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공동참배 다행... 그런데 기시다가 딴 생각이라면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5. 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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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피해자 흉내내는 일본, 이미지 세탁에 활용될 가능성 경계해야

[김종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5.7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권의 최대 과오는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를 반역사적·반민족적으로 처리한 일이다. 독도 영유권 쪽에서 새로운 기록을 수립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강제징용 처리가 최대 과오다.

그런데 윤 정권은 이를 도리어 치적으로 포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달 19일 히로시마에서 개막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하게 된다. 대통령실은 이를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성의 표시 또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성과 비슷하게 해석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8일 브리핑에서 "히로시마에서 희생된 분들 가운데 실제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분이 많이 있다"며 "일본 정부가 알고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한·일 정상이 공동으로 한인 피해자를 참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라고 평했다. 그런 뒤 "한·일 정상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위로하고 함께 미래를 준비하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제징용과 억지로 꿰맞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홈페이지는 일본 내무성 자료를 근거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74만 명 중에서 한국인이 10만 명'이라고 말한다. 정용하 부산대 교수의 논문 '일본의 한국인 피폭자 차별과 책임'(2019년 8월 <한국민족문화>)에 인용된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의 1972년 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피폭자 약 69만 명 중에 한국인 피폭자는 7만 명이다. 어느 경우든 한국인 피해 규모는 상당하다.

히로시마·나가사키에는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특히 많았다. 이곳에 미쓰비시중공업 같은 전범 기업들의 군수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실의 설명대로 원폭 피해자 상당수는 강제징용 피해자였다.

하지만, 일본인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건립한 목적은 강제징용 피해와 무관했다. 히로시마시 홈페이지(www.city.hiroshima.lg.jp)에 실린 '평화기념공원에 관하여(平和記念公園について)'라는 글에서도 확인되듯이, 이 공원은 1949년 8월 6일 공포된 '히로시마평화기념도시 건설법'을 근거로 건립됐다. 일본이 이 법을 제정한 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함은 물론이고 항구적 평화의 기원(제1조)과 히로시마 도시의 부흥(제2조) 등을 위해서였다.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함께 평화기념공원 한국인 위령비를 참배하는 것은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항구적 평화에 대한 기원 등의 의미를 띠게 된다. 기시다 총리가 위령비 앞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언급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 참배가 곧바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추모의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일본이 평화기념공원을 조성한 것과 한국인 위령비 설치를 허용한 것은 강제징용 자체와는 무관하다.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간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강제징용 배상을 이처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 역시 그런 마음으로 간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 게 있었다면 굴욕외교로 인한 지금의 상황도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효과를 의도한 것이든, 한국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참배하는 것 자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 총리와 함께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한국인 피해자와 2세들이 겪은 차별과 설움을 생각하면 뒤늦은 감을 지울 수 없다.

동시에, 윤 정권이 기시다 내각에 또다시 휘말리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윤 정권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불식하려는 의도로 원폭 피해자 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정부는 그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리며 이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범국가 이미지 세탁에 활용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5.7
ⓒ 연합뉴스
 
원폭 투하로 인한 일본인들의 희생에 대해 한국인들 역시 당연히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일본 정부나 극우세력이 이 문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접근할 때는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정부는 원폭 문제를 전범국가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도 활용했다.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이 문제가 이용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는 박정희 정권의 굴욕외교에 힘입어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을 체결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뒤이어 그는 석 달 뒤인 9월 21일 제9차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를 도쿄에서 개최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 일은 IAEA 총회가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벗어나 제3국에서 개최된 최초 사례였다. 사토 총리는 이것이 갖는 의미를 일본의 피해자 이미지와 적극적으로 연결했다. 그달 28일 자 <조선일보> 기사 '원폭의 피해국 일본서 열리는 원자력기구 제9차 총회'는 "좌등 일본 수상은 광도(広島)에 인류 최초의 원폭이 떨어진 지 20년 만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이 모임을 갖게 된 데 대한 의의를 강조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원폭 피해를 활용해 이미지 세탁을 기도한다는 점은 한국인들의 눈에 자주 비쳐졌다. 1998년 2월 5일 자 <조선일보> '일본의 평화 만들기'는 "일본은 빅이벤트 때마다 평화를 앞세웠다"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과 관련해 "당시 일본은 원폭 피해가 남아 있는 공원 이름을 '평화'로 붙이는 등 대대적인 평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 뒤 "원폭 피해국 일본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라고 말한다. 원폭 피해를 활용한 일본의 평화 만들기가 '세계평화 만들기'가 아니라 '평화 이미지 만들기'였다는 점이 한국인들의 눈에 자주 포착됐던 것이다.

일본은 자국의 전쟁범죄로 세계 인류가 고통을 당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자국의 이미지를 원폭 피해국, 전쟁 피해국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일본 총리의 원폭 피해자 참배는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도 당연히 담은 것이지만, 동시에 전범국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기획과도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함께 참배할 때는 그런 효과가 더욱 배가될 수 있다. 중국과 더불어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국인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함께 원폭 피해자를 참배하면 일본의 가해국 이미지가 더 옅어지게 될 수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공동 참배를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성의 표시 혹은 윤 정권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듯이 보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이를 전범 이미지를 더욱 희석하고 평화 이미지를 한층 부각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눈을 감게 되리라고 전망할 수 있다.

지금 기시다 총리에게는 평화 국가 이미지가 매우 절실하다. 작년 12월 16일 안보 문서를 개정해 적극적인 대외군사전략을 표방한 그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군사적 운신 폭을 확장하려 한다. 아베 신조 피격 이후 크게 추락한 지지율을 한국 대통령의 '협조' 덕분에 대폭 끌어올린 그는 이 여세를 몰아 개헌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일 자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도 개헌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전쟁 도발을 억제하는 현행 헌법을 바꾸고 일본을 공격적인 나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국제적 견제를 약화시킬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전범국가 이미지를 하루빨리 털어내야 한다. 윤 대통령과의 공동 참배는 이런 전략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를 참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큰 그림'에 휘말려 들지 말아야 할 이유다.

정작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은 외면

원폭 피해자 문제는 그동안 한·일 양국 대중의 투쟁에 힘입어 상당히 많이 개선돼 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시혜적 조치를 베풀 뿐, 국가배상책임에 입각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또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시효가 경과했다거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됐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일본은 피폭자 2세들의 피해도 외면하고 있다. 작년 12월 12일 나가사키지방재판소는 피폭으로 인한 유전적 영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폭자 자녀 28명의 의료비 청구를 기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은 피폭자 2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으로 책임을 기피하고 있다.

한국인 피폭자와 2세들은 일본인들보다 훨씬 더한 불이익과 차별을 겪었다. 위의 정용하 논문은 "일본의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정책은 일본인 피폭자 지원과는 달리 외면, 거부, 차별의 역사였다"고 애석해 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하게 될 윤석열 대통령이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런 과제들이다. 굴욕외교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위령비 참배를 활용했다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큰 그림'에 휘말리는 실책을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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