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날개 단 K-배터리, 기세 몰아 악재 돌파 [위기 넘는 기업들-5]
2분기는 물론 앞으로도 '승승장구' 전망
"FEOC는 주의해야"…탈중국 위한 노력 필수
'팬데믹'보다 더 가혹한 '엔데믹'이 전 산업계를 휘감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위기, 미중 갈등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 압박 등 각종 악재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부진한 1분기 성적표를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익성을 방어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위기 극복 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코로나19가 지나가자마자 찾아온 각종 악재에 전방산업들은 진땀을 빼고 한국의 ‘경제 대들보’ 반도체 산업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계속해 상승하는 미국 금리, 옥신각신하는 미중과 러-우 전쟁 장기화 등은 우리 기업들을 압박하고만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승기를 잡은 산업이 있다. 바로 K-배터리다. 미-중 공급망 전쟁의 여파로 불확실성이 커졌으나, 결국 위기는 기회가 됐다. 미국이 배터리 소재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를 목적으로 시행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오랜 기간 기술력과 안정적 양산능력을 쌓아온 K-배터리에게는 성장의 발판이 되고 있다.
올해 1분기부터 IRA 시행 효과는 현실화됐다. LG에너지솔루션이 1003억원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맛본 것이다. 올해부터 미국 내에서 생산 및 판매한 셀, 모듈에 일정액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셀은 킬로와트시(㎾h)당 35달러, 모듈은 ㎾h당 10달러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올 한해는 미시간 단독법인과 제너럴모터스(GM) 합작법인(JV) 1공장에서 배터리셀을 생산하고 있어 15~20GWh 안팎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다.
이외에도 현지에서 다수의 프로젝트가 진행하고 있는 만큼, 향후 받게 될 수혜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현지에서 추진 중인 양산 프로젝트 총 규모는 현 기준으로 250GWh 수준으로 추정된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미국 애리조나에서의 단독공장, 미국 오하이오주에서의 일본 혼다와의 합작공장 등이다.
아직 계산이 덜 끝난 SK온은 올해 2분기 실적부터 AMPC를 반영할 예정이다. 아직 규모를 구체화하지 않았으나, 올해 북미 예상 판매량인 10~15GWh에 근거해 반영할 예정이다. 당초 SK온은 AMPC 규모를 올해 7100억원, 내년 1조원 정도로 예상했다.
양사와 달리 미국 공장을 확보하지 못한 삼성SDI는 당분간 AMPC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지만, 2025년을 기점으로 수혜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과 같이 연간 수 규모는 수천억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제너럴모터스(GM)와 각각 손을 잡고, 미국 현지 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은 2025년 1분기부터, GM과의 공장은 2026년부터 가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요즘 가장 ‘핫’한 산업 배터리, 앞길도 탄탄대로
올해 1분기 배터리 기업의 모습은 어려운 경영환경으로 고전하는 기업들의 모습과는 참 많이 동떨어졌다. 매년 급등하는 전기차 수요와 함께 배터리 기업들의 실적은 꺾일 줄을 모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매출 8조7471억원, 영업이익 6332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1.4%, 영업이익은 144.6% 증가했다. 이 같은 실적은 미국 시장에서의 선제적인 투자와 생산능력 확보, 한발 앞선 공급망 구축 등을 통해 고객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삼성SDI는 IRA 효과 없이도 분기 최대 매출을 갈아치웠다. 삼성SDI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5조3548억, 영업이익 375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32.2%, 영업이익은 16.5% 증가했다. P5 배터리와 같은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고객사를 사로잡은 결과다.
SK온은 일회성 비용으로 적자가 확대됐지만, 분기 기준 최대 매출을 시현했다. 북미 시장 배터리 성장성 및 수익성 측면에서 긍정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단 점에서 2분기부터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이후의 실적도 탄탄대로다. IRA 시행으로 인한 수혜와 함께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 행렬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매출은 1분기와 유사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전기차 수요의 견조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또 올 한 해 전반적으로는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도 내다봤다. 이창실 부사장은 “연간 매출은 현재 기준으로 지난해 대비 30% 이상 성장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며 “메탈 연동에 따른 매출 증감도 고려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도 P5 배터리의 호조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i4, iX, E-Tron 등 주요 고객사 프리미엄 모델 대상 P5 배터리 출하가 호조”라며 “프리미엄 신모델 효과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온은 2분기부터 AMPC를 반영하면서 적자 꼬리표를 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증권가들이 예상하는 SK온의 AMPC규모는 2000억 중반에서 3000억 사이다.
“평화롭지만은 않아”…中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계속돼야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앉아 여유를 부릴 만한 형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미국 현지 투자비 및 제품 생산비 증가, 중국의 저가 압박, 핵심 소재 탈(脫)중국화 등 풀어야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배터리 부품 및 광물 조달 규제 강화가 향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내재화 및 공급망 다변화에 전력을 다해야하는 상황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3월 31일(현지시각) 양극판·음극판을 배터리 부품으로 규정하고, 양극활물질은 부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관리 세부 지침 규정을 시행했다.
현재는 광물을 폭넓게 인정하고, 지침을 강화하지 않았으나 2025년부터 시행될 ‘해외우려단체(FEOC)’는 주의 깊게 봐야한다.
아직 세부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IRA 시행 목적이 중국 기업 배제인 만큼, 중국 기업들 대부분이 이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국 기업이 이름을 올릴 경우 2025년부터는 중국에서 핵심광물을 조달하지 못하게 된다.
핵심광물의 경우 중국의존도가 높기에 배터리 기업 발등에는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과 니켈의 경우 중국산 비중이 90%에 육박한다. 의존도는 점차적으로 감소하지도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배터리 양극재 소재 수산화리튬 수입액은 전년 대비 490.3% 급증한 21억6000만 달러(한화 2조8000억원)나 됐다.
그럼에도 배터리 기업들은 ‘극복 가능한 난관’ 정도로 보고, 이를 격파할 수 있단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이전부터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고 전략을 펼쳐왔단 점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공급망 수직계열화에 나섰기에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도전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식은 주로 배터리 부품, 재료의 밸류체인을 현지화하는 것이다. 현지 지분 투자, 장기 공급계약 등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중국 리튬화합물 제조업체 야화와 아프리카 모로코 지역에서 수산화리튬을 생산하기로 했다. 모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로, IRA 규정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호주 라이온타운과는 5년간 수산화리튬 원재료 리튬 정광 70만t 확보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외에도 세계 1위 리튬 보유국 칠레의 리튬 업체 SQM과 9년간 수산화·탄산리튬 5만5000t 공급 계약 등을 체결했다.
SK온은 1조2100억원을 들여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핵심 소재인 전구체 또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소재 중 하나다.
이와 함께 웨스트워터 리소스와 배터리 음극재 공동 개발에 나서는 등 미국 광물개발 기업들과 잇따라 손을 잡고 있다.
삼성SDI는 포스코퓨처엠과 10년간 40조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퓨처엠은 경북 포항 영일만 4일반산업단지에서 연산 3만t 규모의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공장을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된 재료를 삼성SDI에 공급한다. 규모는 배터리용량 60KWh 기준 전기차 약 30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활하게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며 “중국 비중이 크다보니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광산개발부터 다양한 기업들과 MOU를 하는 등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중국이 갖고 있는 재료도 많고, IRA 시행으로 호주나 캐나다, 칠레 등 FTA체결국 업체에 많은 배터리업체가 몰리면 가격이 상승될 수 있단 우려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는 재료를 다양하고 선제적으로 확보하는게 중요하다”며 “FEOC에 중국이 포함하는 건 당연한 것 같고, 현지화를 시급하게 해야하는 것도 맞다. 대략적으로 조달국이 북미와 FTA체결국으로 정해졌으니, 기존에도 해왔던 공급망 다각화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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