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책상엔 尹의 초심이 있다…尹이 흔들리면 꺼내드는 것

박태인 2023. 5.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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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는 지난해 5월 10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당시 전 세계를 향해 읽은 취임사가 있다. 취임사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윤 대통령의 초심(初心)과 같다. 대통령실 참모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평소 참모들에게도 “초심을 잃은 것 같을 때면 취임사를 천천히 읽어본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한다. 손수 고치고 또 고치며 굳은 마음을 갖고 취임사를 적어내려갈 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다시 찾아 읽는다는,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한 취임사는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여느 대통령의 취임사와 달리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자유를 보편적 가치라 규정했고, 연설의 대상을 ‘세계 시민’으로 넓혔다. 취임식에서 밝힌 국정철학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자유와 연대로 위기를 극복하자”며 자유를 21번 언급했다. 지난달 미국 국빈방문 당시 윤 대통령의 하버드대 정책 연설의 주제 역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의 크고 작은 모든 메시지는 취임사의 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자유를 향한 여정'이란 주제의 정책 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의 ‘말’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주목받았다. 주요 기념식마다 통상의 관례를 따르기보단 자신의 화법과 언어를 가감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주요 행사의 경우 윤 대통령이 연필을 들고 직접 집필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화법으로 주목받은 또 다른 연설은 지난해 5월 첫 국회 시정연설이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며 협치를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손을 잡은 영국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야당인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 대표를 국회로 소환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틀 뒤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엔 보수 대통령 최초로 여당 의원 전원과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유와 정의,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입니다”는 말로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냉전 시기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인 “모든 자유민은, 그 사람이 어디에 살든 베를린 시민입니다”는 연설의 오마주였다.

초심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이지만 야당을 향한 메시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과는 조금 달랐다. 대선 당시 경쟁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들어선 뒤 정치 환경이 더 악화되면서 윤 대통령의 언어도 점차 거칠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반대만 하는 야당의 태도를 보며 기대를 접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수차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한 첫 시정연설과 달리 야당이 보이콧했던 지난해 10월 시정연설에선 협치를 언급한 건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한 문장 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방일 뒤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야당을 겨냥했다. 그 뒤 4·19 혁명 기념사에선, 현장에 있던 이재명 대표를 앞에 두고 “돈에 의한 매수로 (민주주의는) 도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고에 없던 표현으로, 윤 대통령이 야당의 돈 봉투 의혹을 직격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19일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혁명 기념식에 입장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형용사나 부사 등 미사여구는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또 주장보단 팩트를 최대한 많이 담는 것이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초안을 보고받으면 직접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연설문을 뜯어고치는 것도 ‘용산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미 의회 연설문을 작성할 땐 초안을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잘난 척 말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영어로 쓰라”며 아예 돌려보낸 적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허황된 평화를 약속하거나, 공허하게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그런 연설은 지양하려 한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통령 연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그런 만큼 내용이 직설적이고 거칠어 야당의 반발도 피해갈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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