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예배 준비하다 외쳤다 “어벤져스 어셈블!”[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도인듯 성도 아닌 성도 같은 너’ 유행가의 노랫말이 바뀐 가사로 귓가에 맴돈다. 신앙은 연애가 아닌데... 눈에 띄게 늘어난 ‘가나안 성도(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얘기가 내 주변에도 쉴새 없이 들린다.
참석했던 한 개척교회 세미나에서도 세대와 성도 얘기가 주요 이슈로 다뤄진다. 떨어져 나간 퍼즐 조각이 한 움큼 쌓인 듯 안타깝게 느껴지는 가나안 성도, 어두운 코로나 팬데믹 동굴을 지나며 쏟아져 나온 플로팅 성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앞으로도 모른 채 살아갈 것처럼 보이는 다음 세대까지.
강의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강연자가 선포하듯 내뱉은 한 마디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개척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 올해 꼭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개척을 서둘러야 합니다. 헤매고 또 헤매는 가나안 성도, 하염없이 붕 떠 있는 플로팅 성도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문득 영화 ‘어벤져스’의 한 장면이 스친다. 끝판왕 같은 악당 타노스가 결국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다 얻게 되고 온 우주 생명의 절반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막바지를 향해 가는 전투에서 아이언맨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의미심장한 신호를 보낸다. 1400만여개의 경우의 수 중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단 하나.
거기에 더해 캡틴 아메리카는 결의에 찬 한 마디를 외친다. “어벤져스 어셈블!”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무리 세상이 위태롭게 흔들리더라도 주님은 일하신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예비한 일꾼들을 하나로 모으신다. 작은 부분이라도 감당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여러 목회자 가정이 모인 여름 수련회 현장에서 또 한 번 가슴을 친 순간이 왔다. 수련회 강사로 나선 목회자의 선언적인 한 마디가 들렸다. “개척자인 Y목사님은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 해 안에.”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올해 안에…’ ‘올해 안에...’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개척 시기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깨달았다. 머릿속을 맴도는 ‘올해 안에’는 내가 선포하고 고백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에 접어 들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사람을 통해 일하기 시작하셨다. 한 지인의 갤러리 오픈 축하를 위해 찾아갔던 발걸음을 하나님은 기억하셨고 그곳에서 예배가 시작될 수 있도록 준비해주셨다.
함께 모여 나누는 말들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했고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준비되기 시작했다. 나에게 뜨거운 마음을 전달하신 하나님은 나보다 더 뜨거우셨다. 그 뜨거움은 ‘성질이 급한’ 하나님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멋진 갤러리에서 드려질 수 있게 된 찬양예배. 그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특별한 손님 준비를 위해 셰프가 주방보조들과 함께 모든 재료를 준비해둔 것처럼 예배 준비는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향해 달려갔다.
콘솔, 스피커, 마이크, 기타, 노트북, 패드, 프로젝터, 보면대, 스크린, 건반, 각종 거치대등의 재료들이 세계 최고의 올림픽 계주팀 바통 터치하듯 오차없이 준비됐다. 이 재료들을 다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보내주셨다. 마치 ‘어벤져스 어셈블’같았다.
포스터를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찬양예배를 알렸고 연락을 준 관심있는 몇 사람에게는 구두로 전달했다.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 잊을 수 없는 도움의 손길들이 예배 전부터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고 무엇이 필요할지 몰라서 먼저 와서 도울 것을 찾는 분도 있었다.
과일, 떡, 호박죽, 수세미, 음료수, 물을 가지고 오셔서 나누는 손길도 있었다. 희안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게 된다고’ ‘아니... 저 사람, 저 도움이 왜 저기서 나와?’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준비에 나선 찬양예배만 예배가 아니었다.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예배였다. 함께 만들어가는 예배를 경험하니 성도(聖徒)의 의미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과정부터 모든 것이 예배였고 장소만이 교회가 아니라 우리가 교회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찬양 예배를 준비하면서 당일까지 하나님은 내게 예배를 알려주셨다. 지금까지는 보이는 것들이 예배의 요소였다. 잘 짜여진 타임 테이블, 주제, 말씀과 연결되는 시나리오, 깔끔한 포스터, 의자의 배치 등등.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던 내게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보내주셨고 그분들을 보게 하셨다.
사실 ‘개척을 하면 진짜 목사가 된다’는 말을 새기고 또 새기면서도 실감이 나진 않았다. 그런데 찬양예배를 준비하고 함께 손을 내미는 영혼들을 보면서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처음으로 준비해서 드려진 찬양 예배, 함께 참여해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현장엔 가지 못하지만 기도하고 있다’는 문자들까지 ‘초보 삽질러’인 개척 농부에게 큰 힘이 됐다.
이따금씩 주변 목사님들의 설립 감사예배, 성전이전 감사예배, 성전 입당예배에 참석하면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참 많이도 봤다. 담임 목회자와 사모는 물론이고 많은 성도들이 울고 또 울었다. 역시 사람은 경험이 중요했다. 그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11월 마지막주 목요일, 어느 아름다운 갤러리. 지금 드려진, 지금 세워진,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이 울고 계신다. 그리고 나도 울고 있다.
찬양의 아름다운 선율이나 다른 감동 때문이 아니라 현장의 공기와 호흡에 눈물을 흘린다. 감사해서 울고 감격해서 운다. 선명하게 보이는 옛 시간들로 운다. 앞으로 계속 울고 싶다는 생각이 채워진다. 첫 찬양예배의 기억은 눈물이었고 그렇게 개척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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