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통촉하시옵소서!" 외치는 무슬림 남자가 해준 음식 [소설가 신이현의 양조장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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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현(작가)
▲ 올 때처럼 커다란 배낭을 메고 떠나는 미리암과 모하메드. |
ⓒ 신이현 |
그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방에서 나온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부산으로 가서 이틀을 지낸 뒤 일본으로 간다고 한다. 배낭들을 차 안에 밀어 넣고 충주 터미널로 향하는 동안 그의 딸은 창에 코를 박고 밖을 내다본다. 한국 중부 지방의 나지막한 산과 그 아래에 흐르는 강물, 그리고 작은 시골집들. "이곳은 좀 평범한 곳이야. 크게 아름다운 곳도, 특별한 것도 없는 조용한 소도시. 그냥 그런 곳." 나의 말에 그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났잖아. 난 여행에서 풍경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아."
모하메드와 미리암
모하메드와 미리암, 아버지와 딸이다. 모하메드는 10살 때 부모님을 따라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와서 모로코 여성과 결혼해서 2녀 1남을 두었고 미리암은 23살 막내딸이다. 아시아가 궁금해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아버지가 이런 부탁을 했다. "나 한국에 가고 싶은데, 같이 여행하면 안 될까?"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 딸과 합류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 광팬이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를 볼 땐 자신이 어린 시절 누렸던 다정다감한 가족의 이미지가 그대로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특히 사극을 좋아해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이런 말들을 아주 잘 했다.
▲ 나의 남편 도미니크(왼쪽)와 포도나무 밭에 선 모하메드와 딸 미리암(가운데). |
ⓒ 신이현 |
"우리 말 놓아도 될까?"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며 그가 이렇게 말한다. "아, 물론이지!" 그들은 일주일 동안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음날 삽목 포도나무 심는 일을 하고 점심은 간소하게 스파게티를 먹었다.
▲ 요리를 하는 모하메드 |
ⓒ 신이현 |
▲ 백조기를 넣어 따진을 만들고 있다. |
ⓒ 신이현 |
"우리 부엌에서 모로코 따진을 만들다니 완전 흥미롭다." 나의 말에 그는 싱긋이 웃으며 도마에 양파를 썰기 시작했다. 칼질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가 그냥 요리하기를 즐기는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다. 모로코 진짜배기 요리사가 우리 부엌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질이 썸벙썸벙 자유로웠다. 털이 수북하게 난 굵직한 팔뚝은 힘이 좋은 남자의 것인데 손은 동글동글해서 여성적인 느낌이 들었다.
▲ 향신료 냄새를 맡는 모하메드 |
ⓒ 신이현 |
▲ 냉동실에 있는 백조기로 만든 따진. |
ⓒ 신이현 |
한국 시골에서 쿠스쿠스 만들기
그런데 큰일이 났다. 쿠스쿠스 요리에서 제일 중요한 좁쌀 면이 없다! 충주에서는 좁쌀 면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의 얼굴이 노랗게 된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생선 쿠스쿠스>가 생각났다.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남자가 실직을 한 뒤 쿠스쿠스 식당을 내려고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초대해 전처와 전처의 자식들, 현재의 애인과 애인의 전 남편 딸, 과거와 현재 가족들이 모두 모여 쿠스쿠스를 만들고 그것을 내려는 순간 쿠스쿠스 면이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 짓던 주인공 남자의 표정이 저랬던 것 같다. 말하자면 갈비찜에 밥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까.
▲ 모하메드가 해준 수프를 먹는 미리암(왼쪽)과 도미니크. |
ⓒ 신이현 |
다음 날에도 쿠스쿠스 면을 찾지 못해 쇠고기 따진과 닭고기 따진, 두 종류의 음식을 만들었다. 한 가지를 하겠다고 시작하지만 그는 늘 두 가지 이상 음식을 한다. 토마토가 남으면 토마토 계란조림을 하고 레몬이 남으면 레몬 콩피를 쓱쓱 만들어버린다. 그의 손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들은 부드럽게 뭉개지고 이상야릇한 냄새로 피어난다. 몸에 심겨진 북아프리카 태양이 손으로 뻗어 나오는 것만 같다.
그들이 떠나기 전 날 면을 구했다. 쿠스쿠스 면은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 초간단 재료인데 모로코 가정에서는 살짝 익힌 면을 야채와 고기가 익고 있는 냄비 위에다 찐다. 그래야 면에 고기와 야채의 향이 베어들어 맛있다는 것이다. 접시에 쿠스쿠스 요리를 담을 때 모하메드는 아주 섬세하다. 포슬포슬한 면을 접시에 놓고 그 위에 고기와 뭉근하게 익은 야채들, 마지막으로 끓고 있는 고기 야채 국물을 듬뿍 끼얹어 내온다.
▲ 모하메드가 만든 쿠스쿠스. |
ⓒ 신이현 |
터미널에 그들을 바래주고 오니 식탁 위에 그가 했던 일곱 개의 요리 레시피가 보인다. 모로코 음식점을 내겠다는 각오로 적어두었건만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직도 은은하게 남아있는 쿠스쿠스 냄새가 생 민트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쿠스쿠스를 먹고 나면 꼭 달콤한 생 민트 차를 마셔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다. 그는 떠났고 나는 생 민트차를 마시고 싶다. 그래서 그를 민트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민트 아저씨, 다음에 만날 때 모로코 민트 차부터 끓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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