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탈북민 피폭 전수검사…"식수원도 조사"
방사성 물질 노출된 특산물…韓中日 밀수
통일부가 오는 15일부터 탈북민을 대상으로 피폭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돌입하는 가운데 오염 가능성이 제기된 식수원도 조사하는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번 검사는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주민들은 물론 주변 국가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특히 통일부는 식수로 사용되는 지하수가 주된 피폭 경로로 지목된 만큼 '식수원 문제'까지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14일 정부 관계자는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15일 첫 검사를 시작으로 방사선 피폭검사를 실시한다"며 "검진 현장에서 문항조사를 통해 북한에 있을 당시 식수원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7~2018년에도 피폭검사가 진행된 바 있지만, 정부가 식수원까지 조사한다고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는 2006년 1차 핵실험 뒤 탈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및 인근 지역 출신 796명을 전수조사 대상자로 설정했으며, 올해 조사에선 희망자 89명을 검사한다. 최근 입국 순으로 추려낸 80명은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신규로 방사선 피폭검사를 실시하며, 2017~2018년 검사 당시 이상 수치가 검출됐던 9명에 대해서는 추적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본지가 입수한 검사 계획(안)에 따르면 방사선 피폭검사는 ▲전신계수기 검사 ▲소변시료 검사 ▲안정형 염색체이상 검사 등으로 진행된다. 전신계수기 검사로 호흡·섭취 등을 통해 체내 감마선 방출핵종을 측정하며, 안정형 염색체이상 검사로는 누적 방사선량을 분석한다. 이상 소견자는 과피폭 당시 급성 피폭선량을 분석하는 '불안정형 염색체이상 검사'를 추가로 실시한다.
총 투입 예산은 1억8900만원으로, 이 가운데 추가 검진비용(불안정형 염색체이상 검사)으로 30명분에 해당하는 1800만원을 책정했다. 2017~2018년 검사에 응한 40명 가운데 9명(22.5%)에게 이상 수치가 나온 점을 고려하면, 신규 검사자 80명 중 30명(37.5%)에 대한 이상 소견을 예상한 점은 통일부가 그만큼 사안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식수원 조사 방침을 처음 공개한 것도 유의미한 지점이다. 주민들이 식수로 쓰는 지하수는 유력한 피폭 경로지만, 과거 조사에선 언급된 적 없다. 위력이 가장 강력했던 6차 핵실험 당시 국회에 출석한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핵실험 뒤 계속된 지진들은 지반 균열과 방사선 누출을 시사한다"며 "무서운 건 지하수다. 아웃 오브 컨트롤(통제불능) 상태"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원인 모를 귀신병…文정부 "핵실험 탓 단정 못해"
6차 핵실험 뒤 방사성 물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문재인 정부도 2017~2018년 두 차례 탈북민 피폭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조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문제가 제기됐고, 대북 유화 기조 속에 마땅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먼저 2017년 검사에선 피검자 30명 중 4명에게 이상 수치가 검출됐다. 279~394mGy 사이 분포를 보였는데, 이때 mGy(밀리그레이)라는 단위는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보여주는 '흡수선량'을 뜻한다. 일반인 기준 일상에서 5mGy 안팎의 분포를 보인다. 2018년 검사에선 10명 가운데 절반에게 이상 수치가 나왔다. 특히 한 여성은 1386mGy에 달하는 수치가 검출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작업자의 피폭량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다. 나머지 4명도 279~493mGy 사이 분포를 보였다. 전신 CT 촬영을 해도 높아야 10mGy 안팎이 검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사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흡연력 등 교란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며 북한의 핵실험과 기이한 피폭량 간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2017년 12월 첫 검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에는 피검자 30명 가운데 4명에 대해서만 제한적인 공개가 이뤄졌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김정은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희망한다'는 신년사를 냈다. 정치적 의도로 북한이 민감하게 여길 피폭검사를 소극적으로 처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핵물리학 전문가는 "1000mGy는 교란변수의 영향으로 나타날 수준을 한참 지난 수준"이라며 "당장 의료적 조치부터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교란변수를 논하는 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질타했다.
남한도 안심 못할 水…통일부 "철저히 검증할 것"
정부 차원의 검증이 무위로 그친 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주민에게 확산될 우려를 4년간 추적·조사했으며, 그 결과가 담긴 특별보고서를 올해 2월 국제사회에 공개됐다. 물을 통한 주민들의 피폭은 물론 주변 국가까지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자, 윤석열 정부는 전수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전수조사가 시급한 이유는 방사성 물질의 확산 경로가 '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장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오염시켰다면, 이 지하수로 자란 길주군 일대 농수산물 역시 오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칠보산 송이'를 비롯한 북한산 특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밀수·유통되는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피해 권역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정부 시절 검사에 대해 "대조군이 없었고 표본 수가 적었던 데다 교란변수에 대한 정보 부족 등 이유로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기된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전면 재조사를 결정했다"며 "투명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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