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덜 쓰고도 아프리카 장악한 러…'국뽕 영화'에 담긴 비밀 [영화로운세계]
「 용어사전 >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
국제 뉴스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곤 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낯선 땅의 사람들에게 금세 감정 이입이 되죠. 영화를 통해 더이상 ‘먼 나라’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국제 뉴스를 전합니다.
」
아프리카 국가 수단에서 내전이 한 달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상자 수천 명이 발생했고 약 33만 명이 피란길에 나섰죠.
지난 2021년 쿠데타로 집권한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의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신속지원군(RSF) 사령관의 다툼에서 시작됐는데요. 눈에 띄는 건 바로 러시아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인 바그너그룹이 반군인 RSF를 지원하고 있거든요. 서방의 근심은 커지고 있습니다. 수단뿐 아니라 수많은 아프리카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 이번 참에 드러났거든요.
사실, 아프리카가 미국과 중국의 각축장이 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두 대국은 ‘돈’을 쏟아부으며 이 대륙에 구애하고 있죠. 그런데 러시아는 그럴 돈이 없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 따르면,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가 54억 달러(약 7조원, 2018년 기준)에 달할 때 러시아는 그 20%인 10억 달러(약 1조300억원)에 그쳤죠. 중국-아프리카 무역 규모가 2540억 달러(약 335조원)에 달한 2021년, 러시아-아프리카 무역 규모는 156억 달러(약 20조원)로 16분의 1에 불과했고요.
그런데도 러시아가 ‘가성비’로 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치는 ‘비결’은 뭘까요?
영화 '밀리터리 맨'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020년 12월 이곳에선 피튀기는 내전이 벌어지는 중입니다. 이 나라 정부군 훈련을 돕기 위해 외국서 파견온 군인, 코드네임 '투어리스트'는 민간인을 마구 학살하는 반군을 막으려다 심각한 부상을 입습니다. 헬기가 오기까지 1시간 30분. 반군은 계속 포위망을 좁혀오고 탄약은 떨어져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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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부패 세력 군사로 지원하는 ‘파괴지왕’ 전략
맞아요.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체결하며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밀리터리 맨'의 주인공처럼 교관 업무를 할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반테러 작전 등을 돕는 식으로요. 아프리카에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가 워낙 많아 이 전략이 잘 통했습니다. 2022년 기준, 아프리카 54개국 중 28곳과 군사협력을 맺고 있죠.
문제는 러시아가 '비무장 군사고문단'이라 해놓고, 무장 용병인 바그너그룹을 보내고 있단 겁니다. 실제로는 입맛에 맞는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내전에 직접 뛰어들며 힘을 키웠다는 거죠. 그 대가로 금·다이아몬드 등 각종 자원 채굴권을 얻으면서요. 이렇게 러시아는 말리·수단·차드 등 사헬 지대(사하라사막 남쪽 중부지역)에서 특히 막강해졌습니다. 정규군이 아닌 용병을 보내는 것과 관련해선, 비용 절감과 인권 유린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란 분석(외교안보연구소)이 나옵니다.
그렇다 보니 바그너그룹의 악행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UN 보고서(2021년)가 나오기도 했죠. 도이체벨레는 “바그너그룹은 무력을 발판으로 각종 비즈니스에 진출해 돈을 벌고 있다"며 "특히 수단이 본거지"라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가 낯간지러운 ‘국뽕’에 젖어 만든 '밀리터리 맨'의 주인공들은 영웅처럼 묘사됐지만, 실상은 정반대란 얘깁니다.
무기 수출도 엄청납니다. 러시아는 싼 가격에, 인권 문제 등을 '트집' 잡는 서방과 달리 조건 없이 무기를 판매해 인기가 좋거든요. 아프리카 최대 무기 수출국이 바로 러시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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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전략가까지 동원, 언론·시민단체도 장악
러시아는 소프트파워 활용에도 능숙합니다. 특히 사헬 지대에선 언론과 시민단체에 깊숙이 침투해 있고요, 소셜미디어 전략가까지 동원하며 반서구 성향 인플루언서 등을 후원합니다. 이때, 구소련에 대한 아프리카의 향수도 자극합니다. 냉전 시기 구소련은 미국 등 자유주의 진영 견제를 위해 아프리카국들의 독립을 적극 후원했거든요.
엘리트가 될 ‘싹’이 보이는 이들에게 러시아 유학을 지원하고 자금도 후원한다고 해요. 이들이 추후 제 나라에서 집권하게 될 경우, 매우 적은 투자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역시 ‘가성비’ 전략입니다.
이 모든 맥락을 알고 보면 ‘밀리터리 맨’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선전 영화인데요. 반군을 몰아내다 지친 러시아 군인들이 막간에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자네는 여기 왜 온 거야?"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하지. 하지만 난 정의를 위해 싸우러 왔네."
이 대륙에서 서방을 밀어내려는 러시아의 ‘포부’가 느껴지는 장면이죠.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립을 피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프리카에 더욱 밀착하고 있어, 당분간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란 게 외신의 분석입니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전쟁이 끝난다 해도 우크라이나 참전 용병이 대거 아프리카로 옮겨가 이곳의 불안정을 자극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국평화연구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서구에 대한 불신이 큰 만큼, ‘도구’로 보지 않는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전방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요. 이번 수단 내전을 두고도 민주화를 제대로 돕지 못한 국제사회에 책임이 있단 비판이 나오는 만큼, 뻔할지언정 귀 기울여야 할 ‘정답’처럼 들립니다.
「 용어사전 > 영화 '밀리터리 맨'
안드레이 바토프 러시아 감독이 연출한 2021년 영화. 같은 해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악명 높은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이 제작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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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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