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남대문시장 ‘참빛공예’ 가 봤다. 와~ 너도?”
전통 자개 아름다움에 끌린 MZ부터 70대까지 발걸음
지난 10일 오전 8시 10분. 평일 이른 시간부터 남대문시장 중앙상가 C동 2층 132호 ‘참빛공예’ 앞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전날에 이어 두 번째 방문했다는 정노미(58)씨는 인천 송도에서 왔다. 정씨는 “딸이 SNS에 올라온 글을 보더니 ‘여긴 꼭 가봐야 한다며’고 성화를 부려 같이 왔었다”며 “딸이랑 와서 자개함을 사 갔는데, 아는 동생이 이쁘다며 구매를 부탁해서 다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참빛공예’는 65년간 자개공예품을 만들어온 노한근(81)씨와 부인 방정자(72)씨가 운영하는 전통칠기 전문점이다. 작은 손거울과 명함지갑 같은 소품류부터, 소반이나 자개장처럼 크고 화려한 가구류까지 다양한 제품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날 매장을 찾아온 이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구현진(27)씨는 “매장을 찾아오는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참빛공예 찾냐’고 묻더니 알려주더라”면서 “인터넷에서 처음 봤는데 주변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손녀와 엄마, 할머니까지 3대가 함께 가게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안영숙(77)씨는 “동양 자수를 해서 전통 공예품에 관심이 많다”며 “손녀가 SNS에서 보고 여기 물건을 하나 사 왔는데 예뻐서 다 같이 사러 왔다”고 말했다. 안씨는 선물용으로 자개 손거울 5개를 샀다.
점심 무렵 가게는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으로 가득 찼다. 원래 공예품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문진수(38)씨는 “어릴 적부터 자개공예품을 좋아했다”며 “소중한 예물이나 귀금속들을 좋은 함에 보관하고 싶어서 (공예품을) 사러 왔다”고 했다. 다른 한 손님은 기자에게 한 자개장에 대해 “백화점에서 사면 몇십만원 부를 물건”이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노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보고 많이 오는 데 자개공예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몇몇 젊은 친구들은 거스름돈을 주려고 하면 그 돈으로 차 한잔 하시라면서 그냥 가기도 한다”며 “난 어차피 손을 털어야 하는데 젊은 학생들이 와서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냥 막 주고 싶다”고 말했다.
참빛공예가 부쩍 주목을 받게 된 건 한 블로그 글을 통해서였다. 지난달 16일 블로거는 참빛공예에서 구매한 자개함 사진을 올리면서 “전통을 고수하시는 스타일, 사장님이 MZ의 세계에서 50년 정도 유리되어 계시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 크기의 수공예품을 5만원에 샀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 글을 통해 노씨가 최근 65년간 이어온 참빛공예의 문을 닫기로 하고 쌓여있던 재고를 싼값에 정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졌다.
참빛공예는 노씨가 손수 도안을 그려 하나하나 자개를 박은 제품들을 판매한다. 자개 고유의 영롱한 빛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교칠을 했음에도 만져보면 수제품 특유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참빛공예만의 특별함에 관해 묻자 노씨는 “그냥 옛날 거 고집하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손쉬운 요즘 방식을 택하는 대신 그는 오래전 방법 그대로 자개 공예품을 손수 만들어왔다.
그는 “요즘은 색소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자개 색을 만든다”며 “참빛공예 물건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예품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자개함을 하나 들어 보여주며 “이건 멕시코 패인데, 자세히 보면 자개마다 색이 다르고 고유의 색이 있다”며 “자개에 색소를 넣을 게 아니라 이렇게 서로 다른 빛깔의 패를 사용해 조화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씨의 고집을 눈 밝은 요즘 사람들, MZ세대가 알아봤다. 지난달 말부터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참빛공예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노씨의 아내 방씨는 “오는 손님마다 인터넷을 보고 왔다길래 어디 그런 게 있냐고 했더니 손님이 찾아서 직접 읽어줬다”며 “우리는 그냥 너무 감사하고 자식들도 ‘우리가 못 하는 일을 손님이 대신해줬다’며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가게에 있던 물건이 금세 동이 나 창고에 쟁여뒀던 물건을 매일 꺼내오고 있다. 건강상 문제로 쉬고 있던 동생까지 나와 일을 돕는다.
노씨는 65년 넘게 나전칠기를 만들어왔다. 중학생 때부터 공장에서 자개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군대를 전역한 뒤에는 직접 ‘참빛공예(구 서울공예사)’를 차려 운영했다. 공장에서 공예 일을 했던 동생 노한욱(73)씨도 일을 도왔다. 노씨 형제가 공예품을 만들고 아내와 아들이 가게를 운영했다.
한때는 명동역 인근 새로나 백화점(현 새로나쇼핑몰) 앞에 건물 하나를 다 쓸 정도로 큰 가게를 운영했다. 직원도 3~4명 둘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러나 자개공예품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면서 가게 운영비와 임대료를 댈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했다. 결국 가게를 작은 데로 여러 번 옮겨 다녀야 했고, 보관할 수 없는 물건들은 창고로 보냈다.
여기에 코로나19는 직격타였다.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됐다. 아내 방씨는 “운영비와 임대료 때문에 빚만 늘어갔다”며 “아들이 ‘생활이 안 돼서 더는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렇게 올해 1월 무렵 참빛공예는 폐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노씨에게 기술을 전수받아 배운 사람은 없었냐고 묻자 방씨는 “아들이 재주는 있다”며 “어릴 때부터 아빠가 도안을 그리는 걸 보고 자라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항상 자개 공예제품을 만드느라 시커멓게 물든 아빠의 손톱을 보고 고생하는 모습을 본 아들은 자개 공예 대신 애니메이션이라는 자기의 길을 택했다. 방씨는 “아빠 사는 게 답답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칠기가 참 힘든 작업이라 혼자서는 못하는데 기술자들은 지금은 다 떠났다”며 “배우는 게 어려워서 10년 정도 연륜이 필요한데 일당은 몇만원 수준이라 사람들이 못 견딘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참빛공예가 알려지며 공예 기술을 직접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점이다. 노씨는 자신이 가르치긴 어렵다며 대신 본인의 후배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언제까지 가게를 운영할지 묻자 노씨는 “있는 거 다 털면 접어야지”라고 말했다. 가게를 정리하는 게 속상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기도 하지만 속이 다 시원하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이런 자개공예품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요샌 정말 행복해 죽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서혜원·선예랑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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