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석 쌓기는 끝났다…여름엔 PO 정조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광동 프릭스 김대호 감독을 만났다. 광동은 올해 첫 번째 레이스를 6승12패, 7위로 마쳤다. 김 감독은 “초석을 쌓는 시즌은 끝났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팀이 고전하자 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힘드시면 서머 시즌에 오시라”라고 말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제 도망할 곳이 없다”면서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7위로 마친 스프링 시즌, 아쉬웠던 점과 만족스러웠던 점을 꼽는다면.
“스프링은 팀이 초석을 쌓는 시즌이었다.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다. 라인전이 약했고, 운영 집중력과 교전 능력도 부족했다. 문자 그대로 초중후반 모두 보완할 점이 명확했다.
서포터를 제외한 4개 포지션 선수들의 기량 발전이 눈에 보여서 긍정적이다. 서포터 포지션은 두 명이 주전 경쟁을 해서 상대적으로 스크림 연습량이 적다. 팀원들보다 출발이 늦은 셈이다.”
-신인 위주로 새롭게 팀을 짰다. 당시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가장 부족한 건 팀적인 움직임이었다. 대각선의 법칙같이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정글러·서포터 위치에 따른 라이너의 스탠스 설정, 라이너의 라인 푸시 여부에 따른 정글러·서포터의 공격적인 시야 세팅 능력 등이 팀적인 움직임에 해당한다. 전반적으로 협응 능력이 떨어지니까 체급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지도자로서 시즌을 치르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봄에는 선수들의 수행능력이 떨어져서 특정 조합이나 챔피언을 고르는 데 제한이 있었다. 밴픽이라는 건 템포와 밸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이다. 광동은 선수들끼리 합을 맞춘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체급이 낮아서 선택지가 다른 팀들보다 적었다.
그래도 시즌 후반부쯤에는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불독’ 이태영은 후픽으로 다양한 챔피언을 선보이기도 했다. 서머 시즌엔 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템포와 밸류는 서로의 대척점이다. 하위권 팀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나.
“못하는 팀, 신인팀일수록 템포라도 챙겨보려고 한다. 선공권과 주도권이라도 있어야 뭐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용과 전령 싸움에서 힘이 세려면 그 전에 빌드업을 잘해놔야 한다. 라인전과 소규모 교전에 강한 레넥톤, 니달리, 탈리야, 애니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요즘엔 강팀들도 템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약팀들은 카운터 픽을 해서라도 템포를 빼앗기지 않으려 든다. 그렇게 해서라도 주도권을 지켜내고, 적극적으로 교전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팀의 로스터 구성에 많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의 솔로 랭크나 LCK 챌린저스 경기를 보며 옥석을 가렸다. 이태영은 스크림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열심히 배우고 연습한다면 더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선수들이라고 판단했다.”
-선수 선발할 때 가중치를 두는 능력이 있나.
“다른 지도자들처럼 소위 ‘피지컬’이라고 하는 메카닉 능력, 소프트웨어가 아닌 선수의 하드웨어를 많이 본다. 순간적인 반응속도, 라인전이나 교전 상황에서의 수행능력을 중요시한다.
나는 선수의 ‘전환능력’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분명 이니시에이팅을 걸기에 좋은 구도인데, 1초가 지나면 갑자기 안 좋은 상황으로 변해버릴 때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래도 이니시를 건다. 딜 교환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상황이 급변해도 포기하질 못한다.
이 이니시나 딜 교환을 포기하는 능력이 전환능력이다. 프로게이머에게 필수적인 능력이지만 갖춘 선수가 많지 않다. 이 능력이 뛰어난 선수의 대표적인 예는 젠지 ‘쵸비’ 정지훈이다.”
-이태영을 주전 미드라이너로 발탁한 건 예상 밖이었다.
“광동 선수 중에 전환능력이 가장 뛰어난 게 이태영이다. 순간적인 판단력, 플레이의 방향을 확 트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잘될 수밖에 없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태영은 못하는 선수다. 2군에선 더 못했다. 내가 지금껏 만나본 선수 중에 가장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케이스다.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데 이렇게 못할 수가 있지?’싶을 때가 있다. 덧셈과 뺄셈을 이해 못 한 채로 곱셈과 나눗셈을 한다. 개념을 깨닫는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주전으로 발탁했다.”
-팀이 ‘두두’ 이동주를 영입할 때도 한 차례 반대했다고.
“우선 솔로 랭크 점수가 현저하게 낮았다. 600~700점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동주의 경기를 종종 보면서 못하는 선수라고 판단했다. 계산된 플레이를 하지 않았는데 얻어걸린 느낌이 들었다. 10번 박아서 2~3번 걸린 플레이로 스포트라이트가 향한다고 여겼다. 7~8번의 잘못된 플레이로는 조명이 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면접을 보고, 스크림을 지켜보니까 플레이 방향성이 확실하게 잡혀있더라. 도중에 엎어지더라도 본인이 무엇을 하려다 엎어졌는지, 만약 성공했다면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리턴과 리스크의 개념이 잘 잡혀있었다. 스마트하게 계산된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인데, 계산식이 부정확할 때가 있을 뿐이었다.”
-김 감독도 탑라이너 출신이다. 좋은 탑라이너는 어떤 선수인가.
“좋은 탑라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건강한 멘탈’이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워야 하고, 과감하면서도 신중해야 한다. 밸런스가 좋아야 한다. 침착하게 ‘버스’에 탈 생각만 하면 좋은 탑라이너가 될 수 없다. 강한 승부욕으로 상대를 꺾어보려고만 해도 안 된다. 좋은 공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탑라이너는 아이러니하게도 요구하는 능력치에 비해 게임에 끼치는 영향력이 적다. 그렇지만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이 게임에서 밴픽의 비중은 5% 내외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5%다. 밴픽에서 승부가 갈린다. 왜? 나머지 95%는 전부 채웠으니까. 이 마지막 5%에서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탑라인도 마찬가지다. 이 5%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나머지 8명끼리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배턴이 탑라이너들한테 넘어온다. 가장 영향력 없는 라인 때문에 경기를 지거나 이기거나 하는 것이다.
좋은 탑라이너가 되려면 배턴이 넘어올 때 잘하는 게 아니라, 넘어오기 전부터 잘하고 있어야 한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면서 몸을 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좋은 멘탈과 포지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요구된다.”
-광동이 서머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앞서 얘기했던 팀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콜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서 알맞은 판단과 움직임을 수행할 수 있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플레이오프 막차인 정규 리그 6위다. DRX와 리브 샌드박스가 경쟁 상대가 될 거로 예상한다. 광동까지 이들 세 팀은 경기 날 컨디션에 따라 우열이 바뀔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팀으로 평가하고 있다.”
-진행 중인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우승 후보로 꼽는 팀이 있나.
“젠지의 기량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정확한 가늠자가 있어야 하는데 젠지는 G2 e스포츠와 붙었다. G2가 아주 강한 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젠지의 전력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오늘 T1과 매드 라이온스의 경기도 봐야 어느 팀이 더 유력한 우승 후보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스프링 시즌 막바지와 메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패치에 따른 메타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스프링 시즌 마지막 데이터로만 두 팀을 평가한다면 T1이 젠지보다 조금이나마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T1이 공격성 측면에서 젠지보다 강하다.
상대에게 내주면 팀이 손해를 보는 자리가 있다. T1의 게임을 보면 그런 자리라는 걸 다섯 선수 모두 인지하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원이 같은 박자에 뛰어들어서 위험한 역할을 수행하려 든다. 게임 이해도가 높다는 의미다.
젠지는 밴픽을 잘한다. 단순히 좋은 챔피언을 여러 개 뽑기만 해서는 밴픽을 잘한다는 평가를 들을 수가 없다. 선수들이 조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조합의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가를 알고, 실제 플레이로 구현해낼 수 있어야 진정 밴픽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젠지는 그런 밴픽 능력이 뛰어나서 스프링 시즌 결승전에서도 T1을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T1이 지난 한 달간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개선해왔다면 젠지보다 강할 거로 본다. 단순히 내 주관에 따른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면.
“늘 그러하듯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찾고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 봄에 ‘힘드시면 서머 시즌에 오시라’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이제 서머 시즌이 됐으니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을 테니 우리 경기를 재밌게 봐달라.”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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