자구안은 오히려 독
사장의 사의 표명, 남서울본부 건물 매각, 2급 이상 임직원의 올해 임금인상분 반납…. 38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뼈를 깎는 쇄신’ 요구를 받고 지난 12일 내놓은 자구계획 중 일부다. 한전은 이날 ‘팔 수 있는 부동산은 다 판다’는 방침으로 25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다. 한전과 함께 ‘자구책 압력’을 받고 있는 한국가스공사도 이날 15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구안을 발표했다. 가스공사 역시 지난 1분기 기준 누적 미수금은 11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자구책 발표에 대한 여론은 냉랭하다. ‘어설픈 자구안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에서부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자구책이냐’는 공기업 직원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한전 자구책에는 정치권의 도를 넘는 압박에 밀린 ‘자폭’ 수준의 대책도 들어 있다. 남서울본부 매각의 경우 결국 직원들이 근무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새 사무실 임대료 등의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일부 전력시설의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송·변전망 같은 전력시설 건설은 전력수급계획에 따른 발전소 건설에 따라가야 한다. 현재도 향후 완공될 원자력발전소의 전력을 공급할 송전망 건설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란 점을 고려하면 전력시설 건설 연기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전·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손실과 미수금의 주원인은 삼척동자도 아는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상승이라는 돌발 변수 때문이다. 지난 정부는 가스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있었음에도 표를 의식해 인상에 눈을 감아 왔다. 두 에너지 공기업은 경도된 이념에 사로잡힌 탈원전 정책을 떠안아야 했다. 현 정부와 여당도 이제 출범 1년이 지난 만큼 더는 지난 정부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알고 있으니 해법도 명쾌하다. 한전·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손실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시장경제 논리에 따른 제대로 된 요금인상뿐이다. 한전의 경영을 정상화하려면 올해 안에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52원가량 올려야 한다. 벌써 낮 최고기온이 25도를 넘어서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여름과 겨울이 다가온다. 내년엔 총선도 기다리고 있다. 표를 의식하고, 눈앞의 ‘고통’을 피하려다 회복이 어려운 불치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겨울 이미 유예된 대책이 낳은 ‘고지서 폭탄’을 경험했다. ‘뼈를 깎는 쇄신’을 해야 할 당사자는 정치권과 정부다. 오늘 정부와 여당은 국회에서 당정 협의회를 열고 요금 인상 폭을 결정한다고 한다. 전기·가스 요금 현실화에 더 이상 실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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