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부부가 처음 함께 주역 맡았어요”

장지영 2023. 5. 1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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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최원휘·소프라노 홍혜란 커플
테너 최원휘, 소프라노 홍혜란 부부가 예술의전당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부부는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에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부부 성악가가 국내 전막 오페라 무대에서 남녀 주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지훈 기자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세기의 커플’로 불리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부부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콘서트를 가졌다. 1992년 처음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전성기였던 199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라 보엠’ 공연 도중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알라냐-게오르규 부부가 가정과 커리어 모두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열린 첫 내한 콘서트는 당시 국내 클래식 공연사상 최고 티켓가격 30만원을 기록했지만 오페라 애호가들에겐 놓칠 수 없는 무대였다. 예술의전당 옆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2학년이던 테너 최원휘-소프라노 홍혜란 커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 신분이라 돈이 없었던 두 사람은 가장 저렴한 합창석에서 공연을 보며 알라냐-게오르규 부부처럼 언젠가 자신들도 예술의전당 무대에 꼭 함께 서자고 굳게 다짐했다.

이후 2006년 결혼한 최원휘-홍혜란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성악가가 되어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에 함께 서고 있다. 오는 21일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인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19~21일 3회 공연)의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국내에서 성악가 부부가 콘서트에 동반 출연한 적은 종종 있지만, 전막 오페라의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습이 한창인 두 사람을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한예종 동기로 만나 서로의 동반자로

“국내에 성악가 부부들이 꽤 많이 있는데요. 오페라의 남녀 주역을 함께 하려면 우선 테너와 소프라노 커플로 범위가 좁혀지는 데다 부부가 동시에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저희 부부가 국내 전막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함께 출연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최원휘)

최원휘(43)와 홍혜란(42)은 2001년 한예종 합격 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나 그해 캠퍼스 커플이 됐다. 그리고 졸업 직후 결혼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줄리아드 음대, 남편은 매네스 음대에 각각 진학했다. 졸업 이후 프로 성악가가 된 뒤 부부는 모두 MET에 데뷔하며 오랜 꿈을 이뤘다. 한국 출신 성악가 부부가 해외 무대에서 함께 정상급 성악가로 활동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저희는 성공한 뒤 만난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를 때 만나서 함께 꿈을 꿨어요. 가족이라는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에 각자 꿈을 꾸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생과 음악의 동반자로서 서로의 성장을 위해 격려와 지적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면서 20여 년을 함께 했습니다.”(홍혜란)

아내가 먼저 주목… 남편도 뒤 이어

프로 무대에서 먼저 주목받은 것은 아내였다. 홍혜란은 2011년 5월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 그리고 작은 역이지만 2011-2012시즌 MET의 ‘지크프리트’와 ‘맥베스’로 데뷔한 이후 시즌을 거듭하며 점차 비중 있는 배역을 맡기 시작했다. 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미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브라질 등에서 콘서트 무대를 가지는가 하면 2013년엔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미국 순회연주 독창자로 초청됐다. 2014년부터 미국 내 여러 오페라의 주역 및 페스티벌의 독창자로 주목받은 홍혜란은 모교인 한예종에서 2016~2018년 객원교수를 거쳐 2019년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목표를 향해 꾸준히 매진하는 아내와 달리 성악 외에 작곡과 지휘에도 흥미가 있던 남편 최원휘는 뒤늦게 성악가로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2015~2017년 독일 에르푸르트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등 최원휘는 최근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오페라 무대의 주역으로 캐스팅되고 있다. 특히 2020년 2월 MET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남자 주인공인 알프레도 역으로 데뷔했다. 원래 캐스팅됐던 성악가의 갑작스런 컨디션 악화로 2회 대타 출연했지만 2007년 김우경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알프레도로서 호평을 받기에 충분했다.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 이후 한동안 아내의 수입에 의존할 때가 있었죠. 특히 아내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아내에게 오는 캐스팅 전화를 제가 받아서 전달해야 했습니다. 아내의 성공이 기쁘면서도 내가 뒤처졌다는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즈음 아내가 제게 연출이나 지휘에 정말 관심 있으면 뒷바라지할 테니 대학원을 다시 다니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본 끝에 성악가의 길을 다잡았죠. 그래서 아내의 지원으로 실력있는 보컬 코치에게 꾸준히 레슨을 받았는데, 이후 다양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어요. 제가 지금까지 노래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이에요.”(최원휘)

“저는 대학 시절 남편의 올곧은 태도에 끌려서 좋아했어요. 그래서인지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남편은 언젠가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남편이 성악가로서 다양한 무대를 거쳐 2020년 MET에 주역으로 섰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당시 남편이 대기실에 켜놓은 휴대전화로 무대 위 남편의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MET를 비롯해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남편이 좀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아쉬워요.”(홍혜란)

10년 전부터 꾸준히 함께 노래
최원휘·홍혜란 부부가 지난 2021년 발매한 첫 듀오 앨범 ‘더 프로미스(The Promise)’ 커버 사진. 세계적으로 널리 불리는 찬송가와 최원휘의 자작곡을 비롯한 12곡이 수록됐다. 스톰프뮤직 제공

처음 사귈 때부터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두 사람의 꿈은 10년 전 처음 이루어진 이후 매년 횟수를 더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4년 미국 버지니아 오페라단의 ‘루치아’에 남녀 주역으로 처음 출연한 이후 2018년 같은 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와 크로아티아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을 함께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2018년 네이버 V살롱 갈라 콘서트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친 이후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듀오 무대를 가지고 있다. 2021년엔 찬송가로 채운 첫 듀오 앨범 ‘더 프로미스(The Promise)’를 발매하기도 했다. 최원휘는 “저희 부부의 이름을 걸고 듀오 콘서트를 하는 것은 팬데믹 기간이라 제가 국내에 오래 머울기도 했지만 정통 클래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고 싶어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내 오페라 무대는 두 사람 모두 많지 않아서 홍혜란은 서울시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2016년)과 ‘리골레토’(2022년), 최원휘는 국립오페라단의 ‘라 보엠’(2020년)과 서울시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각각 2편에 출연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 서로 세 번째 국내 오페라 무대인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 부부가 오페라의 남녀 주인공으로 함께 출연하면 어떤 기분일까. 홍혜란은 “부부 성악가의 장점은 호흡이 잘 맞고 감정 표현과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라면서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배역에 더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딸이 태어나는 등 두 사람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가족과 음악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두 사람의 음악 인생에도 새로운 막이 펼쳐지고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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