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게임은 예술일까' 팩맨·심시티 소장한 미술관의 질문

김희윤 2023. 5. 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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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展
MoMA 소장품 등 총 40점 전시
게임의 역사와 문법, 예술과 사회에 미친 영향 조망

‘게임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21세기에 접어들어 꾸준히 진행돼왔다. 반세기 넘는 상업게임의 역사가 이룩한 성과가 ‘예술’에 편입되려 할 때마다 반발과 비난의 목소리는 거세졌다. 예술보다는 스포츠에 가깝다는 지적, 제작과 사용, 향유 논리가 예술과 다르다는 분석이 다양하게 이어지는 사이 정부는 지난해 법적으로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게임은 법적인 문화예술 장르로 인정받게 됐다. 이제 예술이 된 게임, 그 궤적을 작품이자 체험 도구로 제시하며 어떻게 게임이 일상에 스며들었는지를 묻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게임과 사회'를 주제로 한 기획전 '게임사회'전 언론공개회가 열린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전 전시 전경.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의 역사와 문법, 그리고 동시대 예술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조망하는 전시 '게임사회'를 오는 9월10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0년 초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이 수집한 비디오 게임 소장품과 국내 게임 등을 포함한 9점의 게임과 비디오 게임 문법과 미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점 등 총 4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게임이 예술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진 것은 2006년 르노 도네디외 드 바브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게임을 문화적 생산물이자 예술적 표현의 한 양식으로 발표한 것을 시초로 본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통해 게임 산업에 대한 세금 지원을 승인했다. 미국은 2011년 국립 예술기금(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이 예술 프로젝트 보조금 분야에 게임을 포함시키며 게임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고 지원 대상으로 규정했다.

람한, '튜토리얼_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앞서 미국에선 1989년 뉴욕 동영상 박물관에서 '뜨거운 회로 : 비디오 아케이드(Hot Circuits : A Video Arcade)전을 개최하며 예술로서의 게임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은 게임 14점을 소장품 목록에 포함시켰다. 팩맨(Pac-Man, 1980), 테트리스(Tetris, 1984), 어나더월드(Another World, 1991), 미스트(Myst, 1993), 심시티 2000(SimCity 2000, 1994), 비브 리본(vib-ribbon, 1999), 심즈(The Sims, 2000) 등이 이때 공식 소장품으로 등재됐다. 이번 전시에는 이때 소장된 팩맨, 마인크래프트, 심시티 2000, 포털 등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 6점과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작인 헤일로 2600과 플라워(뉴욕현대미술관과 동일작) 등 총 7점이 관객을 맞는다.

전시는 '예술게임, 게임예술' '세계 너머의 세계' '정체성 게임' 등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예술게임, 게임예술'은 매체로서의 게임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하룬 파로키와 코리 아칸젤의 영상 작업을 감상하고 비디오 게임 '플로우' '플라워' '헤일로 2600'를 직접 체험하는 공간으로 연출됐다. 특히, 코리 아칸젤의 '슈퍼 마리오 무비'(2005)는 게임기의 카트리지(게임팩)를 해킹해 화면을 조각내고 재조합해 새로운 스토리를 구축해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로렌스 렉, 노텔(서울 에디션), 2023, 멀티미디어 설치,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세계 너머의 세계'에서 로렌스 렉 '노텔-서울 에디션'(2023)은 가상의 기업 노텔코퍼레이션을 통해 완전 자동화된 미래의 특급 호텔을 구현한다. AI로 대체된 노동과 초호화 삶의 경계가 미묘하게 표현됐다.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2021)은 심시티, 마인크래프트 등 게임 그래픽을 활용해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와 소외감을 재연하고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해나간다. 이를 통해 게임 속 세계가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정체성 게임’에서는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Danielle Brathwaite-Shirley)와 코리 아칸젤, 루 양(Lu Yang), 람한의 작품과 뉴욕현대미술관 소장작 중 '포털'과 '팩맨'을 함께 선보인다. 흑인 트랜스젠더 작가인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셸리는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21)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디오 게임을 통해 시현한다. 람한의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법'(2020)은 VR 게임으로 치과 진료대 의자에 관객이 직접 앉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플레이를 주도한다. 게임과 사회의 강력한 동기화를 거쳐 가속한 가상현실 세계의 확장 의미를 살펴보는 동시에 게임 매체를 통해 공동체가 느끼는 사회적 경험의 한계와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전시공간 밖 서울박스에서는 김희천의 설치 영상 '커터 3'(2023)이 상영된다. 현실과 가상, 존재와 비존재, 리얼타임과 이미지를 유영하며 실존 문제를 다룬 작품은 8월 13일까지 운영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비디오 게임에는 국립재활원 연구개발기구인 ‘보조기기 열린 플랫폼’에서 기획·개발한 게임 접근성 보조기기와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Xbox)의 접근성 게임 컨트롤러를 지원해 관객 누구나 현장에서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게임사회’전을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관객이 전시장에서 직접 '팩맨'을 플레이하면 이를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집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때와 어떤 차이점을 느낄지 궁금했다"며 "미술관에서 게임을 하는 새로운 경험 후 이에 대해 관객이 어떤 질문을 할지 직접 확인해보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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