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사는 청년인 게 문제일까요” 출산정책 물음표 못 떼는 2030 [윤정부, 청년 동행 1년]
지난해 국내 합계출산율 0.78명.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숫자다. 대한민국은 아이 ‘1명’을 가질 수 없는 나라다. 윤석열 정부는 ‘결혼하지 않는’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국민을 끌어안기 위해 논의와 토론을 거듭했다. 이어 저출생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거듭되는 취업난, 날로 치솟는 집값과 물가로 인해 삶이 각박한 젊은층에서는 이러한 지원책을 놓고 회의적인 반응이 가시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꼬리를 문다.
믿음과 신뢰의 정책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1차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과감한 대책’, ‘재정 집중 투자’를 주문했다. 저출생 정책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냉정하게 다시 평가하고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보자고 했다. 이날 회의는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조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저출산위가 밝힌 대책에는 △다자녀 가구 지원 강화 △아이돌보미 수당 단계적 인상 △국공립어린이집 연 500곳 규모 확충 △출산휴가·육아휴직 이행력 제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대상·기간·급여 확대 △청년·신혼부부 분양·임대주택 공급 증대 △자녀장려금 지급 기준·금액 개선 △임신 전 건강관리제 국가 운영 등이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여러 사회문화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저출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15년간 예산 280조원을 투입했지만 그 결과가 ‘합계출산율 역대 최저’라며 기존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을 통해 ‘국가가 아이들을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믿음과 신뢰’를 국민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집 줄게, 아이를 다오
오는 10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29세 직장인 임지연씨. 기자를 마주하자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들으실 얘기가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거 아닌가요?” 10년간 연애 끝에 한 살 연하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인 그는 걱정이 어깨를 짓누른다고 했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단연코 ‘집’이다. 직장은 서울 중심에 있는데 주거지는 어째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한다. 정부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공급을 늘려준다던 공공분양·공공임대 주택은 도대체 잡을 수가 없다. “제 생애에서 당첨이 가능할까요?”
임씨는 임대주택 당첨이 간절하다. 민간주택 문턱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임대주택이 집 걱정을 내려놓게 하는 대안은 아니다. “임대주택 되더라도 마냥 그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좁은 집에서 아이까지 키우자니 부담스럽고 대출 상환은 까마득하죠.”
임씨는 최근 ‘대체 집이 뭔가’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생각의 끝은 감당하기 싫은 굴레다. “아이를 낳으면 주택 분양 가점을 준다는 식의 대안은 어느 시대 발상인지 모르겠어요. 새 집을 줄 테니 아이를 달라는 건가요? 자녀 수에 따라 주거 면적을 늘려준다고 해서 아이를 얼마나 더 낳겠습니까?”
결혼하려고 일하고 아이 낳으려고 일하고
33세 김정환씨는 결혼을 미루고 미룬다.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혼은 곧 돈이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는 일 하나하나에 돈이 들어가잖아요. 집 구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을 근근이 이어가며 내 아이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김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4년간 학원 강사를 하다가 지난해 말 중소기업 홍보부서에서 계약직 근무를 시작했다. “먹고 살만해야 아이를 낳죠. 집안 형편이 나빠 제가 공부를 어렵게 했어요.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아이를 위한 통장부터 미리 만들 겁니다.”
여자친구도 결혼은 시간을 갖고 하자는 데 동의를 한 상태다. 둘은 김씨가 일하던 학원에서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제를 했다. 얼마 전 김씨의 이직은 서로 상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학원 강사 급여가 빠듯해요. 결혼을 하려면 둘 중 하나는 새로운 일을 찾아 경력을 쌓아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사실 결혼을 위해서, 또 언젠가 생길 내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일’과 ‘아이’ 사이 불안
조은영(가명·27세)씨는 지난 해 결혼식을 올리고 춘천으로 이사를 왔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춘천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배려해 출퇴근길 고생을 감수하기로 했다. “서울보다 집값이 싸고, 그나마 기차역이 가까워서 배차 시간만 잘 맞으면 1시간30분 안에 회사에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기에는 불안하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를 가게 됐을 때 급하게 챙겨야 할 상황이 생길 경우 사실상 대처가 불가능하다. “육아 중인 지인을 보면서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보기는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들이 주로 퇴사하는 걸 보고 아직 자녀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고요. 우리 부부는 아직 젊어요. 나중에 친정이 가까운 서울이나 경기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조씨의 남편이 공공기관에 다녀도 육아휴직은 힘들다.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간다고 하자 반대한 사례도 있었다. “육아휴직이 남은 직원들의 반감을 사더라고요. 근로시간 단축도 그렇고 지금처럼 다른 직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구조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듯 해서 조심스러워요. 아이 맡길 곳을 늘리는 제도보다는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지원책을 확대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UN 인구보고서 “한국, ‘나쁜 사례’”
쿠키미디어가 공동 진행해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출생 ‘소멸되는 나라 한국’’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김동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는 아무리 많은 예산을 편성해도 현 정부가 여러 정책을 나열하는 기조를 유지한다면 저출생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국가 존립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UN 인구보고서는 한국을 출산율 정책의 부정적 사례로 언급합니다. 한국이 ‘출산권’보다 ‘출산율’에 집중해 근시안적인 정책들을 쏟아냈다고 보는 것이죠. 출산율 목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정책인 셈입니다.”
김 대표는 가정을 꾸릴 수 없는 노동 여건이 근원적 요인이라고 짚었다. 젊은 남성은 일자리, 주거, 교육 현실에 대한 부담으로 결혼을 할 수 없고 또 노동 시장 내 성차별, 장시간 근무, 열악한 조건 때문에 여성들도 출산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사회 지출부터 OECD 최하위에 묶여 있는데 각종 감세조치를 내놓고 노동시간 연장을 운운하면서 출생률을 높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출산을 장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청년층의 소득 향상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경제 개혁 과제의 일환으로 두고 의식 개혁, 구조 개혁을 연동해야 합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히 젠더 갈등이 선결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를 없애야 출산율을 올릴 수 있어요. 결혼 초까지 쌓았던 경력이 무너진다면 당연히 자녀 계획을 미루거나 피하게 되죠. 정부도 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해요. 시월드, 경력단절 등 2030세대 여성의 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정상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박선혜, 김성일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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