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박스 조립, 쿠팡 채용공고에 숨은 '종이의 노동'
아무도 부러워 하지 않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의 종이접기'. <기자말>
[최새롬 기자]
영화 <기생충>은 영화의 장면, 대사, 소품 하나하나까지 화제가 되었다. 관심은 '피자박스'에까지 돌아갔는데, 피자박스 조립은 영화 속 기택의 가족이 생계를 잇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들은 일을 빠르게 해내기 위해 한 유튜브 영상을 참조한다.
▲ 브리아나 그레이(Breanna Gray)의 피자박스 접기 영상/사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이 참고한 영상 |
ⓒ 브리아나 그레이(Breanna Gray) |
우리가 피자를 먹을 때, 박스가 접히는 순간과 장소와 사람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보다 밀도가 높은 노동의 세계, 다양한 규격의 종이는 지금도 우리가 자세히 모르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접혀 박스 모양으로 탄생하고 있다.
그래서 피자박스 달인의 영상은 눈과 마음을 뺏기 충분했지만 기택의 가족에게는 불량품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도면이 있는 접기, 전개도와 창작, 전갈을 접는 신묘한 종이접기의 세계가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도면 없이 일상을 접고 말아내는 생활형 종이접기 노동의 세계가 있다.
"종이는 다 계획이 있구나."
포장과 상차림을 한 번에 해결하는 충무김밥
최근 통영에 놀러갔다. 통영에 가면 할 일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충무김밥을 포장해 다른 장소에서 먹는 일이다. 오늘날 충무 김밥은 각지에서 먹을 수 있지만 바다를 끼고 걸으며, 무심한 듯 단단한 포장을 펼쳐 먹는 이곳의 맛을 따라올 수 없다.
▲ 충무김밥 흰 종이로 차려진 오뎅과 무김치와 김밥 한상. |
ⓒ 최새롬 |
햄버거 포장에 얇은 종이를 쓰는 이유
▲ 야무진 햄버거 포장의 옆면 |
ⓒ 최새롬 |
대개의 햄버거는 포장지가 매우 얇아서 냄새를 주변까지 풍긴다. 내용물이 드러나지 않지만 다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스루 포장. 얇은 종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은 햄버거의 욕망을 전달한다.
▲ '박스만 접어도' 광고문구 |
ⓒ 쿠팡 광고 |
덜 구겨지는 순간에서 완전히 구겨지는 순간까지, 종이가 담아내는 것들과 종이의 길지 않은 싸이클과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기생충>의 피자박스 영상은 노동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포착해낸 것일까 생각하다가, 어떤 예술은 숙련된 노동이라는 생각에 머물다가, 이 둘을 구분해 내는 지점이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에 도착한다. 종이접기, 사소한 것을 반복하는 일에도 사람들은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 어떤 것이 노동이고 예술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에 말이다.
종내 단순하고 가치가 없는 가욋일로 여겨진 (그리고 돈이 거의 되지 않았을) 종이가방 포장의 근근한 역사를 떠올리다가, 리어카에 자신의 키만한 높이로 종이박스를 쌓아 올리는 느리고 집요한 길 위의 노동을 생각한다.
생활에 만연한 종이의 노동.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이 그렇듯이,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거나 생각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도 일상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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