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웃던 할아버지인데...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유

이대원 2023. 5.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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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글로벌 리포트 - 다가올 미래 '老월드'] 호주 남성 노인들의 외로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계 각국의 노년층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노년의 삶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각국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노인의 경험을 사회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오마이뉴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전 세계 노년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이대원 기자]

 외로움은 노년층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얼마 전 호주 공영방송인 에이비시(ABC)는 할아버지를 잃은 한 손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할아버지를 "온화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는 그녀는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를 즐기고 늘 웃던 할아버지는 84세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그가 수년에 걸쳐 삶을 정리할 준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누구도 할아버지의 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그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더 이상 특이한 것이 아니다.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ABS)에 따르면 85세 이상 남성의 자살률은 전 연령대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이 연령대 인구는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36명으로 전체 평균인 10만 명당 12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80~84세 남성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그룹이기도 했다.

모내시 대학에서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카일리 킹 터너 정신건강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나이 든 남성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그들이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그들에게는 어떻게 느끼는지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살의 위험을 깨닫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 건강 문제 해결을 돕는 민간 단체인 비욘드 블루(Beyond Blue)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호주 남성의 10%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만성 질환, 은퇴 등이었다. 건강, 재정적 스트레스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 외로움

특히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호주의 노인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 건강 문제로 꼽혔다. 많은 노년층 남성들이 지역사회와 단절된 느낌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고,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코로나19는 노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호주 고령화위원회가 실시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의 정신 건강과 웰빙, 75세 이상 호주인의 생생한 경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나이 든 여성이 나이 든 남성보다 팬데믹 기간 정신 건강이 악화하였거나 처음으로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했을 확률이 높았다. 나이 든 남성들은 봉쇄 기간에 일상이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설문 결과는 나이 든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호주 사회복지부에 따르면 호주 노인 3명 중 1명은 혼자 살고 있고, 5명 중 1명은 거의 매일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고립감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호주 통계청의 설문조사에서는 2020년 초 코로나19로 첫 번째 봉쇄 조처가 내려졌을 때 노인들에게 외로움이 가장 큰 개인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혔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드니 대학 노인학과 커를 교수는 사회적 고립(관찰이 가능할 정도로 신체적으로 혼자 있고 사회적 연결이 부족한 상태)과 혼자라는 주관적인 느낌인 외로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7일 낮 호주 시드니 시내 모스만의 한 고급 유료 양로원에서 크리스마스 맞이 잔치가 열렸다. 2009. 12. 17
ⓒ 연합뉴스
 
그는 "가족과 살거나 노인 요양 시설에 사는 많은 사람은 사회적 연결이 가능한데도 매우 외롭다"고 말한다. 배우자나 파트너가 사망하면서 속내를 털어놓은 사람이 없어졌고, 가족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의미 있고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커를 교수는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혼자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받는다고 분석했다. 노인학자인 말콤 존슨은 삶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상실감, 무력감, 후회와 같은 독특한 상황이 세상과의 단절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노인들은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고, 감정적 고통을 바로잡을 가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힘든 상태에 빠진다.

또 그들은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공유하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제한되면서 노인의 장기적인 관계는 점차 상실되고 마침내는 점점 더 자신 속으로 빠져들고 외부 세계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 세계적 공중 보건의 최우선 과제 

외로움이 노년층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도 많이 나오고 있다. 2015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은 혈압 상승과 같은 신체 건강 악화와 관련이 있다. 외로운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인지 기능 저하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컸고, 불규칙한 식습관, 불규칙한 수면 시간 등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에  빠지기 쉬웠다. 

외로움은 또 우울증과 불안을 포함한 정신 건강 악화의 주요 예측 인자였고, 흡연이나 비만과 비슷한 수준으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까지 증가시켰다.

외로움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공중 보건의 최우선 과제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전 세계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영국과 일본은 고독사와 노인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영국 정부는 2002년 5월부터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에 한화 약 330억 원을 지원해 왔다.
 
 호주의 85세 이상 남성 인구는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36명으로 전체 평균인 십만 명당 12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호주에서도 노인들이 필요한 모든 정보와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준비 중이고, 외로움의 징후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을 의료 시스템의 평가 기준에 포함했다.

한편 노인의 외로움을 포함한 사회적인 외로움을 종식하기 위한 비영리 민간 국제기구도 있다. 외로움과 연결에 관한 글로벌 이니셔티브(Global Initiative on Loneliness and Connection, GILC)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현재 10개의 회원국이 가입해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간단하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과거를 돌아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 친구들과 계속 소통하고, 예전의 나와 화해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후회하는 일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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