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바닥에 씨앗 뿌린 정당들...청년이 클 수 있나"

박소희 2023. 5. 1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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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미래 네트워크 포럼] 황은주 전 기초의원이 겪은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불가능한 이유

[박소희 기자]

 12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3 다른 미래 네트워크 포럼’에서 대전광역시 유성구의원을 지낸 황은주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직업으로서의 청년 정치'가 불가능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 박소희
 
"제가 처음 정당 생활 시작할 때 받았던 임무가 '청년위원회 행사를 개최하라'였다. 그래서 '예산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대관료 30만 원 밖에 없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 된다더라, 제가 돈을 쓰든지. 너무 이상해서 당에 얘기했다. '집권 여당인데 왜 제 돈을 쓰면서 당 행사를 해야 하냐'고 했더니 '당에서 돈 얘기하면 안 된다. 너는 그런 직책을 부여받은 것만으로도 혜택받은 건데 뭘 바라느냐'는 피드백을 들었다. 여전히 정치를 '누리는 자리'로 봐서 그런 것 같다."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3 다른 미래 네트워크 포럼'에 참가한 황은주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 대변인이 말했다. 8대 대전광역시 유성구의원을 지낸 그는 당시 상황을 "청년정치의 가장 큰 비극"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선거철마다 모든 정당이 '인재가 없다'는 돌림노래를 반복하지만, 사람을 키워낼 구조도, 의지도 전무한 현실이야말로 청년정치가 실패하고, 청년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원서비는 수백만, 나머지는 알아서... "청년이 정치 등돌린 진짜 이유"

황 대변인은 "청년들이 정치권에 등돌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며 "정치권도 하나의 업계, 정치인도 하나의 직업이라면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그의 정답은 '아니오'였다. 그는 "우선 채용공고가 없다. 어떻게 취업해야 하는지도, 취업 성공 후기도 검색에 나오지 않고 책, 인터넷 어디에도 없다"며 "그런데  원서접수(공천 심사비, 선거 기탁금 등)에만 400만, 500만 원 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고에 따르면, 기초의회 의원 선거비용 한도는 4200만 원이다. 황 대변인은 "그런데 할부가 안 된다. 카드 결제 안 되고, 현금으로 바로 내야 되는 돈이 그 정도"라며 "우여곡절 끝에 취업해도 인수인계서가 없고, 일 가르쳐주는 사수도 없고, 모든 걸 다 혼자 해야 한다. 해고되거나 계약이 중간에 해지되더라도 실업급여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고 짚었다. "과연 이게 청년들한테 괜찮은 일자리일 수 있는가"라고 재차 물었다.

황 대변인은 "그동안 정치권은 유능한 인재가 오길 바라면서도 그 인재들이 제 발로 스스로 오게끔 매력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며 "비유하자면 시멘트 바닥에 씨앗 던져 놓고 알아서 자라길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선출직 공직자, 보좌진, 당직자 숫자 등을 싹싹 모으면 약 1만 개의 일자리가 있지만, 2022년 지방선거 청년 당선자는 416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말 극소수"라고 짚었다.

황 대변인은 "정치에서 정말 중요한 역량은 문제해결 역량이고, 이건 결국 현장에서 실제 정치적 활동을 하면서, 부딪치면서 깨달아야 하는데 그런 무대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며 "그러다보니 선거 때마다 젊은 인재를 이벤트식으로 공천한다"고 봤다. 이어 "그런 것도 분명 필요하지만 정당은 그렇게 영입, 공천하고 나면 끝이다.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다"며 "이 사람이 어떻게 정치영역에서 배워나가고 성장할지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권지웅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 역시 "지금 사회가 좋은 인재를 정치로 끌어들일 수 있나? 그러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윤호중 비대위원장이 청년 공천을 하려고 몇 번 설득했던 분이 있다"며 "(정치)하겠다고 했다가 '월급을 보니까 제 가정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하는 것 자체가 돈을 못 받는 게 너무 당연해졌는데 좋은 문화가 아니다"라며 "전업을 해서 집중을 해야 하는데 못 한다. 역량을 쌓을 수 없다"고 말했다.

"7080년대식 그대로... 정치 바꾸고 싶다? 헌신만 요구하면 무책임"

이관후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도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0대에 민주당 대변인을 할 때 월급을 안 줬다는데 그때랑 변한 게 한 개도 없다"며 "70, 80년대 방식을 잘 지키면서 청년정치가 과연 될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학생, 시민, 재야 조직이든 기반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며 "정치를 바꾸고 싶다면, 조직적으로 후원·응원·비판하는 노력을 시민들이 전혀 하지 않으면서 정치인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도 했다.

'영입인재'로 정치를 시작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제가 2020년 1월 19일 입당해서 2월 19일에 공천을 받았고 4월 15일에 선거를 치러서 55일 만에 당선됐다"며 "당선에 감사하고 열심히 의정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이 많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또 '30대 총리'였던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산나 마린의 정치경력은 20년이 넘는다며 "저는 3년 됐다. 이런 식의 인재영입은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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