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겨붙은 손발, 감긴 눈…미얀마 아이에 찾아온 한국의 기적
“한쪽 눈은 뜨지도 못하고, 음식물도 못 삼켰어요.”
국제구호단체 멘토리스 재단에서 활동하는 김영미(57)씨는 아직도 지난해 12월 미얀마에서 눈물을 쏟았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했다. 미아웅미아(Myaungmya)에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텐린씨샤(당시 2세)를 만나게 됐을 때였다. 그의 입은 삐뚤어졌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서로 붙어 있었다. 제때 자라지 못한 머리뼈에서 시작된 통증 탓에 오른쪽 눈은 거의 감겨 있었다. 숨길이 좁아 호흡이 가팔랐고 구순구개열(입술 또는 입천장의 갈림증) 증상 때문에 음식물을 먹을 때마다 코로 흘러 나왔다.
텐린씨샤는 선천성 에이퍼트 증후군(Apert syndrome) 환자다. 머리뼈와 얼굴뼈가 성장을 멈추면서 호흡·지능 저하, 시력상실을 부르는 병으로 영미권에선 6만5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보통 어린 시절 수술대에 오르지만 텐린씨샤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차로 10시간쯤 떨어진 시골에서 노점을 운영했다. 한 달 수입은 한화로 10만원도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양곤의 병원을 찾았지만 “현지 의료 기술로는 치료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더 늦으면 영구적 장애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국내 의료기관에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지난 2월 세브란스 병원이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잡은 미얀마에선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지난 1월부터는 군부가 여권 발급도 전면 중단했다. 출국길이 아예 막힌 것이다. 엄마는 남들과 다른 외모 탓에 아이가 동네 주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가족 모두가 죄책감에 시달렸던 순간을 더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4개월 후에야 여권 신규 발급 신청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수술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지금 가지 못하면 수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 아이가 더는 고통을 받지 않고 미얀마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번만 도와주세요.” 네피도 여권사무소를 찾아 딸의 사연이 적힌 자필 호소문을 건넸다. 텐린씨샤의 사연을 알고 있던 활동가들도 탄원서로 힘을 보탰다.
이들의 정성은 결국 통했다. 이달 초 90일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의료관광(C-3-3)비자가 나왔다. 멘토리스 재단으로부터 비행기값을 지원 받은 텐린씨샤는 엄마와 함께 지난 8일 가까스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의료진은 이틀 뒤인 지난 10일, 유대현 성형외과 교수의 집도로 수술에 들어갔다. 입천장 근육을 박리한 뒤 재구성하고 목젖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후 서로 붙은 손가락 마디를 서로 떼어낸 뒤 피부를 이식하는 수부성형술도 함께 진행했다. 뒤늦게 중이염이 발견되면서 이비인후과 교수도 참여했다고 한다. 전신마취 상태로 진행하는 장시간의 수술이었다.
아이는 첫 수술을 잘 견뎌냈고 큰 출혈 없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14일 피부 이식을 위해 다시 수술실에 들어간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얼굴엔 여전히 근심이 가득했다. 체류기간은 단 90일. 그 안에 딸이 모든 수술을 다 마칠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유 교수는 “상태가 호전되면 머리뼈와 얼굴 뼈를 늘리는 수술을 한다. 늘어난 뼈가 붇는 기간을 고려해 최대 2개월 시차를 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엄마는 의료진에게 감사와 함께 연신 “아이가 다 나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병을 극복하면 이름을 ‘따웃빠떼(미얀마어로 빛난다는 뜻)’로 바꿀 생각이라고 했다. “아이가 아프니까 처음에 아무 뜻이 없는 이름을 지은 게 후회되더라고요. 이젠 아프지 않고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어요.”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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