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를 2023년에 만나는 법
[이돈삼 기자]
▲ 전남대학교 후문 앞의 연못 ‘용지’ 풍경. 전남대학생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찾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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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았다. 오월영령을 추모하고, 그날을 기리고 기억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80년 5월 광주에서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항쟁을 벌였다.
22일부터 닷새 동안은 시민들이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주먹밥과 피를 나누고, 거리를 청소하며 일상을 회복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치공동체를 실현했다.
▲ 전남대학교의 명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정문에서부터 이어지는 숲길이 학교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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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1호 표지석. 표지석은 총탄 앞에서도 두 팔을 높이 들어 민주화를 외쳤던 열사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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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는 5·18항쟁의 시발점이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횃불이 된 전남대학교에 민주길이 조성돼 있다. '전남대 민주길'은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인물·장소를 대상으로 기념공간을 정비하고, 하나로 연결하는 둘레길이다. 11개의 기념공간을 3개 권역으로 나누고 정의의 길, 인권의 길, 평화의 길로 이름 붙였다.
정의·인권·평화 3개의 길을 모두 합하면 5.18㎞에 이른다. 이 길을 '전남대 민주길'이라 부른다. 민주길이지만, 친환경 숲길이고 둘레길이다. 전남대학교 캠퍼스는 평소 학생과 시민들의 힐링공간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정의의 길은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박관현언덕-윤상원숲-김남주뜰-교육지표마당-벽화마당-전남대5·18광장-박승희정원-용봉관(옛 대학본부)을 거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따라 정문으로 돌아온다. 1.7㎞에 이른다. 전남대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오월정신의 역사성을 종합하고 상징하는 길이다.
▲ 전남대학교 정문 풍경. 80년 5월 민주화 운동은 18일 교문 앞에 모여든 학생들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과 충돌하면서 시작됐다. 민주화 운동의 시작점으로서의 의미가 큰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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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대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에서 만나는 박관현 언덕. ‘민주화의 새벽 기관차’로 불리는 박관현은 신군부의 반인권적인 폭력에 맞서 죽음으로 저항한 민주열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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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정문은 5·18민주화운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곳이다. 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군인들이 전남대를 장악한다. 이틀 전인 16일 민족민주화대성회 때 해산하면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오전 10시 전남대, 12시 도청 앞으로 모이자'는 약속을 기억한 학생들이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다.
학생들은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과 충돌했고, 이후 금남로로 진출해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인다. 전남대 정문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국가권력이 매번 충돌했던 곳이다. 여기에 5·18사적 제1호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양쪽으로 5·18소공원과 민주공원도 만들어져 있다.
전남대 민주길의 상징인 정의의 길은 정문에서 박관현언덕, 윤상원숲, 김남주뜰으로 이어진다. 정문 안, 법과대학으로 가는 길목에 박관현언덕이 있다. '민주화의 새벽 기관차'로 불리는 박관현은 신군부의 반인권적인 폭력에 맞서 죽음으로 저항한 민주열사이다.
▲ 윤상원숲에서 만나는 윤상원 열사의 흉상. 윤상원 열사는 ‘오월광주의 영원한 대변인’으로 통한다.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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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주뜰과 김남주홀을 품고 있는 전남대 인문대학 건물. 김남주는 이름 석 자가 칼이고, 시였던 혁명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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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길은 여기에서 윤상원숲으로 이어진다. 윤상원 열사는 '오월광주의 영원한 대변인'으로 통한다.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5·18 때 '투사회보'를 제작했고, 항쟁지도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윤상원숲은 사회대 앞에 만들어졌다. 시민군들의 어록을 돌에 새긴 어록석 8개와 비석, 윤상원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회대 1층에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기념홀도 만들어져 있다.
윤상원숲에서 발걸음을 인문대 앞으로 돌리면 김남주뜰과 교육지표마당을 만난다. 김남주는 이름 석 자가 칼이고, 시였던 혁명시인이다.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을 위해 독재정권에 온몸으로 저항한 민중시인이다. 인문대 옆에 김남주뜰이 만들어져 있고, 바닥에 김남주의 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새겨 놓았다. 인문대 안에 김남주홀도 만들어져 있다.
인문대 앞에 있는 교육지표마당은 교수들의 유신교육 반대를 기념한 공간이다. 우리교육지표는 78년 6월 전남대 교수들이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비인간적인 교육정책과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고, 대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민주화를 선언한 사건을 가리킨다.
▲ 교육지표마당에 세워져 있는 '우리교육지표' 조형물. 5권의 책은 오월을, 11개의 잎사귀는 당시 11명의 서명 교수를 상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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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범대 건물에 걸려 있는 광주민중항쟁도.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의 공동체 정신과 통일운동의 열망을 담은 그림으로 90년 6월에 처음 그려졌다. 시간이 흘러 색이 변하고 칠이 벗겨진 것을 2017년에 복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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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 건물에는 광주항쟁을 묘사한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의 공동체 정신과 통일운동의 열망을 담은 그림이다. 90년 6월에 그려진 광주민중항쟁도이다. 시간이 흘러 색이 변하고 칠이 벗겨진 것을 2017년에 복원했다.
전남대5·18광장은 평소 돗자리 펴고 쉬기에 참 좋은 공간이다.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린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80년 봄, 학생들은 이 광장에 모여서 민주화를 외쳤다. 이후에도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광장 가운데의 수변공간인 '봉지'는 광복의 의미를 담아 지름 8.15m로 축소했다. 봉지의 물이 5·18광장에서 수로를 거쳐 정문까지 흐르도록, 민주화 물결이 이어지도록 연결한 것도 돋보인다.
▲ 전남대5.18광장은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린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80년 봄, 학생들은 이 광장에 모여서 민주화를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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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대수목원 풍경. 여러 가지 나무로 꾸며진 정원이다. 전남대민주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주는 학교숲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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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길에는 용봉열사 추모의 벽과 오월열사 기억정원이 있다. 추모의 벽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전남대 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기억정원은 80년 5월 죽음으로 저항한 전남대학생 서호빈, 류영선, 이정연 등 오월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후문 앞 '용지'도 전남대학교의 명소다. 1971년 향토사단의 장비를 지원받아 조성한 인공호수이다. 호수에 반영돼 비치는 주변 풍광도 멋스럽다. '호숫가에서 키스하는 커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흥미롭다.
평화의 길의 윤한봉 정원과 전남대수목원도 꼭 들러봐야 한다. 5·18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로 알려진 윤한봉은 1981년 4월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에서 청년운동과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93년 수배가 해제되고 12년 만에 광주로 돌아와선 5·18진상규명과 정신 계승운동에 앞장섰다.
▲ 인권의 길에서 만나는 용봉열사 추모의 벽.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전남대 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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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는 70년대 유신독재 반대운동, 80년대 이후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운동까지,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민주길에는 70∼80년 당시의 구호와 유인물, 민주와 통일운동 구호를 새긴 바닥도판 100여 개도 깔려 있다. 구호나 문구를 보면서, 당시의 모습도 떠올려볼 수 있다.
▲ 전남대역사관 내부 풍경. 전남대 민주길은 광주, 나아가 ‘한국의 민주길’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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