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대의 K푸드] 메주·콩나물·장… ‘콩’의 민족 KOREA
5월은 국내외로 하반기 경제성장률 발표가 이어지는 시기다. 둔화, 하향 같은 헤드라인들이 더 익숙하다 싶은 뉴스 속에서도 눈에 번쩍 띄는 전망을 보이는 산업군도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퓨처 마켓 인사이트(Future Market Insights)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세계 식물성 대체육 버거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6%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재 51억 달러에서 10년 후 232억 달러로 4배 이상의 시장 확대를 제시했다. 건강과 웰빙, 그리고 비건(Vegan) 선호에 대한 최근 트렌드를 반증하는 결과라 하겠다. 이 대체육, 즉 고기의 단백질을 대체·활용되는 주 식물성 재료는 무엇일까. 독자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것이 맞다. ‘콩’(大豆· Bean)이다. 콩류에는 단백질이 20%이상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메주콩에는 약 40%의 단백질이 들어 있고 그 영양조성도 매우 좋다. 실제 콩과 식물은 매우 많다. 전 세계에 550속, 1만3000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36속, 92종이 알려져 있다. 이런 콩과식물 중 가장 중요한 종은 메주콩으로 불리는 대두(大豆)다.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콩의 대표 종류로 메주콩을 들고 있다.
그런데 장차 인류에게 고기를 대체한다는 이 식물, 콩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세계 1, 2위 생산량을 다투는 미국, 혹은 브라질일까. 놀랍게도 우리나라 땅이다. 최근 발표된 식품과학 관련 논문에 따르면 야생 콩의 기원은 동북아 지역으로 범위가 좀 더 넓지만, 기원전 2000년경 식용을 목적으로 대두를 재배한 최초의 지역은 한반도 북부, 남만주 일대로 판단된다고 한다. 우리의 ‘장’(醬) 문화도 인류 사상 최초로 콩을 음식으로 이용한 우리의 음식 역사에서 기원했다는 해석이다. 메주콩에는 단백질의 소화를 막는 트립신 인히비터(trypsin inhibitor)가 들어 있어 날 것으로 먹으면 심한 설사를 일으킨다. 콩을 식량으로 만드는 데는 이 독을 없애는 기술이 긴요하다. 그래서 콩을 먹는 데 있어 발효기술은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 ‘장’의 원조는 한반도 동이족으로 이후 중국으로 전파되어 ‘황장’, ‘두반장’ 등 다양하게 발전했고, 8세기경 일본에 전해진 것이 바로 ‘미소’다. 메주콩의 원산지로 추정되는 함경북도 두만강(豆滿江)에는 한자 뜻 그대로 콩 농사가 잘된 지역이라는 설화도 함께 전해진다. 그야말로 우리 선조들은 ‘콩’ 민족이었던 것이다.
된장은 물론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에 담근 뒤에 그 즙액을 달인 간장, 메주를 발효시켜 고춧가루, 소금을 섞어 만드는 고추장. 콩이 없는 우리 음식은 상상도 어려운데 콩의 재배 기원지 한국은 과연 그 위상만큼 콩을 많이 재배하고 있을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콩 자급률은 2021년 기준 23.7%로 나타난다. 예상외의 결과지만 글로벌 시장에 상대적으로 저가의 대량생산 수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북아 지방에서 시작된 콩 재배는 18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유럽으로 전래됐다. 또 미국에는 19세기 중반 이후 들어갔다. 콩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미국이 글로벌 콩의 재배 및 유통에서 중요 점유를 차지한 배경에서 또 우리나라 콩 이야기가 등장한다. 곡물로서 시장가치를 미리 살펴본 미국 농무성은 1929년 ‘동양의 식물 탐험대’, 일명 콩 원정대를 꾸려 파견한다. 이 원정대가 2년간 일본, 한국, 중국 등에서 수집한 4578점의 콩 유전자 중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콩이 3379점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74%가 우리나라 콩 종자인 셈이니 실제로 미국 콩의 원조, 아니 미국을 통해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는 콩의 원조가 한국이라고 이야기해도 틀린 말이 아닌 셈이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콩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데는 그 영양가가 높은 때문이다. ‘밭의 소고기’로 불리는 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상대적으로 다른 곡물에 비해 당질 함량이 낮아 식품으로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콩을 먹는 방법에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바로 콩나물이다. 콩나물을 영어로 번역하면 가끔 의도치 않은 오역들이 생기곤 한다. 메주콩에 햇빛을 비추지 않고 수분만 공급해서 싹과 뿌리를 성장시킨 우리식의 콩나물(Soybean sprout)과 다르게 해외에서 콩나물로 번역되고 사용되는 것들은 대부분 녹두를 이용한 숙주나물(Mung bean sprouts)이다. 재미있는 것은 콩에는 비타민C가 없는데 콩나물로 자라면 비타민C가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중국 뤼순항에 주둔한 러시아 군대는 일본군에 장기간 포위되면서 필요한 물자를 제대로 보급받지 못했다. 러시아 병사들은 영양 부족, 그 중에서도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지 못할 때 생기는 비타민C 부족 증상인 괴혈병에 시달렸다. 러시아군의 요새와 창고에 있던 많은 양의 콩을 그저 스프로 끓여 먹다 보니 단백질은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비타민을 취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반면 일본군은 콩을 발아시켜 나물로 만들어 먹어 비타민C를 공급해 사상자를 줄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콩나물은 특히 비타민C, B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기미, 주근깨 현상 등 멜라닌 색소 활동을 억제해 피부를 건강하게 만든다. 특히 콩나물 꼬리 부분에 몰려 있는 아스파라긴산과 섬유소는 숙취 해소에 매우 효과적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콩나물국은 ‘국민 해장국’으로도 불린다. 콩나물은 100g에 30㎉로 열량은 낮으면서 포만감을 주고, 섬유질로 인해 체내에 쌓인 숙변을 배출해 장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다이어트 식품이기도 하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콩나물까지 우리 콩 민족 맛의 중심 장 문화와 관련해 재미있는 데이터들도 엿볼 수 있다. 바로 장 담그는 날이다. 규합총서 등 고조리서에는 음력 5월과 10월을 장 담그기 좋은 날로 안내하고 있지만, 대중에 많이 알려진 시기는 음력 1∼3월로 시기에 따라 음력 정월장·2월장·3월장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2월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국민들은 이와 같은 시기에 맞추어 장을 담글까. 사실 집집마다 부엌에서 행해지는 이 중요한 의식이 과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현되고 있을지 알 도리는 없다. 그래도 지난 한 해 우리 국민들이 어느 시기에 콩이라는 품목을 사기위해 포털 검색창을 가장 많이 찾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 방안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포털 서비스 네이버가 제공하는 지난 1년간의 쇼핑 분야 검색창에서 ‘콩’을 검색한 결과 40~50대 여성들이 2월말과 3월초에 콩 구매를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 다수 방문했다.
만약 이 기간 장 담그기를 했다면 50여일이 지난 지금 즈음이 메주와 장물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 시즌이다. 메주는 된장이 되고, 장물은 조선간장이 된다. 된장 맛을 좋게 할 건지 간장 맛을 좋게 할 건 지에 따라 가르는 날이 달라진다. 소금물에 메주를 담근 채 오래 두면 둘수록 맛있는 맛이 간장으로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반대로는 된장 맛이 좋아지는 것이 이치다. 장 담그는 이들, 후손들의 손맛에 따라 이처럼 집집마다 풍미를 달리할 수 있으니 4000년이 넘게 전해진 선조들의 맛의 역사,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이희대 만개의레시피 전략본부장 겸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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