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 이공계 진학 쉬워진다? 해소 안되는 ‘넘사벽’ 구조

이도경 2023. 5. 1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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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제시 문과침공 해법 짚어보니
게티이미지뱅크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초래한 이른바 ‘문과침공’ 현상에 대해 교육부가 속수무책 상황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과 수험생이 수학 성적의 우위를 발판으로 상위권 대학의 문과 전공으로 진학하는 것을 입시 현장에선 문과침공이라고 부르는데, 논란이 커지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골자는 문과생도 이공계 전공에 지원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고, 수능의 난이도 조절에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시 전문가와 학교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문과침공, 누구 탓인가

학교 현장에서 문과와 이과 구분이 사라진 시기는 2002년 적용되기 시작한 7차 교육과정부터다. 하지만 고교 교실을 지배하는 것은 대학 입시제도다. 수능과 각 대학 전형에선 문·이과 구분이 명확하다 보니 정부 공식 용어에서만 문과, 이과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2007년 무렵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의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를 위해 문·이과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를 받아들인 박근혜정부가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을 내놓게 된다.

관건은 대입 제도였다. 특히 문과형과 이과형으로 구분돼 치러졌던 수능 수학이 핵심이었다. 종전 방식대로 문과형과 이과형을 따로 응시해 성적을 산출하면 ‘무늬만 통합’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통합형 수능이 설계되던 시점에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바통은 문재인정부로 넘어갔다. 일단 문·이과생이 함께 수학 시험을 치른다면 난이도와 시험 범위가 문제였다. 문과를 중심으로 통합하면 이공계에서 ‘학력 저하’ 논란이, 이과 쪽으로 기울면 전체 학생의 학습 부담이 증가한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공통+선택과목’이란 절충안이 채택됐다.

문과생은 주로 ‘확률과 통계’를, 이과생은 미적분 혹은 기하를 선택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문·이과생이 다른 선택과목을 치르지만 성적은 합산해서 산출된다. 이과생의 수학 학습량이 월등했기 때문에 문과생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입시 전문가들이 ‘이과생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방식’이란 우려를 제기했지만, 당시 교육부는 조정 점수를 통해 통계적으로 보정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문과생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통합 수능 첫해인 2022학년도와 2023학년도를 입시 업체와 교사 단체들이 분석한 결과 수학 1등급 비율은 이과생 90% 문과생 10%로 나타났다. 입시 현장에선 진학지도를 위해 필요한 자료라고 공개를 요구하는데, 교육부는 수학 등급별 선택과목 비중 등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입제도 설계가 애초에 잘못됐다는 질책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외면당한 교육부 해법

정보를 숨긴다고 제도 결함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2023학년도 대입 윤곽이 드러난 지난 1월 문과침공 논란이 다시 부상했다. 특히 지난해는 국어는 쉽게, 수학은 까다롭게 나오면서 수학의 대입 영향력이 한층 커졌다. 모든 문항을 맞힌 만점자가 받는 표준점수 최고점이 국어 134점, 수학 145점으로 무려 11점 차이가 발생했다. 이과생들의 명문대 문과행 길이 훨씬 넓어진 것이다.

결국 이 부총리가 지난 1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서울대 등 12개 대학 입학처장을 불러 해법을 논의했다. 그는 “수능 과목(선택)으로 입시에 불리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능의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대학과 소통해 개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문과 수험생도 이공계 전공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도록 대학들을 압박했다.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들은 문과생이 이공계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수학 선택과목을 지정하고 있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에게만 지원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면 문과에선 어떤 선택과목을 응시했든 지원 가능했다. 문과생도 ‘이과침공’이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줘 논란을 돌파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의중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교육부의 해법은 주요 대학으로부터 외면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부와 대교협은 지난달 26일 ‘2025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연세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17개 대학 이공계에서 확률과 통계 응시자도 지원 가능해졌다”며 문과침공 완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선택과목 제한을 없앤 대학 중 미적분·기하에 가산점을 주는 곳이 많았다.

의대들도 대부분 미적분·기하를 선택하도록 하거나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었다. 종로학원이 2025학년도 전국 39개 의대를 분석해보니 선택과목을 지정하지 않은 곳은 10곳이었고 이들 대학도 미적분·기하에 가산점을 주고 있었다. 문과생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학 성적과 가산점까지 극복하고 이공계로 진학하기 어려워 ‘기회는 주되 획득은 어려운 구조’란 평가가 나왔다. 그림의 떡이란 말이다. 주요 대학의 이공계 교수들이 수학 실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들어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대의 경우 이공계 장벽을 허물라는 교육부 요구에 호응하지 않았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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