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새 왕조 이끈 살림꾼 사상 첫 ‘통합 4연패’ 가야죠

권중혁 2023. 5. 1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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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남자 프로배구 통합 3연패 대한항공의 우승 주역 곽승석
대한항공 아웃사이드히터 곽승석이 지난 8일 경기도 용인 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프로배구 V리그 통합 3연패를 차지한 데에는 곽승석의 기여가 컸다는 평가다. 곽승석은 3연패를 넘어 V리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통합 4연패를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용인=김지훈 기자


프로배구 V리그 대한항공은 2022-2023시즌 우승으로 통합 3연패(정규리그 1위·챔피언결정전 우승)를 달성했다. V리그에서 통합 3연패는 과거의 왕조 삼성화재(2011-2012~2013-2014시즌) 이후 처음이다. 남자배구는 이제 대한항공 왕조로 불린다. 대한항공 왕조의 우승 역사를 말할 때 곽승석을 빼놓을 수 없다. 아웃사이드히터(OH) 곽승석은 2010-2011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해 13시즌간 활약한 프랜차이즈다. 입단 시즌 전경기(30경기)에 출전했고, 팀은 구단 역사상 첫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우승(챔프전)은 늘 닿을 듯 말 듯 했다. 당시 최강 삼성화재에 가로막혀 2010-2011시즌부터 2012-2013시즌 3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3시즌간은 챔프전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 사이 곽승석도 부침을 겪었다. 국가대표팀에 뽑히기도 했고, 발목 수술을 받고 재활의 시간도 겪었다. 특히 프로 첫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앞둔 2015-2016시즌에는 붙박이 주전 입지가 흔들렸다. 출전시간이 줄면서 수비전담인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해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별로 좋진 않았죠. 근데 감독님이 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이 때문에 FA 최대어였던 그가 타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게 배구계 일반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곽승석은 남았다. 그는 대한항공에서 우승을 하고 싶었다. “제 첫 팀이었고, 정말 좋아하는 동료들과 너무 많이 고생했는데 우승을 못해서 꼭 여기서 우승하고 싶었어요.”

이후 그의 바람대로 대한항공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2016-2017시즌부터 7시즌 동안 코로나19로 챔프전이 열리지 않은 2019-2020시즌을 빼고 6번 모두 챔프전에 올라가 4번 우승, 3번 통합우승을 했다.

그는 이 우승들의 주역이었다. 2021-2022시즌 KB손해보험과의 챔프전 최종전 5세트 22-21에서 ‘말리폭격기’ 케이타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아 우승을 확정지은 것고 곽승석이었고, 2022-2023시즌 우승까지 한 세트만 남겨둔 현대캐피탈과의 챔프전 4차전 5세트 5-4 상황에서 블로킹과 서브에이스로 분위기를 가져온 것도 곽승석이었다.

“통합 4연패, 대한항공 전직원의 목표”

지난 8일 경기도 용인의 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 훈련장에서 만난 곽승석은 “(통합 3연패 이후) 한 달이 지나서 여운은 없다”고 운을 뗐다. 그는 3연패를 넘어 V리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통합 4연패를 원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을 잘 준비해야죠. 언제나 ‘최초’가 중요하잖아요. 통합 4연패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고 싶어요. 이건 대한항공 전 직원분들과 회장님도 그걸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을까요?(웃음).”

지난 시즌에 대한 총평을 묻자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고 했다.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1위와 챔프전 우승으로 통합 3연패는 물론 시즌 전 KOVO컵 우승까지 팀의 첫 ‘트레블’도 달성했다. “사실 KOVO컵은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이 시합을 안 뛰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정말 잘해줘서 트레블을 했어요.”

팀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한항공의 선택을 받은 것도 그에겐 행운이었다. 곽승석 본인도, 주변 친구들도 다른 팀으로 갈 줄 알았지만 앞선 팀들이 다른 선수들을 지명하면서 대한항공이 기회를 잡았다.

“대학생 때 프로팀들과 연습게임을 많이 해요. 대한항공과 연습을 할 때면 형들 분위기가 정말 좋아보였어요. 그래서 가장 가고 싶은 팀이었어요. 사실 당연히 다른 팀에 지명될 줄 알았고, 앞선 지명 때 나가려도 엉덩이를 들었는데 아니었던 거죠.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당황하더라고요. 저도 당황하고. 대한항공에 와서 잘 풀렸다고 생각해요.”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은 곽승석을 두고 “카멜레온 같은 선수”라고 평가한 적 있다. 팀의 요구에 따라 여러 역할을 잘 수행하는 ‘팔방미인’ ‘육각형 선수’라는 의미다. 감독들이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사진=김지훈 기자


“감독님들 중엔 딱히 저를 싫어하셨던 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들이 좋아하는 상인가?(웃음) 감독님께 권한이 있으니까 선수는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좋게 봐주시는 건 선수로서 정말 좋죠. 카멜레온은 변장도 하고 스킬이 많다는 거니까요. 더 큰 육각형이 돼야죠.”

OH인 그는 공격뿐만 아니라 특히 수비에서 강점이 있다. 2011-2012, 2013-2014시즌에는 수비상을 받았다. 프로 출범 후 수비 전문인 리베로가 아닌 포지션이 수비 1위를 한 것은 유일하다. 이밖에 공격, 이단연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재다능한 면을 보인다.

“상복 없지만, 인정 받아서 좋아”

화려한 우승 경력과 비교하면 개인 수상은 단조로운 편이다. 수비상 2회, 페어플레이상 1회, 2018-2019시즌 정규리그 6라운드 MVP 정도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2014-2015시즌부터 기존의 득점·공격·블로킹·서브·세터·수비상으로 구분해 수여하던 기록상을 포지션별 베스트7상으로 신설·교체했을 때는 “아 이제 상 못 받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용히 강한’ ‘언성 히어로’ ‘살림꾼’ ‘눈부신 조연’ 등의 수식어가 주로 따랐다. “아쉬울 때도 있고, 부러울 때도 있어요. 운동하면서 상복은 없었던 것 같아요.”

경기가 안 풀리면 ‘오늘은 안 되나보다. 다음에 잘해야지’ 하고 무던히 넘겨왔다던 곽승석은 개인상에 대한 아쉬움도 그만의 방식으로 해소한다.

“기회가 있다면 기준기록상이나 챔프전 MVP 정도 같아요. 챔프전 앞두고 ‘잘해서 한 번 받아보자’ 했는데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으니 쉽진 않더라고요. 대신 열심히 축하해줘요. 배구를 좋아하고 아시는 분들은 제 역할을 인정해주시니 좋아요.”

그에겐 두 명의 딸이 있다. 7살과 5살이다. 딸들도 이제 그의 경기를 보며 배구를 알아가고 있다. “요즘엔 ‘서브 미스 하지 말고 잘하라’고 말도 해줘요. 귀엽고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죠. 뛰는 모습을 보면 좋아해 주니까 더 잘해야겠구나 생각해죠. 넘어지지 말라고도 했는데 ‘아빠는 넘어져야 하는 포지션’이라고 해줬어요.(웃음)”

최근에는 기부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연고지 인천 6개 학교와 출신지역 부산 2개 학교에 총 5000만원을 기부했다. 올해 초 튀르키예 강진으로 수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는 김연경(흥국생명)이 팬들과 함께 한 모금 캠페인에 1000만원을 선뜻 냈다.

“최대한 기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많이 늦어졌어요. 이번에 좋은 기회가 돼서 하게 됐죠. 여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보니 미혼모나, 청소년 위생용품 같은 것들도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대한항공은 V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남자 클럽챔피언십 참가를 위해 바레인으로 출국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부상 없이 잘 끝나길 바라고, 16팀 중 우선 8위 안에 들어서 조별예선을 통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마지막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라는 말이 좋았어요.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도 똑같이 답할게요.”

용인=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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