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대로 무한히 즐긴다" 하이볼, 대세로 자리잡다

구은모 2023. 5.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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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 新주류문화로 입지 다져가
낮은 도수와 가격으로 진입장벽 낮아
취향대로 제조 가능한 점…소비 흐름과 맞아

“시원한 하이볼 한 잔을 쭉 들이켜고 나면 자연스럽게 숨을 '후~!'하고 크게 내쉬게 됩니다. 그때 입에서 느껴지는 위스키의 풍미와 모든 게 다 씻겨 내려간 것 같은 청량감, 그게 너무 좋습니다.”

자영업자 안지호(40) 씨는 올해 들어 퇴근 후 하이볼을 만들어 마시는 일이 부쩍 늘었다. 저녁 식사에 하이볼을 한잔 곁들이면 일하며 쌓였던 피로가 삭 풀리고 남은 하루를 조금 더 활기차게 보내게 되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안 씨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해 늘어지기 일쑤였는데 시원하게 하이볼을 한 잔 마시면 경쾌한 기분이 든다”며 “탄산음료는 단맛이 강조된 경우가 많은데 드라이한 술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면 달지 않아 뒤끝이 개운해 즐겨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술담화 '하이볼 전용잔'

최근 주류업계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하이볼(Highball)’이다. 다양한 술과 음료를 혼합해 만드는 하이볼은 짜릿한 청량감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진입 문턱이 높지 않은데다 집에서도 쉽고 다양하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제조가 가능해 다양한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며 새로운 주류문화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하이볼은 얼음을 채운 잔에 증류주를 일정량 넣고 소다수로 채우는 간단한 제조법이 특징인 칵테일의 일종이다. 하이볼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95년 크리스 라울러가 쓴 ‘더 믹시콜로지스트(The Mixicologist)’에 있다. 더 믹시콜로지스트에 따르면 하이볼은 얼음과 탄산수를 채운 잔에 1.5온스(oz)의 브랜디나 위스키를 채우는 것이라고 정의돼 있다.

국내에선 일본의 영향을 받아 산토리의 위스키 ‘가쿠빈’으로 만든 ‘가쿠하이볼’이 하이볼의 표준처럼 여겨지며 2010년대 이후 일본식 주점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홈술·혼술 문화가 확산하며 특별한 부재료나 기술 없이도 증류주와 소다수, 얼음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하이볼이 주목을 받으며 대중화됐다.

산토리 '가쿠빈' 하이볼

뛰어난 음용성과 무한한 확장성, 저렴한 가격까지 3박자 갖춰

최근 하이볼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이유는 우선 뛰어난 음용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이볼은 증류주의 높은 도수를 소다수로 희석시킨 술이기 때문에 독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상대적으로 쉽게 시도해보고 마실 수 있다. 또한 시원한 소다수가 들어간 만큼 청량감이 강조돼 맵고 뜨거운 음식이 많은 한국 식탁에서도 다양한 음식과 곁들여 마시기에 용이하다.

명욱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는 하이볼을 ‘소맥(소주+맥주)’의 명맥을 잇는 새로운 형태의 주류 아이템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콜라와 맥주처럼 음료에 탄산이 들어가면 음식과의 매칭이 편해진다”며 “반주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에게 탄산 있는 칵테일인 하이볼은 소맥의 연장선에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앞세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 '글렌피딕' 하이볼

하이볼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확장성도 장점이다. 하이볼 제조에는 위스키가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증류주라면 브랜디·진·럼·보드카 등 무엇이든 하이볼의 기주가 될 수 있다. 소다수 역시 취향에 따라 탄산수부터 진저에일, 토닉워터, 콜라까지 다양하게 사용 가능해 개성을 중시하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경제성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요인이다. 하이볼은 증류주를 희석해 마시는 방식이기 때문에 위스키 본연의 향과 풍미가 제조과정에서 옅어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저가의 위스키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아무것도 섞지 않고 니트(neat)로 마실 때보다 위스키를 소비하는 양도 줄어들게 된다. 하이볼이 ‘가성비’ 시대에 어울리는 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78.2% 증가한 8443t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같은 기간 위스키 수입액 증가 폭(24.0%)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국내 위스키 산업의 양적 성장의 속도가 질적 성장의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늘어나는 수요…新음용문화로 자리 잡을까

하이볼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제맥주 업체들의 즉석음료(RTD·Ready to Drink) 형태의 하이볼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카브루다. 카브루는 지난 3월 ‘이지 하이볼’을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레디 하이볼’까지 신규 캔 하이볼 브랜드를 연이어 선보인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업소용 드래프트 하이볼인 ‘카브루 하이볼’ 2종을 대용량 케그(keg) 제품으로 출시하며 관련 사업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카브루 관계자는 “케그 하이볼은 업주의 편의성을 고려함은 물론 소비자에게도 일정한 퀄리티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올인원 하이볼”이라며 “캔 하이볼을 다양하게 선보였듯 꾸준한 레시피 개발을 바탕으로 하이볼 라인업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카브루 하이볼 2종

카브루에 맞서 세븐브로이맥주도 지난달 ‘블랙 네온 하이볼 레몬 토닉’을 출시했고, 최근 협업을 통해 ‘미에로하이볼’을 선보이기도 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역시 지난 2월 '어메이징 안동 하이볼' '어메이징 영주 하이볼' 상표를 출원하며 하이볼 사업을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하이볼이 유행하면서 비교적 규모가 큰 수제맥주 업체들을 중심으로 매출 다변화를 위해 하이볼 생산에 나서고 있다”며 “미국에서도 유명 맥주 양조장들이 하이볼과 유사한 하드셀처가 유행하면서 관련 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하드셀처는 알코올을 뜻하는 '하드'와 탄산수를 의미하는 '셀처'의 합성어로 알코올이 들어간 과일향 탄산음료를 뜻한다.

GS25에서 판매중인 하이볼 10종.

편의점들도 대규모 유통채널을 앞세워 제품군을 늘려가고 있다. GS25는 지난 1월 ‘쿠시마사 원모어 하이볼’ 2종을 시작으로 ‘로얄 오크 프리미엄 하이볼’, ‘코슈 하이볼’, ‘버번위스키 하이볼’, ‘몰디브 하이볼’ 등 10종으로 확대하며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CU도 지난해 11월 ‘어프어프 하이볼(레몬·얼그레이)’ 2종을 선보인 이후 ‘리얼위스키하이볼’, ‘연태토닉하이볼’, ‘청신레몬하이볼’ 등을 차례로 내놓으며 상품군을 6종으로 늘렸다.

초반 판매도 순항하고 있다. 올해 1월 첫 하이볼 제품을 선보인 GS25는 최근 3개월(올 2~4월) 하이볼 제품의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6% 증가했고, 같은 기간 CU 역시 하이볼 매출이 77.3% 늘었다. GS25 관계자는 “3월부터 하이볼 상품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관리할 정도로 주류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며 “관련 주류 구색을 확대해 신성장 카테고리로 집중 육성해 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업계는 하이볼의 인기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주류 음용 문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격대가 높지 않아 누구나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데다 다양한 재료로 혼합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명 교수는 “하이볼은 증류주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춰줬다”며 “하이볼을 좋아하게 된다면 결국 다양한 주류를 경험해보고 싶어하게 돼 관련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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