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후쿠시마 시찰단 12시간 회의…'나흘 방일' 합의했다
한ㆍ일이 12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현장 시찰단 파견 관련 국장급 회의를 열고 자정을 넘겨 12시간 동안 논의를 이어갔다. 한ㆍ일 국장급 협의가 자정을 넘긴 건 이례적으로 시찰단의 역할 및 활동 범위 등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조만간 추가 협의를 갖기로 했다.
13일 외교부는 "전날 오후 2시에 개최됐던 회의가 자정을 넘겨 이날 오전 2시에야 끝났다"며 "우리 전문가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대한 구체사항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정을 넘어 이어진 회의에서 양측은 시찰단의 조속한 방일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협의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또 "우리 측의 상세한 제안 사항을 바탕으로, 우리 시찰단의 파견 일정, 시찰 항목을 포함한 활동 범위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며 "양측은 시찰단의 일본 방문을 나흘 일정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시찰 프로그램을 포함한 방문 세부 사항을 매듭짓기 위하여 추가 협의를 가능한 조속히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의 상세한 제안 사항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대목에서 한국 측이 시찰단의 역할과 활동 범위를 보다 포괄적으로 설정할 것을 요구한 반면, 일본 측은 방류 시설을 직접 살펴보는 데에 의의를 두는 정도로 선을 그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찰단은 도쿄전력 및 경제산업성 등 유관 부처 관계자 면담,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시스템의 가동 상황 및 운영 역량 등을 살펴볼 예정인데, 어느 범위까지 시찰이 이뤄지고 자료를 제공 받을지가 관건이다.
12일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는 윤현수 외교부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이 수석대표로 국무조정실, 원자력안전위원회,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자가 자리했다. 일본 측에선 가이후 아쓰시 일본 외무성 군축불확산과학부장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실제 이날 회의 시작 전부터 회의의 성격 자체에 대해 양국 간 온도 차가 감지됐다. 외교부는 '국장급 회의'라고 명명한 반면 일본 외무성은 보도자료에 '설명회'(영문 자료에는 '브리핑 세션')라고 명시했다. 일본 측이 오염수 문제를 두고 한국과 양자로 협의하는 듯한 모양새를 피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은 한국 전문가를 포함해 11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태스크포스(TF)의 활동만 '검증'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날 회의 전부터도 시찰단 역할과 관련해선 양국의 설명이 다소 엇갈렸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이날 시찰단 파견 관련 브리핑에서 "시찰의 목적은 해양 방류 과정 전반에 걸쳐 안전성을 검토하기 위함"이라며 "오염수 정화 및 방류시설 전반의 운영상황과 방사성 물질 분석 역량 등을 직접 확인하고, 우리의 과학적·기술적 분석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외교부 당국자도 9일 기자들과 만나 시찰단 파견과 관련 "IAEA 모니터링에 이어 독자적으로 오염수 처리의 안전성을 중층적으로 검토·평가할 기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다만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일본 측 주무 장관인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시찰단이) 처리수(오염수의 일본 표현) 안전성에 대해 평가하거나 확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디까지나 한국 측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양국 간 온도 차가 감지되는 게 사실이지만 IAEA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게 현지를 직접 확인하는 기회를 얻은 만큼 실질적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시찰단은 20명 내외로 예상되며, 민간 전문가나 시민 단체가 포함될 가능성은 적다. 박 차장은 "일본은 이번 시찰단 파견을 정부 대 정부 문제로 보기 때문에 민간 영역의 참여는 아직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실상 검증에 준하는 시찰 및 자료 확보를 하고 우리 농·수산업계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 후쿠시마 및 주변 지역의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확인할 절차도 포함돼야 한다"며 "이번 시찰단 파견이 일회성으로 끝날 게 아니라 이후 필요할 경우 한국 측 요청에 따라 시찰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도 "IAEA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시찰단이 파견되는 만큼, IAEA차원의 검증이 어떤 방향과 범위로 이뤄지는지 현장에서 직접 동향 파악을 하고 오는 것도 의미 있다"며 "일본이 주장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투명한 과정'을 꼼꼼히 살펴 양국 간 신뢰를 높이고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IAEA는 다음달 말 오염수 시료 분석 결과 등을 담은 최종 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한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처리수'로 공식 용어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박 차장은 "IAEA 보고서는 전반부에선 오염수라고 표현하고 ALPS 이후 부분은 처리수라고 하며 단계별로 표현을 달리해서 쓰고 있다"며 "최종 보고서가 나온 시점에서 IAEA의 표현이 변화가 있다면 거기에 맞출지 여부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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