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책상 한구석에 남은 '취뽀'... "이제 날아갈 일만 남았었는데" [이태원참사_희생자]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압사당할 거 같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편집자말>
[조혜지, 유성호 기자]
▲ 졸업식 가운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태원 참사 고 이상은씨. |
ⓒ 유성호 |
"실패를 딛고 성장하는 내 모습을 남기기로 했다."
지하철 차창 밖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풍경이 지나고 있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은(1997년생)씨의 휴대전화에서 가족들이 발견한 짧은 클립 하나. 상은씨가 생전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 좌절 이후 '재도전 스토리'라는 주제로 직접 만든 영상이었다.
상은씨는 이 영상을 공개하지 않고 혼자 담아두었다. "늦은 실패더라도 그 안에서 배움을 통한 성장이 있다면 그건 더 나은 내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영상 속 직접 적은 자막에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품은 한 청년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상은씨는 지난해 8월 말, 목표했던 대로 시험을 통과했다.
그의 방 벽에는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걸어 놓은 메모지가 빈틈 없이 매달려 있었다. '미국 교환학생', '오픽', '토익', '오피스 프로그램 자격증', '학점 채우기' 그리고 '미국회계사 시험'까지. 노력으로 이룬 만큼 결과들은 명확했다. 그러나 2달 뒤인 10월, 상은씨는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불명확한 죽음이었다.
사망시각부터 구조 조치 여부까지, 가족들이 정보공개 청구로 직접 받아낸 고인의 구급일지에는 사망 추정 시각은 10월 29일 오후 11시로 나와 있었다. 반면 상은을 이송한 구급 대원이 적은 '환자 접촉 시각'은 다음 날인 30일 오전 5시 28분으로 기록됐다. 6시간 30분 가량의 공백. 가족들은 참사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기에 대해 책임있는 기관으로부터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오른쪽)와 이모 강민하씨가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딸의 꿈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 유성호 |
▲ 취업을 준비하면서 찍은 사진은 이태원 참사 고 이상은씨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
ⓒ 유성호 |
미국 회계사 시험 통과 후, 상은씨는 이모 강민하씨처럼 서울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어 했다. 상은씨의 이모는, 지난 4일 상은씨의 엄마 강선이씨와 함께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차게 면접 리허설을 해 보이던 조카를 떠올렸다. 참사 2주 전인 10월 중순 께의 기억이다.
업종은 다르지만, 3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한 이모는 조카의 면접 모습이 궁금했다. 쌀국숫집에서 진행한 면접 리허설. 살갑게 "사랑해"를 보내던 조카는 면접 연습 때만큼은 야무진 모습을 보여줬다. '다 컸구나' 싶었던 순간. 아이가 없는 이모에게 상은씨는 "조카이자 딸 같은" 존재였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는 17년 전 이모의 결혼식에서 색동저고리를 입고 화동을 했다. |
ⓒ 유가족 제공 |
엄마 강선이씨는 상은씨의 '목표 달성' 과정을 옆에서 쭉 지켜봤다. 지금도 상은씨의 침대 맡에 꽂혀 있는 책 <시크릿>. 상은씨는 시험 준비 중 이 책을 읽다가 '유레카'를 외치듯 엄마에게 외쳤다. "나 드디어 인생의 비밀을 알았어, 끌어당겨 볼 거야" 곧바로 잠시 내려놨던 회계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엄마는 "너무 멋지게 성장하고 있구나, 이제 나보다 나은 어른이 되겠구나 싶어 기특하고 고마웠다. 이제 날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상은씨가 떠난 후, 책상 책꽂이 한 구석에는 다음 목표인 '취뽀(취업 뽀개기)'가 적힌 종이가 남아 있었다. 엄마는 '취뽀'를 상은씨의 방 벽에 걸린 달성 목표들 옆에 마저 걸어줬다.
▲ 이태원 참사 고 이상은씨 유가족, 진상규명 요구하는 이유 ⓒ 유성호 |
참사 후 6개월, 가족들의 일상은 "조금씩 나아지다가 어느 순간 다시 무너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상은씨의 흔적을 확인할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과 직면하다가, 다시 추스르길 반복했다. 여의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절에 모신 상은씨의 위패를 만나러 갔다가, 유가족협의회 일정을 따라 함께 서울시청 분향소에서,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상규명을 외치기도 했다. 이모 강민하씨도 지난해 11월, 언니 부부를 따라 유가족협의회에 갔다. 지난 2일에는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도 나섰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가 딸이 없는 빈방에서 유품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
ⓒ 유성호 |
▲ 이태원 참사 고 이상은씨의 빈방 벽면에는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걸어 놓은 메모지가 그대로 있다. |
ⓒ 유성호 |
상은씨의 엄마는 "겨울이 와서 상은이 옷을 정리하고, 세탁기에서 상은이 빨래가 나오거나 할 때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온다. 그러다 다시 사라지고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분향소를 가면) 유가족 분들을 만나 위로가 되면서, 아이들이 함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전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유가족들이 추천을 주고 받은 책, 스스로 힘들 때 꺼내본 시집이 여러 권 놓여있었다.
너를 잃은 슬픔
극복하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 없는 날들
명랑하게 살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아픔 밟고 일어나
장하게 걸으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허성우 시집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일부
강선이씨는 이 시를 한 문장씩 읽은 뒤, 울먹이며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어떤 분들이) 오셔서 '먼 나라에 시집보냈다고 생각해라, 멀리 공부하러 갔다고 생각해라' 하셨는데, 그때 이 시집에 쓰인 말이 너무 와닿았다. (그 땐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그런 마음이었다. (이 테이블에서 상은이와) 삼시 세끼 삼식이 파트너로 밥을 먹으며 공부할 때 항상 점심을 함께 먹었다. (참사 이후) 하루는 혼자 점심을 먹는데, 상은이의 사진을 보면서 '아 우리 딸 지금쯤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나랑 점심 못 먹었을 거야' 생각했다. 그때 그분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라고 했는지... 조금 와닿았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가 여행지에서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
ⓒ 유성호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이었다. 상은씨가 시험에 합격한 후 생긴 약간의 여유. 부부는 미뤄왔던 둘레길 걷기를 시작했다. 그날은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 동해로 향했다. "나 그럼 핼러윈 간다"고 했던 딸은 참사 당일인 10월 29일 오후 9시쯤에도 사진을 보냈다. '와 멋지다, 너무 늦지 않게 조심히 재밌게 놀고 들어가' 엄마는 답장을 했다.
다음날인 10월 30일 아침, 부부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뒤 뉴스를 틀었다. 참사 소식이 흘러나왔다. "설마설마 그럴 리 없겠지" 불안 속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산경찰서라며 전화를 받았다. 딸 상태에 대해선 어떤 정보도 들을 수 없었다. '길가에 있던 것을 다 수거해 온 것'이라는 답변 뿐이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절대 아무 일 없을 거야, 친구랑 같이 잤거나, 휴대폰을 잃어버렸겠지' 생각했다.
그 이후부터는 가족과 주변 모두가 상은씨를 찾았다. 이모와 이모부, 이모의 동료, 엄마의 친구, 이웃까지... 그 사이 불안 속에 상경한 상은씨 부모님은 한남동주민센터와 용산 순천향대병원을 번갈아 오갔다. 그리고 오전 11시, 동대문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은씨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온 가족이 무너져 내린 경황 없는 순간 속에서, 이모는 경찰로부터 부검 의사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바로 거부했다. '검사의 승인이 없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고,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없다'는 공지에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 직접 문의한 끝에 장례를 치렀다. 상은씨의 마지막 모습은 아빠와 엄마, 이모 세 사람이 봤다. 엄마 강선이씨는 "(상은이가)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상은이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된다. 그때 안아주지 못했다"고 오열했다.
상은씨의 유일한 마지막 흔적인 '구급 활동 일지' 속 시간들은 '신고 일시'부터 '환자 접촉' 등 구조대 동선을 기록한 내용 뿐이다. 가족들은 사망 추정시각으로부터 새벽 5시 28분께까지, 이 텅 빈 시간들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상은씨의 이모 강민하씨는 "(구급 기록을) 남기는 게 구급일지인데, 우리가 받은 일지는 뒤늦게 (구조에) 합류한 소방서의 구급일지였다. 초기에 대응한 구급일지는 없는 것"이라면서 "법적으로도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엄마 강선이씨는 이태원참사 유가족 다수가 규명을 호소하는 이 공백의 시간대에 함께 있던 의료진 중 누군가 당시 상황을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엄마는 궁금하다고 했다. "압사 위험을 느낀다는 신고가 수차례 있었는데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차도로 내려온 사람들을 왜 인도로 올려 막힌 공간을 만들어 압사하게 했는지, 매해 있던 축제에 코로나 방역 해제로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했는데 왜 경찰 병력을 투입하지 않았는지."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가 딸이 없는 빈방에서 생전에 친구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있다. |
ⓒ 유성호 |
엄마는 인터뷰 내내 '이해'라는 단어를 꺼냈다. '이제 그만하라'는 일부 시민들이 사회적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자신을 향해 대못을 박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 슬픔을 느끼다가도 다시 생각을 다잡았는다고 했다.
"어떻게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압사가 돼?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이해가 됐어요. 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으니 공감하지 못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특별수사본부가 직접적 이유라고 밝힌 '군중 유체화'(군중 밀집도가 높아져 거동이 어렵게 된 상태)는 죽음의 원인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그게 다인 것처럼 조사 결과가) 끝났고. 그러니까 (일부 사람들은) 무슨 국가의 책임?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정권이나 일부 언론에서 씌우는 프레임, 이게 참 무서운 거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은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 나이 드신 분이 지나가면서 '놀러 간 애들을 왜 나라에서 책임져!' 하시는데... 확 화가 나다가도 그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아 나는 길거리 가면서 남들 피켓에 얼마나 관심을 뒀었나,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래, 읽어보고 가시는 게 어디냐, 그런 마음도 들고요.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이야기한다는 걸 보신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했어요."
동시에 '감사'라는 말도 많이 했다. 비난 대신 커피를 전하며 '힘내세요!' 응원하는 사람들, 특별법 국민동의청원 달성으로 느낀 다수 시민들의 연대, 일본 아카시시 보도교 압사 참사 유가족들의 방한과 위로... 이모는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위안이 된다. 정보공유도 하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의지를 계속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진상규명 현장에 나서고,인터뷰에 응하며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을 남기면 절대 안 될 것 같아서."
강씨는 "(이대로도) 상관없는 사회가 된다는 건, (이태원참사 이후) 남은 사람들에게큰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엄마 강선이씨는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야,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의 존엄도 되찾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상은씨의 엄마와 이모가 상은씨에게 남긴 메시지를 정리한 내용이다.
[엄마가 상은에게]
"사랑하는 우리딸, 어느새 180여 일이 다 되어가네. 너무너무 그립고 보고싶다. 부활절에 윤경 이모랑 명동성당에 갔었는데 수녀님이 지난해 10월에 우리 딸이 시작했던 교리 수업반이 그날 세례식을 한다고 상은이한테도 선물을 주셨어. 어찌나 고맙고 서글프던지... 상은이가 직접 받았어야 하는데. 세례식 때 울 딸이 좋아하는 근사한 꽃다발 들고 축하하러 왔을 텐데.
엄마 이제 결혼식장에 가지 않으려고.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를 볼 때마다 남자친구도 없으면서 명동성당에서 결혼계획을 세웠던 울 딸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 하루하루가 우리 딸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기에 아프고 힘들지만 살아내고 있어. 얼른 만나자 상은아."
[이모가 상은에게]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오른쪽)와 이모 강민하씨가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딸의 꿈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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