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책상엔 尹의 초심이 있다…尹이 흔들리면 꺼내드는 것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는 지난해 5월 10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당시 전 세계를 향해 읽은 취임사가 있다. 취임사는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윤 대통령의 초심(初心)과 같다. 대통령실 참모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평소 참모들에게도 “초심을 잃은 것 같을 때면 취임사를 천천히 읽어본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한다. 손수 고치고 또 고치며 굳은 마음을 갖고 취임사를 적어내려갈 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다시 찾아 읽는다는,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한 취임사는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여느 대통령의 취임사와 달리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자유를 보편적 가치라 규정했고, 연설의 대상을 ‘세계 시민’으로 넓혔다. 취임식에서 밝힌 국정철학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자유와 연대로 위기를 극복하자”며 자유를 21번 언급했다. 지난달 미국 국빈방문 당시 윤 대통령의 하버드대 정책 연설의 주제 역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의 크고 작은 모든 메시지는 취임사의 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의 ‘말’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주목받았다. 주요 기념식마다 통상의 관례를 따르기보단 자신의 화법과 언어를 가감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주요 행사의 경우 윤 대통령이 연필을 들고 직접 집필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화법으로 주목받은 또 다른 연설은 지난해 5월 첫 국회 시정연설이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며 협치를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손을 잡은 영국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야당인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 대표를 국회로 소환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틀 뒤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엔 보수 대통령 최초로 여당 의원 전원과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유와 정의,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입니다”는 말로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냉전 시기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인 “모든 자유민은, 그 사람이 어디에 살든 베를린 시민입니다”는 연설의 오마주였다.
초심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이지만 야당을 향한 메시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과는 조금 달랐다. 대선 당시 경쟁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들어선 뒤 정치 환경이 더 악화되면서 윤 대통령의 언어도 점차 거칠어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반대만 하는 야당의 태도를 보며 기대를 접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수차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한 첫 시정연설과 달리 야당이 보이콧했던 지난해 10월 시정연설에선 협치를 언급한 건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한 문장 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방일 뒤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야당을 겨냥했다. 그 뒤 4·19 혁명 기념사에선, 현장에 있던 이재명 대표를 앞에 두고 “돈에 의한 매수로 (민주주의는) 도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고에 없던 표현으로, 윤 대통령이 야당의 돈 봉투 의혹을 직격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형용사나 부사 등 미사여구는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또 주장보단 팩트를 최대한 많이 담는 것이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초안을 보고받으면 직접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연설문을 뜯어고치는 것도 ‘용산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미 의회 연설문을 작성할 땐 초안을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잘난 척 말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영어로 쓰라”며 아예 돌려보낸 적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허황된 평화를 약속하거나, 공허하게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그런 연설은 지양하려 한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통령 연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그런 만큼 내용이 직설적이고 거칠어 야당의 반발도 피해갈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악 전공한 30대 트로트 가수 숨진채 발견…현장서 유서 발견 | 중앙일보
- “송파가 강남 된 건 우리 덕” 아시아·올림픽선수촌 파워 | 중앙일보
- 한국인 명품소비 잠재웠다…8000억 매출 대박 난 패션 브랜드 | 중앙일보
- 난교파티서 50만원 내고 여고생과 성관계…일본 고교 교사 였다 | 중앙일보
- "中, 이곳 먹으면 폭망한다"…美 놀래킨 워게임 시뮬레이션[글로벌 리포트] | 중앙일보
- 세쌍둥이 가장 많이 받아낸 남자…그의 초대에 1800명이 모였다 | 중앙일보
- 삼다수, 냉장고 넣으면 맛없다?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 [비크닉] | 중앙일보
- [단독] 안부수, 이화영 라인 잡았다…北송금 재판 '갑툭튀' 국정원 | 중앙일보
- "中 공격하면 방어 능력있냐" 고교생 질문에…차이잉원 답변 | 중앙일보
- 집안일 안 해도 이건 꼭 했다, 세 딸 하버드 보낸 '엄마의 비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