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소환조사, 16명 구속... 대통령 한마디에 벌어진 일
필자는 약 2년간 건설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했습니다. 당시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일이 끊긴 이후, 현재는 건설현장을 떠나 배달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난 2일 세상을 떠난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을 추모하며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길한샘 기자]
▲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고 양회동 강원지부 지대장의 빈소가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가운데 4일 오후 건설노조원들이 조문하고 있다. |
ⓒ 권우성 |
건설노동자 '양회동'
장례는 유가족의 동의 아래에 노동조합장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고인의 영정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했고, 그들 중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건설노조 동료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하루만 일했고 1일 치 급여로 4인 가족이 먹고 살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마련했을 때는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합니다.
고인은 자신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헌신하는 건설노조의 간부였습니다. 이는 건설노조 동료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유서에는 "함께 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동지들 옆에 있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찰의 유도수사
경찰은 올해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특진을 내걸었습니다. 특진의 규모는 단일 수사 부문에서 가장 컸습니다. 특별단속은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올해 6월 25일까지 진행합니다. 지난 2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이라는 신조어까지 사용하며 경찰의 수사 강도를 높였습니다.
특별단속은 주로 건설노조를 향했습니다. 경찰은 건설노조 전국 13개 지부와 일부 조합원 등에 압수수색을 단행했습니다. 현재까지 1000명 가까이 소환조사를 했고, 16명이 구속된 상태입니다. 명목은 건설사에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자 활동비를 강요했다는 점입니다(관련 기사 : "사람 죽이고도 200일 인간사냥 계속" 건설노조, 경찰청장 파면 요구).
"악감정이 있으면 아무리 겁을 먹어도 처벌불원서를 안 썼겠죠. 노조랑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 나쁜 감정은 없었습니다. 특히 양회동씨는 현장에서 일이 원만하게 돌아가게끔 회사와 조합원 사이에서 조율을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 <한겨레>, 양회동 처벌불원서 낸 현장소장 "노사 다리 역할 한 사람", 2023-05-10 보도 인용.
피해 건설사의 주장이 엇갈리는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유도 수사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의구심이 증폭됩니다. 유서에는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고 적혀있었습니다.
▲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건설노조 탄압중단, 강압수사 책임자 처벌, 윤석열 정권 퇴진 - 양회동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가 민주노총 건설노조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 권우성 |
건설업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에 따라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도급사(전문건설업체) 아래에 '불법 재하도급'인 도급팀이 시공을 도맡고 있습니다.
고인은 건설현장에서 15년 동안 철근공으로 살아왔습니다. 여느 건설노동자처럼 도급팀에서 일했을 겁니다. 해고가 두려워 팀장의 무리한 요구에 섣불리 따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건설노조'를 만났을 겁니다.
그는 2019년부터 건설노조 활동을 하면서 현장의 부조리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건설노조를 자랑스러워했으며 건설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간부를 맡아 성실히 활동했다고 합니다.
건설노동자는 특정 회사에 상시고용되어 있지 않고, 실업과 취업을 빈번하게 겪습니다. 그래서 고용 보장은 건설노동자의 생계에 중요한 이슈입니다. 현장이 개설되면 건설노조가 하도급사에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조합원 고용'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건설노조가 조합원 고용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설노조는 직업안정법 제33조에 따라 조합원의 일자리를 찾는 것이며, 사용자협의회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사측에게 차별 없이 조합원을 고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인 집회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건설노조의 노조 전임자 활동비 요구도 공갈이 아닙니다. 건설노조는 노동조합법 제24조에 따라 전임자 활동비를 요구하는 것이며, 단체협약에 따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시고용되어 있지 않은 건설노동자의 특성상 전임자 활동비의 형태가 상시고용 노동자와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활동은 정당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고인의 명예회복'이다
2021년에 제가 처음으로 건설노조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고인과 같은 선배들의 앞선 노고 덕분에 제가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고인의 죽음이 너무 슬펐습니다.
저는 지난 3월부로 실업자가 됐습니다. 두 달 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생계를 위해 배달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인처럼 헌신하는 간부가 자신을 제쳐두고 나를 신경 쓸 걸 알기에 한 선택이었습니다.
4개월 가까이 건설노조의 많은 조합원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현장이 건설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지금 위험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거나 현장을 떠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건설노동자는 건폭이 아닙니다. 진짜 폭력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공사기간 단축'이 만연한 현장입니다. 폭력의 주체는 이윤을 위해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공사기간 단축을 강요하는 건설사입니다. 그리고 이를 공정한 잣대로 수사하지 않는 정부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고인의 명예회복'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유가족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설노조를 향한 표적수사를 멈추고 노조활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건설현장의 부조리를 바꾸고자 했던 고인의 유지를 이어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공사기간 단축이라는 관행을 끊어야 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게 처리수?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이 정도로 위험하다
- 북한이 싫어서 목숨걸고 월남?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 "문 정부 임대차3법, 전세 사기 원인" 국힘 주장 '거짓'
- 심성보 대통령기록관장 결국 해임... 법적 투쟁 예고
- 밀가루도 구두약도 맥주가 되는 시대, 소비자들의 선택은?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기자회견
- 8개월간 5번 방통위 압수수색..."사적 대화도 조심스러워"
- 엄마와 연휴 보내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쏟아집니다
- 한국지엠 창원공장, 식중독 의심 환자 50여명 발생
- 김남국, 코인 무상지급 받았다?... 민주당 "확인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