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 말 한마디의 무거운 대가

이준목 2023. 5. 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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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향한 작심발언 이후 역풍...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된 말

[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해설가 오재원의 <덴 매거진> 인터뷰 영상 갈무리
ⓒ 덴 매거진
 
경솔한 말 한마디의 대가는 무거웠다. 전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이 대선배인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향한 작심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나 오히려 역풍을 맞은 끝에 결국 하루 만에 고개를 숙였다.

오재원은 지난 5월 12일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렸다. 오재원은 "안녕하세요 오재원입니다. 하루 동안 회초리를 맞았고 기분이 나쁘셨을 분들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이라는 단어에 실망하고 기분 나쁘셨을 분께 다시 한번 송구의 말을 전해드린다"며 사과했다.

오재원은 "'국민'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도는 '나 역시 박찬호 선수를 우상으로 보고 자랐다. 아버님, 할아버님도 새벽잠을 설치면서 응원했다. 지금 KBO 리그에 있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그 선수들의 부모님들까지 박찬호를 응원하셨을 게 분명하다. 그때 당시 영웅이었으니까. 그런 대스타, 대선배가 하는 말은 보통 나(오재원) 같은 사람의 말보다 몇백, 몇천 배 큰 울림이 있을 것이고 동조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 비난 대신 따로 불러 조언을 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견해가 빠진 내용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오재원은 "카메라가 꺼진 상황이었던 터라 담기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다. 단순 인터뷰라고 전해 들었고, 유튜브에 나온다는 것은 당시 소속사에서도 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면서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번 일에 대한 비난과 질책을 피하지 않겠다. 그리고 말을 하기 전,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뼛속 깊이 새기겠다"라고 전했다.

앞서 오재원은 전날인 10일 '덴 매거진'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박찬호를 실명 대신 '코리안 특급'으로 지칭하며 발언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재원은 "저는 코리안 특급을 너무 싫어한다. 이제 일반인이니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운을 뗀 뒤 "우리나라를 정말 빛냈고 '코리안 특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창시자다. 하지만 그전에 전 국민이 새벽에 일어나서 그분을 응원하고 그랬던 감사한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또한 오재원은 "박찬호가 한 번씩 해설하면서 바보로 만든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해설할 때는 당연히 말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아닌 걸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오재원의 주장에 대하여 이틀째 공식적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박찬호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빅리그 통산 124승 98패 평균자책점 4.36의 성적을 남기마 아시아 최다승 투수 기록을 세웠다. 국가대표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하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2006년 초대 WBC 대회 4강을 이끌었다. 현역 말년에는 일본프로야구(NPB)를 거쳐 KBO리그로 돌아와 고향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오재원은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9순위로 지명되어 프로에 진출했고, 2022년을 끝으로 은퇴할때까지 두산에서만 16시즌을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프로 1군 통산 총 1570경기에 출전해 타율 .267, 64홈런, 521타점, 678득점, 289도루를 기록하며 2010년대 두산 왕조가 달성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의 우승을 모두 함께하며 주장으로 활약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WSBC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에 기여했다.

박찬호와 오재원은 그동안 별다른 접점이 없어보였다.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활동한 무대가 달라서 두 사람이 선수로서 마주친 것은 박찬호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었던 한화에서 뛰었던 2012년, 한 시즌 뿐이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흘러 두 선수 모두 은퇴한 이후 오재원이 박찬호를 향하여 뜬금없는 저격성 발언을 한 배경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다.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국내 스포츠계의 정서상, 후배가 선배를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비난하는 것도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두 사람의 과거 악연이 재조명됐다. 두 사람은 나란히 현역이던 시절인 2012년, 박찬호가 오재원과의 승부에서 몸에 맞는 공을 두고 시비가 벌어진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큰 이슈가 되지않았지만 2년 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발탁된 오재원이 타석에 들어서자, 방송중계 해설위원을 맡고 있던 박찬호가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는 선수"라고 돌연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박찬호는 "오재원이 땅볼을 쳤는데 그런데 공이 발에 맞았다고 해서 파울이 됐다. 안 맞은 공이었다"고 주장했다. 오재원이 공에 맞지 않았음에도,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박찬호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오재원을 비난하는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오재원은 "소식을 듣고 잠을 못 잤다. 박찬호 선배 앞에서 액션을 할 배짱도 없다"고 반박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경기 영상을 확인한 일부 팬들은 오재원이 실제로 공에 맞았다는 '팩트체크'에 나섰고, 박찬호의 착각으로 밝혀졌다. 이후 박찬호는 "후배를 힘들게 한 것 같다"면서 사과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직접 앙금을 풀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재원의 저격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았고, 엄밀히 말하면 원인 제공은 박찬호가 먼저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 정도로 끝난 박찬호에 비하여, 오재원의 발언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오재원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수많은 팬들과 언론들은 대체로 오재원을 질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물론 이는 두 사람의 야구인으로서의 위상 차이와 대중적 이미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진출 1세대에 암울했던 IMF 시대에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기쁨을 안겨준 슈퍼스타이자 당대의 아이콘이었다. 은퇴 후에도 모범적인 선수생활과 '투머치토커'로 불릴 정도의 팬서비스가 재조명되며 여전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반면 오재원은 지나친 승부욕과 솔직한 성격 때문에 여러번 구설수에 휘말리며 팬들 사이에서 '그라운드 위의 악동', '우리혐(우리형+극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선수였다.

물론 박찬호라도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고, 오재원도 자신의 소신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오재원의 주장이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짚은 본인의 오판이었다.

오재원의 발언에서 '박찬호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제시한 근거는 '해설' 부분과 '팬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지적으로 나뉠 수 있다. 오재원은 "박찬호가 한 번씩 나와서 해설하면서 바보 만든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해설의 수준이나 편파성에 대한 논란은 다른 야구인 출신 해설위원도 종종 지적 받은 대목이다. 특히 오재원 본인이 박찬호에게 직접 피해를 당한 당사자이기에 충분히 불만을 가졌을 법도 하다.

사실 박찬호의 해설 때문에 오재원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사례로는 강백호(KT 위즈)가 있다. 도쿄올림픽 당시 야구대표팀이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경기 중에 덕아웃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껌을 씹고 있던 강백호의 모습을 박찬호가 지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강백호는 한동안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비록 박찬호가 마녀사냥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빌미를 준 책임은 분명히 있다. 방송에서의 발언 하나가 한 선수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목이라는 점은, 오재원의 문제제기를 통하여 박찬호도 어느 정도는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적어도 오재원처럼 개인 감정 때문에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은 없었다. 당시 강백호 사건만 해도, 박찬호만이 아니라 국내의 다른 전문가들이나 해외 팬들에게조차도 '부적절한 태도'였다는 데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박찬호는 몇몇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오히려 다른 야구인 출신들에 비하면 비판을 앞세우기보다는 같은 선수의 입장에서 대변하고 옹호하는 성향의 해설자에 더 가까웠다. 정작 오재원은 박찬호의 해설로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고 바보로 만들었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는 제시하지 못했다.

더구나 '박찬호가 팬들의 응원에 대한 감사를 모른다'는 것은 해설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뿐더러 뚜렷한 근거도 없는 오재원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했다. 박찬호는 전성기로 메이저리거 시절에도 누구보다 오랫동안 국가대표를 위하여 헌신했고 팬서비스 정신도 투철한 선수로 호평을 받았다. 박찬호가 위대한 선수 커리어와 함께 지금까지도 팬들의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심지어 오재원은 "이제 나는 일반인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하지만 오재원은 야구선수를 은퇴한 것일뿐, 여전히 야구인이고 방송중계를 하는 야구 해설가라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나,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개념이 없는 오재원의 모습은 더 많은 비판을 초래한 이유다.

결국 오재원은 비판이 아닌 '비난'을 했고, 구체적인 논리나 명분 대신 개인의 '감정'을 앞세웠으며,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추측'으로 한 사람을 매도했다. 이는 솔직함이 아닌 경솔함이었고, 사안의 본질에서도 벗어난 인신공격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오히려 본인이 역풍을 맞은 자승자박이 되고 말았다.

오재원은 이번 사건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고 해설위원 계약까지 취소될 위기에 몰렸다. 선수 시절에 쌓은 부정적인 비호감 이미지를 지우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의 입으로 걷어차고 말았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말은 결국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교훈을 남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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