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 정작 中선…" 중국어 '라디오 여신'의 깜짝 고백 [사공관숙의 한국 속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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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 한중이 또 다른 30년을 여는 첫해 2023년을 맞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자리잡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부드럽고 따듯한 '여신' 목소리로 국내 중국어 라디오 방송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난 DJ가 한 명 있다. TBS eFM 라디오에서 매일 2시간씩 중국어로 한국의 다양한 소식을 전해온 방송인 무전(牟珍)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해로 한국 생활 15년 차인 무전은 라디오 진행 외에도 현재 한중 MC, 중국어 성우, 한중 동시통역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객원교수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중국어 라디오를 즐겨 듣는 이들에게 무전의 목소리는 더없이 친숙하다. 프로그램의 간판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국에 사는 중국인이라면 무전의 방송을 안 들어본 이가 없을 정도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한국인 중에서도 애청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20년 팬데믹 시기 쌍둥이 엄마가 됐다고 밝힌 무전은 지난 3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본인의 이야기를 유창한 한국어로 쉴 새 없이 쏟아냈다. 15년 전 한국에 오게 된 배경, 만능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게 된 과정과 그 뒤에 숨겨진 노력, 일과 육아에 대한 소신 그리고 프리랜서 꿈나무들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Q : 한국은 언제 어떻게 오게 됐나?
A : 2008년 한국에는 직장 파견으로 처음 왔고, 온 지는 15년 정도 됐다. 학부 때 전공이 대외 한어(국제 중국어 교육)과라 졸업 후 출판사를 보유한 베이징(北京) 소재의 한 어학원에서 중국어 강의를 했었다. 부전공이 방송과여서 대학 시절 여러 교내 또는 외부 행사 진행이나 학교 라디오 방송국 국장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발음이나 강의력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교재 녹음이나 출판을 염두에 뒀던 어학원 원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셔서 채용과 동시에 한국 파견이 결정 났었다.
Q : 한국에 올 거라고 예상했는지?
A : 사실 대학 때 고민했던 진로는 한국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어련히 전공대로 중국어 강사가 되거나 아나운서᛫MC(진행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주전공은 중국어 교육이었지만 교수님이 MC를 적극 권유하셔서 대부분 그와 관련된 이력을 쌓았다.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시 TV᛫라디오 방송국에서 MC 관련 상도 받았고, 보통화(普通話,중국 표준어)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방송국에 인턴으로 들어가 TV 프로그램 촬영᛫진행 등을 해봤는데,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진로를 바꿨다. 4학년 때 처음으로 외국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보람을 느꼈다. 고향은 산둥(山東)성이지만 허난성에서 자랐기 때문에, 졸업 후에는 집과 비교적 가까운 베이징에서 첫 직장을 구했다. 그게 나를 한국으로 보내준 어학원이었고 그렇게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Q : 한국에 파견 나온다고 했을 때 부모의 반대는 없었는지?
A : 반대는 안 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1~2년 정도 가는 걸로 생각하셨고, 실제로 계약도 1년 단위로 해서 내가 원하면 연장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 온 후로 다시 미국으로 유학 갈 마음이 생겨서 한동안 영어 공부에 몰두했었다. 그래서 한국 영어 학원에서 고급 프리토킹반 수업을 들었는데, 여기서 오히려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다. 그때 만난 인연들 중 지금 대기업에 다니거나 동남아에서 사업하는 친구도 있다. 친구가 생기니 한국에도 점점 관심이 생겨 2년 반 정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고 어학당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Q : 통번역대학원 입시학원에서도 일했다고 하던데.
A : 어학당에 다닐 당시 통번역대학원(통대) 입시 대비로 유명한 학원이 하나 있었다. 이 학원에 한-중 통번역을 가르칠 중국어 원어민 선생님이 없다고 해서, 다른 분 추천으로 내가 수업을 맡게 됐다. 그래서 한때 오전에는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오후에는 통대 입시 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그런데 내가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번역에 흥미가 생겼고, 왠지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생겨 통대 진학을 준비하게 됐다.
Q : 통대 입시 준비는 어떻게 했나?
A : 정말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한국어학당에 다닌 지 1년 만에 입시를 시작해서 한국어 실력이 한참 부족했다. 한국어를 끊임없이 쓰고 읽고 외우느라 2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볼펜을 한 20자루 정도 쓴 것 같다. 매일 한국어를 한 문단씩 달달 외웠다. 통대 입시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파트너가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주로 한국어를 잘하는 국내파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를 많이 했다.
Q : 쌍둥이 아들들의 언어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나?
A : 우리 집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엄마 아빠가 명확하게 구분해서 사용 중이다. 한국인인 아빠는 아이들과 무조건 한국어로 대화하고, 나는 중국어만 쓴다. 그런데 한국에 살고 또 어린이집에서도 한국어만 쓰다 보니, 내가 중국어로 물어봐도 아이들은 한국어로 대답한다. 중국어 듣기 수준은 한국어와 비슷하지만 말하기는 아직 서툰 편이다. 아이들이 중국어로 대답하지 않을 때 엄마가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중국어 말하기 실력도 자연히 는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엄마 입장에서 늘 아이들 빨리 밥 먹이고, 옷 입혀서 데리고 나가기 바쁜 것 같다.
Q : 한᛫중 혼혈인 아이들의 국적이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는지?
A :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고향은 산둥이지만 허난성에서 자랐기 때문에 허난 사람도 산둥 사람도 아니란 느낌이 있었다. 베이징에 가든 상하이에 가든 나는 언제나 외지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속감이 없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돼 보니 사실 이런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사람이냐 중국 사람이냐를 따지기보단 앞으로 아이들이 그냥 나는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Q : 코로나 시기에 육아가 힘들 진 않았는지?
A : 한국에 온 뒤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2020년에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특히 아이들 첫돌 전까지가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다행히 한국은 산후 도우미 정부 지원이라던가 전반적인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었다.
Q : 한국에서 중국어 라디오 방송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A : 2014년에 TBS 교통방송에 합류했으니 거의 10년이 다 돼간다. 2014년은 내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한 해이기도 하다. 라디오 방송과 통학을 병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간 TBS에서는 '서울생활가유참(首爾生活加油站)', '신문재로상(新聞在路上)', '천애만리정(天涯萬里情)' 등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Q :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A : 2015년 새해에 한᛫중 다문화 가정을 인터뷰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했었다. 그때 한 부부가 한᛫중 축구 경기를 보러 가서 각자 서로 태극기와 오성홍기(중국 국기)를 들고 흔들었다는 얘기가 너무 재밌었다. 지금 생각하니 방송하면서 인터뷰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과의 인연, 부딪히고 적응해 가는 과정, 행복했던 기억 등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즐거웠다. 한국에 온 중국 사람들이 처음에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은 언어적인 부분이다. 식습관이나 문화는 사실 한᛫중 양국에 비슷한 면이 많아서 적응하기 쉬운 편인데, 한국어를 배우는 게 가장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Q : 한국에 왔을 때 중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A : 화장을 안 하는 여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나는 중국에 있을 때부터 방송이나 행사가 없는 날엔 거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편이었고, 지금도 평상시에 화장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민낯은 본인 미모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거나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해서 꽤나 당황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회식할 때 밥 먹고 술 마시고 커피까지 마시는 등 2차, 3차 자리로 이어지는 게 놀라웠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한᛫중 간에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 주변 한국분들은 자기 부모님을 깍듯이 대하고 조금 어려워하는 면이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부모님과 좀 격의 없이 지내는 편이다. 미국 사람처럼 부모님 이름을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과 미국의 딱 중간 정도인 것 같다.
Q : 최근 라디오 방송을 잠시 쉬고 있다고 들었는데.
A : 방송사 사정상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요즘은 한국외대에서 통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중국어 실력이 상당한 것 같다. 10년 넘게 중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다.
Q : 통번역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 사람들은 동시통역과 순차통역을 혼동할 때가 많다. 동시통역은 리시버 등 기계가 필수적이고, 순차통역은 발화자가 중간에 말을 끊어줘야 통역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순차통역을 동시통역으로 착각해 5~7분 넘게 끊지 않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기억에 의존해 키워드만 가지고 통역을 해야만 했다.
Q : 한중 MC로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느낀 점은?
A :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는 주최 측이 상당히 꼼꼼하게 모든 것을 사전에 체크한다. 전반적인 리스크를 확 줄여 주기 때문에 진행자로서 상당히 든든하고 팀워크가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Q : 방송이나 통역 등 프리랜서 일을 주로 해왔는데, 후배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A : '프리(Freelancer)'는 '프리(Free)'가 아니다. 프리랜서를 하려면 인하우스(회사 소속)로 일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자격증과 경력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전, 먼저 인하우스로 몇 년 정도 일을 해보고 프리랜서가 적성에 잘 맞는지 먼저 파악하고 결정하는 게 좋다.
Q : 프리랜서로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A : 일회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최 측이 같은 행사를 매년 나에게 맡기게 됐을 때 제일 뿌듯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주최 측이 애초 협상했던 보수보다 더 많이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내 능력을 인정받는 느낌이라 정말 기분이 좋다.
Q : 한중 2개국어 진행을 잘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A : 우선 모국어 진행을 먼저 숙달해야 한다. 모국어로 진행 관련된 모든 기술을 익힌 다음 외국어 진행에 적용하면 된다. 사실 한중 MC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취향 차이가 좀 있다. 중국 사람들은 하이톤에 달콤한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내 목소리는 정작 중국에선 인정을 못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무게감 있고 멀리 잘 퍼지며 파고드는 힘이 있는 목소리라 아나운싱을 가르쳐준 선생님도 행사 MC 쪽으로 나를 많이 밀어주셨다. 방송이나 더빙 관련 수업도 열심히 들었지만, 나한테는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반면 한국에 와서는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차분하고 평온한 느낌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것 같다.
Q : 현재 가장 큰 고민이나 도전은?
A :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일은 평생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또 금방 크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주변에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한국 엄마들이 많은데, 오로지 아이 생각밖에 안 해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더 큰 것 같다. 나는 육아든 일이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 없고 잘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Q : 향후 계획이나 목표는?
A : 내년에는 통번역 박사 과정에 도전해보고 싶다. 올해는 평생교육원에서 경영학 수업을 신청했다. 사람이 불안하고 뭘 하고 싶을지 모를 때는 공부가 최고인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보면 또 좋아하는 일을 찾게 마련이다.
Q : 마지막으로 한᛫중 관계에 대한 평소 생각이나 기대가 있다면?
A : 정치 문제는 정치로 해결하고, 경제 문제는 경제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한᛫중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당장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마냥 쉬고 있어선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기회는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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