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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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숙 기자]
▲ 지천에 널린 쑥 지천에 널린 쑥 |
ⓒ 최미숙 |
4월, 아직은 날이 차다. 따뜻한 햇볕 아래 천변 군데군데 쑥 캐는 사람이 보인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일 년 전 이맘때도 지인들과 쑥을 캤다. 그걸로 떡을 해 나눴는데 맛있었는지 또 가자고 연락이 왔다. 올해도 쑥떡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날을 정하잔다. 남편 친구 부부 모임으로 만난 지 삼십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부부가 같이 모이다 이제는 여자들만 만난다. 해외여행도 같이 다니며 좋은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일요일 오전 열 시 예술회관 주차장서 만나기로 했다.
봄기운이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청명한 날이다. 다들 모자 하나씩 눌러쓰고 봄옷으로 단장했다. 마치 소풍 가는 학생처럼 들떴다. 간식과 점심거리 사러 마트에 갔다. 작년에는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점심시간이 길면 쑥 캐는 시간이 줄어든다며 김밥과 과일, 떡, 컵라면을 샀다. 농장으로 출발했다.
쑥은 흔하디흔한 풀이다. 도롯가 흙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잘 자란다. 마음만 먹으면 길에서도 한 끼 국 끓일 양은 캔다. 그렇다고 매연을 잔뜩 뒤집어쓴 것을 캐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텃밭 농사하는 곳 주변 빈 땅에 쑥이 지천이다. 봄이면 온통 쑥대밭이 된다. 이파리 뒷면에 하얗고 뽀얀 솜털이 보스스 돋아 아기 손처럼 부드럽다. 향도 좋고 연해 떡 색깔도 예쁘다.
도착하자마자 간식으로 산 떡과 과일을 펼친다. 먹는 것이 남는 거라며 배부터 채웠다. 커피까지 마신 후 일할 옷으로 갈아입고 칼과 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작년에 베지 않고 그대로 둔 풀이 말라 넘어져 밭 전체를 덮었다. 마른풀을 살며시 들추니 옹기종기 모인 연한 쑥이 무더기다.
풀 아래가 따뜻했는지 제법 크고 실하다. 편하게 흙바닥에 앉았다. 손이 바빠진다. 한참을 떠들더니 조용하다. 맑은 하늘과 햇살이 눈 부시다. 새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어느새 큰 바구니 가득 찼다. 한 사람은 다듬고 남은 셋은 다시 밭으로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모은 쑥이 산더미다.
오후 한 시가 지나서야 점심 먹고 잠깐 쉬었다. 바닥에 쌓인 쑥을 다듬었다. 잡티와 떼어야 할 잎이 많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둘씩 나눠서 하기로 했다. 다시 밭으로 갔다.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큰 것이 눈에 띄어 멈출 수가 없다. 친구들과 뒷산에 쑥 캐러 갔던 초등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봄을 캐러 다녔던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다.
바구니 한가득 채워 들어갔더니 다듬어야 할 쑥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산이라 빨리 어두워져 서둘러야 했다. 다 같이 둘러앉았다. 쑥이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며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끝내고 나오니 여덟 시가 넘었다. 주변은 어느새 칠흑처럼 어둡다. 저녁까지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 생략하고 떡집도 다음날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홉 시가 넘었다. 허리가 뻐근하다.
다음날 떡이 다 됐다고 연락이 왔다. 방앗간에 맡긴 언니가 퇴근 시간에 맞춰 아파트로 배달까지 해준다. 한 상자하고 봉지가 또 하나다. 집으로 가져와 열어보니 고물이 흠뻑 묻은 쑥떡이 먹음직스럽다. 가지런히 놓인 말랑말랑한 떡 하나를 입에 넣으니 쑥 향이 확 올라온다. 전날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수고한 대가다. 직접 캐 만든 것이라 더 맛있다. 봉지 여러 개에 나눠 담았다. 가까이 지내는 윗집과 아랫집에도 한 봉지씩 줄 참이다. 작년에 준 떡이 맛있었다며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어릴 때는 쑥떡보다 인절미를 많이 먹었다. 아버지가 좋아해 우리 집은 설이 되면 떡을 한 말씩 했다.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다. 아버지가 떡판을 깨끗하게 씻어 준비하면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옹기 찜기에 찹쌀로 고두밥을 쪘다. 솥과 찜기 사이로 김이 새어 나오지 않게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여 붙였는데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라 그것도 익으면 서로 먹으려 했다.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두밥을 두 손 가득 담아 주먹밥을 만들어줬다. 하나 얻어먹으려고 빨리 익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찐 고두밥을 절구통에 넣고 아버지가 떡메로 치면 엄마는 손에 물을 묻혀 가운데로 모은다. 다시 치고 모으고를 반복하면 완전히 으깨져 찰진 덩어리가 된다.
콩가루를 뿌려 놓은 떡판에 그것을 올리고 손으로 눌러가며 골고루 묻힌다. 엄마가 썰어주면 아버지와 우리가 모양을 잡았다. 엄마는 매시랍게 잘 만든다고 칭찬해 주셨다. 겉이 약간 꼬들꼬들해지면 대나무 석작에 가득 담아 마루 선반에 올려놓는다. 밤이 긴 겨울 내내 우리 식구 간식이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은 부엌이 따로 있었다. 밤이면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에게 떡을 구우라고 하셨다. 날씨가 추워 나가기 싫었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커 할 수 없이 했다. 석쇠 위에 떡을 여러 개 올리고 익기를 기다린다.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진 떡을 접시에 담아 방으로 가져가면 순식간에 없어졌다.
겉은 바삭바삭, 속은 몰랑몰랑한 떡을 한입 베물면 덜 으깨진 쌀이 씹힌다. 어른이 돼서도 가끔 그 시절 먹었던 인절미가 생각난다. 내 나이 또래는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요즘 쌀이 약간 씹히는 떡을 만들어 파는 곳이 있다는데 한 번도 사지는 못했다. 그때는 왜 그리 추웠는지 냉장고가 없어도 떡에 곰팡이가 슬지 않았다.
어른이 돼서야 쑥떡의 참맛을 알았다. 몸에 좋다고 해 더 즐겨 먹는다. 카톡이 울린다. 고맙다는 문자다. 떡을 나눴더니 다들 맛있다고 칭찬했다며 내년에 또 가잔다. 올해로 3년째인데 이제는 연례행사가 될 모양이다. 직접 캔 깨끗한 쑥이라고 강조했단다. 덕분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과 그리운 부모님 향기도 꺼내 보았다. 내년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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