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1인가구] 오늘도 받기 싫은 전화... 6년째 이러고 삽니다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 <편집자말>
[변은섭 기자]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밤 10시 20분 땡과 함께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아 전화 받기가 너무 싫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방바닥을 굴러다니다 결국 꾸역꾸역 핸드폰을 집어 든다.
"헬로우~."
그렇게 나의 전화영어는 오늘도 시작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별의별 취미를 다 갖고 살던데, 나는 취미랄 게 딱히 없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에 별다른 취미도 없으니 시간이 남아돈다.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 수는 없다 싶어 나만의 취미처럼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 나만의 취미처럼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
ⓒ elements.envato |
필리핀 영어 선생님과 통화로 수업을 진행하는 전화영어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고작 10분이었던 수업시간 내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식은땀이 비 오듯 줄줄 흘렀다. 수업을 마치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따로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한 영어는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인 상태였고,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때려치우고 말아야지' 싶었지만, '하루만 더, 이틀만 더' 하며 마의 3개월을 넘기고부터는 온몸에 열려 있던 땀구멍도 잦아들었고, 한 문장, 두 문장 입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을 보내고 전화영어를 시작한 지 어느새 6년이 되었다.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아직도 영어를 잘하지는 못한다. 6년 공부하면 원어민처럼 영어를 거침없이 말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음....'과 '어....'가 태반인 문장을 띄엄띄엄 말하는 것이, 딱 유년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 선생님과 오랜 시간 수업을 함께해서인지, 필리핀 선생님은 나의 개떡 같은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화를 이어간다. 내가 돈 내고 영어 공부를 하는 건데, 어째 선생님의 언어 이해력만 느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난 6년째 영어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실력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쓸모도 불명확한 영어공부를 왜 나는 놓지 못하고 있을까.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텐데. 답을 찾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을 해보았다.
전화영어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왜 영어를 공부하는가?'이다. '업무에 영어가 필요하냐?', '여행을 다니면서 쓰려고 하는 거냐?' 물어보면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일을 하며 영어를 쓸 일?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여행 가서 쓸 확률?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몇 년에 고작 며칠 다녀올 해외여행을 위해 영어공부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대화할 일이 있냐? 그것도 아니다. 혹여나 길에서 만난 외국인이 길이라도 물어오면 대답이라도 해줄 요량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웬만한 건 핸드폰으로 뭐든 가능한 세상이 되니 뭘 물어오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일은 천지가 개벽해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걸까?
▲ 최대 고비인 마의 3개월을 넘기고 전화영어를 시작한 지 어느새 6년이 되었다. |
ⓒ Pixabay |
6년 전 영어를 시작할 즈음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생각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생각은 많아졌지만, 넘쳐나는 시간에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사무실에서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의문은 커지고, 견적을 딱 보니 내 노후는 나 혼자 챙겨야 하는 게 자명해 보이는데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혹자는 평생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건만,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공부라는 것과는 영원한 안녕을 약속이라도 한 듯 책에서 손을 놓고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물음표만이 가득한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이 불안했다. 결국 난 불안함을 주체하지 못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영어라도 공부하면 난 불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그라질까 싶었다. 하지만 영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나의 불안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불안함이 사라질 정도로 나의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 느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불안한 나의 상황에 마지막까지 끈을 잡고 있는 영어가, 어느 날 나에게 단비처럼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6년째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굼뜨게 좋아지는 나의 영어 실력을 보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언어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한 뼘, 내일은 오늘보다 또 한 뼘 좋아지고 있으니 괜찮다고 나를 달래고 있다.
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고, 딱히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닌데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화영어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미련하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는 바이니, 제발 그 입은 그냥 다물어 주시길.
느리지만 느직하게 조금씩 나아가는 걸, 난 성실함이라고 믿고 싶다. 그 성실함으로 쌓아올린 영어가 언젠가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는 꿈을 꾼다.
내가 가장 수시로, 가장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문장 'How should I say it?'(그걸 어떻게 말해야 되지?)은 오늘도 되풀이 되겠지만, 언젠가 '음' 없이, '어' 없이 대화가 가능한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날이 진짜 올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오늘도 받기 싫은 전화를 받는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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