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김소월·천경자의 '진달래꽃'

서믿음 2023. 5.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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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꽃과 여인, 슬픔과 정한이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이 흐르는 시 150편과 그림 34점을 담았다.

그래서 그의 시 속 주체들은 그저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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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김소월과 화백 천경자의 작품을 수록했다. 꽃과 여인, 슬픔과 정한이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이 흐르는 시 150편과 그림 34점을 담았다. 김소월의 첫 시집인 '진달래꽃'과 '소월시초'의 수록 시 전편 외에도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가려 뽑아 실었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일부 현대 표준어 규정에 따랐지만 시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최소화했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으로는 1958년 '소월시선'(여원사)의 진달래꽃이 그려진 표지 그림 등을 소개한다.

김소월의 시가 바로 그렇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슬픈 화자들은 하나같이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자기 탓이 아닌데, 자기 뜻과 다르게,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해야만 하는 존재들, 상황을 극복할 방법론도 보이지 않은 채 속수무책 주저주저하는 사이, 상황은 운명처럼 굳어져, 어느 순간 그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내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 속 주체들은 그저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설워한다. (〈여는 글〉 중에서, 13~14쪽)

이 시의 주제를 이별의 정한이라 했지만, 그 이별 앞에서 이 시의 화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는 자세로 아픔을 받아들임은 물론, 나아가 꽃을 뿌려 임의 앞길을 송축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를 일컬어 전통적 인고의 여인상 운운하며 가르쳐왔지만, 나는 그것을 여성스러움이 아니라 어른스러움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며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사랑이 끝난 자리에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만 남을 뿐이다. 반어니 역설이니 하는 것도 격정과는 거리가 먼 지적인 수사인 것을. 그렇다면 이는 어른스러움이라 함이 맞지 않겠는가. (〈여는 글〉 중에서, 16쪽)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못 잊어〉, 49쪽)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 중에서, 119쪽)

진달래꽃 | 김소월 글·천경자 그림/만화 | 문예출판사 | 304쪽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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