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증금 못돌려줘 사채 썼다…서울 아파트 역전세난 40%
A씨는 2021년 12월 서울 잠원동에 있는 아파트(전용면적 80㎡)를 보증금 5억5000만원, 월세 100만원에 세를 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기존 세입자에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지난 2월 사채까지 빌려 겨우 돌려줬다.
이달 말 들어오기로 한 세세입자와는 월세없이 보증금 5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인근 비슷한 평형대 아파트 전셋값이 2년 전보다 2억~3억원 떨어진 ‘역전세난(전세 만기에 전셋값이 현 세입자와 계약할 때보다 떨어져 새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역전세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올 하반기에는 서울 아파트 중 역전세난을 겪을 수 있는 비중이 40%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중앙일보가 부동산R114에 의뢰해 2년 전인 2021년 6월과 이달 12일을 기준으로 2년간의 전세 시세를 조사한 결과다. 이는 올 하반기까지 전셋값이 상승 전환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수치다. 전셋값은 최근 낙폭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 하락 중이라 하반기 오를 가능성은 작다.
역전세난 비중은 부동산R114가 전세 시세를 조사 중인 서울 147만 가구를 표본으로 삼아 추산했다. 하반기에 전세로 나오는 물량 중 약 40%가 이전 계약 시점인 2021년 하반기보다 더 낮아 역전세난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다. 부동산업계는 1000가구 아파트단지 중 임대차(전·월세)로 나오는 물량을 대략 20~30%로 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통계적으로 전셋값 고점은 2022년 1월이었는데, 보통 3개월 후에 반영되기 때문에 실제론 2021년 하반기가 고점이었을 것”이라며 “계약 시점으로 봤을 때 올 하반기에 전셋값 차이가 가장 클 것이기 때문에 역전세난이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지역별로 보면 최근 5년간 전셋값이 급등한 곳에서 역전세난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송파구가 59.6% 가장 높았으며, 이어 강동(58.7%)·관악(53.2%)이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중랑구는 20.2%, 은평(21.6%)·종로(22%)도 비교적 낮았다.
서초·송파·강동 지역의 일부 아파트 전세 시세는 2년 전과 비교해 30~40%가 빠졌다. 2021년 6월 기준으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전용 83.06㎡의 전세 평균은 9억5000만원이었지만, 이달 5억6500만원으로 40.5% 하락했다.
같은 기간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98㎡는 11억7500만원에서 7억9500만원으로 32.3% 내렸다. 또 서초구 잠원동 훼미리 84㎡는 9억6000만원에서 5억5000만원으로 42.7% 빠졌으며, 강동구 강일동 강일리버파크2단지 83.83㎡의 전세 평균 시세는 6억2500만원에서 4억2500만원으로 32% 하락했다.
서울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5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줄곧 상승하던 전셋값은 지난해 하반기 급격히 꺾었다. 특히 2020년 상반기 동안 전셋값은 13.53%(2년 전 계약 기준) 급등했지만, 지난해 하반기엔 6.18% 하락했다. 또 올해(1~5월)도 4.75% 내렸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지금 시점보다 하반기에 전셋값이 더 내려간다는 가정 하에 올해 12월까지 역전세난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며 “상당수의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전셋값 추이는 향후 주택가격의 향배를 가르는 풍향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급락했던 전셋값은 지난 3월 들어 하락세가 둔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매매 가격보다 낙폭이 큰 편이다.
다만 최근 전세대출 금리가 최저 연 3% 때까지 내리면서 거래절벽에서는 벗어나는 추세다.
박원갑 위원은 “당장의 역전세난 해소를 위해선 집주인에 대한 전세퇴거자금 대출 완화 등으로 급한 불을 끌 필요가 있다”며 “금리가 낮아진다는 가정 하에 내년엔 역전세난이 누그러 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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