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 공 운명 어떻게 되나[정현권의 감성골프]
인터넷에 두 검색어를 연결해 입력하면 해마다 관련 뉴스가 뜬다. 야밤에 잠수복으로 잠입해 연못(워터 해저드)에 빠진 골프공(로스트볼)을 건져내 팔아 넘긴 범인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이다.
올해는 서귀포에서 어김없이 발생했다. 심야에 골프장 연못에 들어가 1년 4개월간 골프공 15만개를 훔친 일당이 5월 초 덜미를 잡혔다.
특수절도로 입건된 이들은 60대로 최근까지 제주 골프장 20곳을 돌며 사건 행각을 벌였다. 일당은 잠수복과 가슴 장화를 착용하고 연못에 서 긴 집게 모양 회수기로 바닥에 있는 공을 하나씩 건져냈다.
수거한 골프공을 전문 매입꾼에게 개당 200원으로 넘겨 그동안 3000만원 이익을 챙겼다. 흠집과 코팅 상태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상급품은 10개에 1만원으로 다시 팔려 나갔다. 로스트 볼은 연습용이나 초보자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공을 수거한 일당은 현행범, 판매한 사람들은 장물취득 혐의로 입건됐다.
“계란 한 판 날렸다.” “짜장면 한 그릇 날아가버렸네.”
필드에서 공을 잃을 때마다 나오는 탄식이다. 골프 도중 꼭 공 한두 개를 잃어버린다. 갓 꺼낸 타이틀리스트공이나 연두색 형광 컬러 볼이 숲과 연못에 들어가면 가슴이 쓰리다.
로스트 볼은 골프 도중 3분 이내에 플레이어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 공으로 규정된다. 2019년 바뀐 골프 규정에 따라 5분에서 3분 이내로 단축돼 로스트 볼 개수가 더 늘어났다.
이 메커니즘을 알려면 로스트 볼 법적 소유권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법상 로스트 볼은 소유주가 없는 공이다. 골퍼가 분실된 공을 찾으려고 아주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거나 골프장 측에 별도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소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
로스트 볼은 먼저 선점한 사람이 소유한다. 민법에서 규정하는 무주물 선점으로 말하자면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이래서 골프 도중 로스트 볼을 발견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 가져가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 물론 페어웨이에 떨어진 공은 캐디에게 물어보고 취득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
대개 골프장은 1년에 한 두번씩 로스트 볼을 수거해 짭짤한 수입원으로 잡는다. 골프장은 대개 겨울철 휴장 기간에 해저드 물을 빼내 코스를 관리한다. 이때 공을 자체 수거해 개당 250원 정도로 전문 매입 업체에 넘긴다.
여주 소재 골프장 관계자에 따르면 로스트 볼 수익금이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한다. 보통 골프장 운영비로 사용하지만 사회단체에 기부도 한다.
18홀 골프장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로스트 볼 6000~8000개가 수거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햇빛과 물속에 오래 방치됐다면 세척과 페인팅을 통해 새 공으로 탄생한다.
벗겨지거나 까진 표면을 페인팅하고 코팅 처리한다. 이렇게 재탄생한 공을 리피니시 볼(refinish ball∙재생 공)’이라고 한다. 리피니시 볼은 공정에 들어가기 이전 상태에 따라 몇 등급으로 나뉜다.
흠집과 펜 마킹이 많고 색깔이 바랠수록 그레이드가 내려간다. 등급은 A+부터 C0까지 다양하다. 리피니시 볼 판매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판매가는 ▲개당 타이틀리스트 1300~1500원 ▲커클랜드 800~1000원 ▲볼빅 990~1100원 ▲세인트나인 790~900원 선이다.
주인을 떠나 새로 태어난 공은 보통 초보 골퍼에게 간다. 라운드 도중 분실 가능성이 크기에 비싼 새 공 대신 저렴한 리피니시 볼을 주머니 가득 넣고 사용하면 경제적이다.
초보는 리피니시 볼의 최대 단점인 비거리나 스핀 저하 등 미세한 기능 차이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수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물을 오래 머금은 공은 숲에서 버틴 공보다 탄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성능도 저하된다.
타이틀리스트 브랜드를 내놓는 아쿠쉬네트를 보유한 휠라코리아는 아예 미국의 중고 골프공 쇼핑몰인 로스트골프볼닷컴을 인수했다. 이 쇼핑몰을 통해 한 해 미국 전역 골프장에서 중고 골프공 5000여만개 이상 수거돼 리피니시 볼로 유통된다.
이마트 온라인몰에서도 골프공 부문 매출 1위 세션은 로스트 볼이다. 현재 우리나라 골프공 시장 규모는 연간 1300억원대로 이 가운데 로스트 볼 점유율은 25% 정도로 추정된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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