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았다하면 2조, 10조…'감빵 입단속' 월 300씩 꽂아주는 조직
인천경찰청은 지난 9일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2조 880억원대 매출을 올린 일당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울산경찰청도 불법 도박 사이트 46개를 운영하며 10조원대 매출을 올린 일당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10조원은 2019년부터 2년간 이들 사이트에 베팅된 판돈으로 지난해 보이스피싱 총 피해액(약 1450억원)의 70배를 웃도는 액수다. 매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수백배가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베팅되고 또 사라지는 것이다.
“구속되면 월 300만원”…꼬리자르기 대비 입단속
사이버 도박은 조직적 범죄로 발전했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지난 9일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검거했다고 밝힌 조직은 69명 규모로, 이들은 필리핀을 중심으로 재무팀·운영팀·영업팀 등 조직을 꾸리고 국내에서는 따로 국내자금운영팀을 뒀다. 수사망을 따돌리기 위해 텔레그램을 통해 “검거 시에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직원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진술한다”는 내용의 행동요령도 배포했다. 구속된다면 본사에서 매달 300만원을 주겠다고 장담하며 ‘꼬리 자르기’를 준비하기도 했다.
울산경찰청이 검거한 10조원대 불법 도박사이트 조직은 조직폭력배들과 협업했다. 이들은 경기·경남·경북·전남·전북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조폭 13명을 영입해 회원을 모집, 관리하게 했다. 조폭들이 평소 상습 도박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도박 단속 건수는 2019년 1만 6476건에서 2022년 2만 6957건으로 늘어나며 3년 동안 약 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감위가 추정한 불법 온라인 카지노 매출액은 2019년 10조 6250억원에서 2021년 22조 8577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0년 발생한 전체 사이버범죄의 18.9%가 사이버 도박이다.
‘가성비’ 좋은 범죄 아이템…다른 범죄와 결합해 전문화
불법 도박 사이트들이 수조원대로까지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건 기업 형태를 갖추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김명수 울산경찰청 강력팀장은 “최근의 불법 도박사이트는 다른 종류의 범죄와 전문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서버를 해외에 두면서 보이스피싱범들이나 환치기·대포통장 업자들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도박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게임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이 적힌 파일을 가지고 관리하면서 계속 도박에 빠지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범죄자들에게 사이버 도박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하루 24시간 돌아간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도박은 사이트를 하나만 제대로 만들어 놓고 다시 그걸 모방한 유사 사이트를 만들면 되기 때문에 노력에 비해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며 “범죄경제학적 측면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에 범죄가 더욱 조직화되고 해외까지 뻗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연호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논문 ‘불법도박 참여 실태와 결정요인(2018)’에서 “불법도박 사이트 개설비용은 300~1000만원 수준이고, 서버 관리비용도 한 달에 150~4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홍보나 회원 모집도 SNS나 인터넷 배너, 채팅방, 휴대전화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손쉽게 접근해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수사기관에서는 불법 사행행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신고를 유도하고 공익단체·개인 등 조력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 또, 함정수사 등 여러 수사기법도 광범위하게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직이 놓은 덫에 쉽게 빠질 만큼 만연해진 중독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것이다. 범죄수익금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도박중독자들이 많이 늘어난다는 방증”이라며 “최근 마약중독과 도박중독이 함께 불어나고 있는데 이는 맥을 같이하는 전형적인 사회병리 현상이자 사회가 피폐해졌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문화적인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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