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슈퍼마리오' 시작은 무전여행에서 마주한 터널(下)
'뽀빠이' 협상 불발이 촉발한 마리오 제작
극장 영화로 대박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
1990년 서울 잠실서 '슈퍼마리오 대축제'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팁이다.
* 에 이어
*닌텐도는 1980년대 초 만화 '뽀빠이'를 비디오 게임에 활용할 권리를 얻으려고 킹 피처스와 협상을 벌였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캐릭터들을 쓸 수 있다고 보고받았으나 협상은 막판에 실패로 돌아갔다(닌텐도는 차후 재협상을 추진했고 사용권을 확보해 게임을 제작했다). 미야모토는 다른 아이디어를 모색하다 '미녀와 야수'를 떠올렸다. 줄거리를 단순화하고 킹콩을 닮은 고릴라 캐릭터를 개발했다. 특출나게 사악하지도 난폭하지도 않은 웃기고 짓궂은 애완동물이었다. 주인공도 고릴라보다 딱히 나을 게 없는 '웃기고 심술궂은 녀석'이었다. 미야모토는 "그 고릴라는 치욕스러웠을 거예요. 그렇게 심술궂은 땅딸보 주인공의 손에 길러졌으니 참으로 불행한 녀석이죠"라고 말했다. 기회를 넘보던 고릴라는 탈출하면서 주인공의 아리따운 여자친구를 유괴해버린다. 목적은 상해가 아니라 못된 주인공을 향한 복수였다.
*미야모토는 멍청하고 경솔한 주인공을 원해서 미남도 영웅도 아닌 평범한 목수를 선택했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월터 미티 같은 인물처럼 보이길 원했다. 미티는 미국 만화가 제임스 서버가 발표한 단편 '월터 미티의 비밀생활'의 주인공이다.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지기를 즐기는 소심한 인물을 비유하면서 자주 언급된다. 미야모토는 커다란 스케치북에 코를 하나 그려놓고는 "코의 존재 여부에 따라 천양지차가 난다. 코의 모양은 많은 걸 말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수북한 콧수염을 그려 넣어 주먹코를 도드라지게 했다. 만화 캐릭터들이 가득 그려진 자신의 낡은 공책에서 커다랗고 우스꽝스러운 눈을 발췌해 마리오의 원형을 만들었다.
*기술자들은 비디오 게임에서 게이머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화면에서 몸통을 부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야모토는 통통한 체형에 밝은 목수용 작업복을 입혔다. 앞뒤로 휘두르는 몽땅한 팔을 그려 넣어 생동감을 부여했다. 비디오 게임 특성상 머리카락을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캐릭터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머리카락이 위쪽으로 휘날려야 했다. 미야모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빨간 모자를 씌우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멋진 헤어 스타일을 만들기는 어렵겠는걸."
*미야모토는 소녀를 유괴한 고릴라가 공사가 한창인 빌딩 꼭대기로 기어오르고, 목수가 이를 따라잡으려고 기동작전을 수행하는 구상으로 가닥을 잡았다. 빌딩으로 따라 들어온 땅딸보 목수를 향해 고릴라가 시멘트·기름통, 들보 같은 건축자재를 마구 던져대면 목수는 그것들을 피하며 경사로를 뛰어오르거나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고릴라에게 접근하는 내용이었다.
*미야모토는 사나우면서도 영악한 고릴라 이름을 당나귀처럼 고집이 세고 교활하단 점에서 착안해 두 단어를 조합한 '동키 콩'으로 지었다. 소식을 들은 닌텐도 미국 지사 판매팀 중역들은 최고 결정권자인 야마우치 히로시 회장이 돌았다고 생각하며 난처해했다. "동키 홍? 콩키 동인가? 홍키 동이라고?" 한창 판매되던 게임들의 명칭은 절단, 파괴, 암살, 절멸 같은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판매 직원들은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을 레이저 광선으로 저격하는 게임을 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이제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할 판이라며 '동키 콩'을 비난했다. 야마우치는 모든 불평불만을 전해 듣고도 무시했다.
*미야모토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기획 초기에 연필로 '동키 콩'에 등장할 멜빵바지 차림 주인공을 스케치했다. 이름은 '마리오'라고 지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목수보다 배관공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미야모토는 평가를 흘려듣지 않았다. 배경에 장애물인 동시에 비밀의 세계로 통하는 입구인 초록색 대형 하수관을 배치했다.
*미야모토는 영화 '스타 트렉' 속 뒤틀린 공간이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먹으면 강해지는 버섯 같은 소재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 자유롭게 빌려 썼다. 가장 매력적인 아이디어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과 기억에서 유래했다. 마리오는 자주 점프한다.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당연히 어떤 사건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서는 힘을 강하게 해주는 버섯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숨겨진 문들이 나오곤 한다. 미야모토는 "내가 경험하고 목격한 일들을 과장해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하이킹하다가 호수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우연히 마주친 그곳은 무척이나 신기해 보였지요. 그렇게 무전여행에서 모험으로 만끽할 수 있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 내가 대학을 다닌 도시인 가나자와는 모든 것들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늘 걸어 다녔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터널입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 출구로 나왔는데 눈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어요." 그의 게임에서 터널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미야모토가 만든 게임 세계에는 엄청난 모험과 커다란 위험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교토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인근 건물 담장에 작은 맨홀 뚜껑 하나가 얹혀 있었어요. 그쪽으로 자주 걸어 다녀서 알 수 있었죠. 나는 궁금했습니다. 하필이면 왜 담장 위에 맨홀이 있는지, 그리고 그 맨홀이 어디로 통하는 것인지를요." 그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게임을 통해 여러 차례 시도했다.
*미야모토는 닌텐도 연구개발 4부 책임자로 임명되면서 프로듀서라는 직함을 얻었다. 그것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우상처럼 여기던 조지 루카스 감독과 직함이 똑같아졌기 때문이었다. 미야모토가 가장 좋아한 영화는 루카스 감독이 각본을 쓰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레이더스(1981)'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은 출시되기 몇 달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1989년 겨울 개봉한 영화 '전자오락의 마법사' 때문이다. 아이들은 한 장면만 보고도 마리오를 금세 알아챘다. 점프할 때 호루라기 소리가 달라졌다는 사실도 눈치챘다. 한편으로는 마리오가 너구리로 변장하고 하늘을 나는 모습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다음 출시될 게임에 새로운 능력이 반영된다는 소문은 학교, 놀이터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입소문 덕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으로 기록됐다. 미국과 일본에서만 각각 700만 장과 400만 장 판매됐다.
*'전자오락의 마법사'를 내세운 판매촉진 전략은 어떤 유료 광고보다 값진 성과로 이어졌다. 탐 폴락 유니버설 픽쳐스 대표는 닌텐도 측에 비디오 게임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1989년 개봉하려고 계획한 영화 '젯슨 가족' 준비가 미흡해 이를 대체할 크리스마스용 영화로 제작할 심산이었다. 닌텐도는 유니버설 픽쳐스로부터 라이선스 로열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영화 대본·장면에 삽입될 게임 내용과 노출 시간을 검토할 권리까지 얻었다. 가장 노골적인 홍보 장면은 캘리포니아 칼 아츠 대학 극장에서 촬영됐다. 관객이 떠들썩한 가운데 아나운서가 열광적인 목소리로 선언한다. "세계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멋진 비디오 게임으로 세기의 결전이 시작됩니다!" 이내 커튼이 열리고 나란히 늘어선 모니터들이 켜진다. "바로 이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 유니버설 픽쳐스는 이 세트 설치에만 10만 달러를 썼다. 닌텐도는 자력으로 이 정도의 광고를 만들 수 없었다. 영화는 게임 출시 4개월 전에 공개됐다. 극장가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에 등장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 때문에 크게 주목받았다.
*닌텐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TV 광고를 만들었다. 게임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어린이 수천 명이 열광적으로 "마리오! 마리오! 마리오!"라고 외치는 모습만 나왔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 '마리오!'를 외치는 거대한 인파가 드러났다. 카메라는 줌아웃을 이어가 우주로 빠져나갔고, 그곳에서 본 지구의 북아메리카 대륙은 마리오의 얼굴처럼 나타났다. 닌텐도는 TV 광고 외에도 맥도날드와 제휴해 '마리오 해피밀' 세트를 내놓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홍보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배급사는 유니버설 픽쳐스다.
*'슈퍼마리오'나 '소닉' 같은 횡 스크롤 액션 게임은 한때 최고 인기 장르였으나 3D 기술 발전과 함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야채부락리', '그랜드체이스', '메이플스토리', '던전 앤 파이터' 같은 횡 스크롤 액션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 주목받는 장르로 부상했다.
*1990년 5월 잠실학생체육관에서는 '현대 컴보이 슈퍼마리오 대축제'가 열렸다. 무료로 입장한 관람객 1만 명이 일제히 "마리오!"를 연호했다. 대부분 부모랑 온 아이들이었다. 많은 부모는 13만 원이던 현대 컴보이를 바로 구매해 아이에게 선물했다. 1990년 대기업 신입 사원 월급은 50만 원 수준이었다. 한 달 벌이가 20만 원도 안 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13만 원짜리 비디오 게임기는 지금 돈 가치로 따지면 150만 원 이상의 사치품이었다. 사전 행사에서 심형래는 '쇼 비디오 쟈키'의 '벌레들의 합창'을 선보였다. 똥파리, 나비, 메뚜기, 개미, 풍뎅이, 지네로 분장한 개그맨들이 한바탕 웃기는 개그 코너였다.
*'슈퍼마리오'는 모든 마리오의 기본 닉네임이 돼버렸다. 포뮬러 원 챔피언 마리오 안드레티는 슈퍼마리오를 따라서 지은 이름이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는 물어본 어린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렇다"고 답했다.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도 슈퍼마리오라고 불린다. 이 밖에 같은 이름은 가진 유명인으로는 하키의 마리오 르뮤, 미식축구의 마리오 윌리엄스, 이종격투기의 마리오 미란다, 사이클의 마리오 치폴리니, 축구의 마리오 바슬러, 마리오 고메즈, 마리오 발로텔리 등이 있다. 마리오는 라틴어 마리우스나 마르쿠스의 변화형이다. 두 단어는 모두 전쟁의 신 마르스에서 유래했다.
*'슈퍼마리오'에서는 행복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월드 1-1의 경우 행복이 전염되는 신디사이저 살사다. 마리오가 지하 레벨로 들어가면 긴장감으로 가득한 저음 깔린 배경 음악이 시작된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음악이 누그러지며 거의 가라앉는다. 마리오가 파워업 별을 획득하면 베토벤 9번 교향곡이 33-1/3 속도로 플레이되는 것만큼 빠르고 흥분된 박자로 바뀐다. 이 음악들은 모두 비디오 게임 작곡가 콘도 코지의 작품이다. 각각의 곡을 게임 배경으로 돌려보고, 머릿속에서 다시 여러 번 돌려봤다고. 그는 몇 초 길이의 미니 곡을 여러 개 만든 뒤 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사람들의 귀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인기 있는 음악 꼭지들을 쭉 이어서 붙인 것이다.
*마리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우 피터 쿨렌이다. 그동안 '곰돌이 푸'의 멀텅구리 이요르,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 등을 연기했다.
*미야모토는 게임 기획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인터랙티브아트 앤 사이언스 학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참고 자료 : 데이비드 셰프 지음·김성균·권희정 옮김·발행처 이레미디어 '닌텐도의 비밀(2009)', 김영한 지음·발행처 한국경제신문사 '닌텐도 이야기(2009)', 인문학협동조합 엮음·발행처 요다 '81년생 마리오(2017)', 블레이크 J. 해리스 지음·이미령 옮김·발행처 길벗 '콘솔 워즈(2017)', 제프 라이언 지음·박기성 옮김·발행처 에이콘 '닌텐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2015)', 김정남·김정현 지음·발행처 e비즈북스 '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획과 시나리오(2018)', 야마자키 이사오 지음·정우열 옮김·발행처 라의눈 '닌텐도 컴플리트 가이드: 컴퓨터 게임 편(2021)'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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