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분뇨 처리장이던 ‘망리단길’에 숨은 의인

망원동 판자촌 주민 가르치고 도왔던 이상양 전도사
공동 화장실 만들고 집 지어주며 자립 도와
그가 세운 망원제일교회 50주년 맞아 부조 제막

이상양 전도사의 아내인 박영혜 도림교회 장로가 14일 서울 마포구 망원제일교회에서 열린 이 전도사 부조 제막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망리단길’로 불리며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은 50여년 전만 해도 서울의 모든 오물이 쌓이던 곳이었다. 근처 상암동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있었고 망원동에는 분뇨 처리장이 있었다. 도심 개발로 갈 곳 없던 가난한 사람들은 악취가 코를 찌르는 망원동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어른들은 일급 1500원짜리 막노동으로 돈을 벌었고 아이들은 오물 속에 발을 담그고 동전을 찾아다녔다.

이 소식을 들은 이상양(1942~1977) 전도사는 망원동을 찾아가 하루 100원짜리 방에서 먹고 자면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 또 주민을 위한 공동 화장실을 지었고 ‘한 집에 한 통장 갖기’ 운동을 통해 내 집 마련의 꿈을 꾸게 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애린교회(현 망원제일교회)를 세우는 등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했던 이 전도사는 망원동에 온 지 5년 만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정말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이상양 전도사 부조 제막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14일 서울 마포구 망원제일교회에서 부조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 전도사의 아들 이선배 집사, 홍성인 망원제일교회 목사, 김기복 이상양전도사기념사업회장, 이 전도사의 아내 박영혜 장로, 조카 이순배 집사, 이선우 장로, 이규재 장로. 신석현 포토그래퍼

‘뚝방촌의 성자’로 불리는 이 전도사가 세운 망원제일교회(홍성인 목사)가 14일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교회는 지역을 위해 헌신의 모범을 보인 이 전도사의 부조를 만들고 기념전시를 진행하며 유가족 및 성도들과 함께 그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제막식에서는 이 전도사와 같은 시절을 보낸 이들의 회고가 이어졌다. 1971년부터 망원동에 살았다는 이선우 장로는 “72년 여름 젊은 청년이 찾아와 집집마다 호구조사를 하더니 먹을 것 없는 집에 쌀을 갖다 주고 몸이 약한 사람을 업고 병원에 데려다 줬다. 그분이 바로 이상양 전도사”라며 “마을 주민이 돌아가시면 직접 염을 할 정도였다. 그분 덕분에 나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망원제일교회 2대 목회자이자 이상양전도사기념사업회장인 김기복 목사 역시 “강한 용사처럼 망원동을 이끌어 나갔던 이 전도사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며 “그가 세운 교회는 천국과 같았으며 망원동의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제막식에 참석한 이 전도사의 아내 박영혜 도림교회 장로는 “망원동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남편이 참여해 축복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망원제일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기도하겠다”고 인사했다.

교회는 다음 달 3일까지 이 전도사 관련 자료와 조카 이순배 작가의 작품이 담긴 전시회도 진행한다. 홍성인 목사는 “이 전도사님이 지역을 섬긴 숭고한 사역은 한국교회가 사회의 신뢰를 잃고 어려운 가운데 부흥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 교회는 이 전도사님을 기억하고 그의 사역을 계속 증언하면서 그 뜻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망원제일교회 성도들이 14일 서울 마포구 교회에서 열린 이상양 전도사 부조 제막식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