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사진공모전 입상자는 왜 수상을 거부했을까?

허영한 2023. 5.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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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다시 '사진은 사실적인가'에 대해

독일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 보리스 엘다크센(Boris Eldagsen)은 2023년 소니 사진상(SONY Photo Award) 공모전에 AI 기술을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를 출품해 크리에이티브(Creative)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THE ELECTRICIAN(전기공)'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사진의 초기 기술로 찍고 인화한(빈티지) 것처럼 보이는 두 여인의 초상 ‘이미지’다. ‘유사기억증 : 가짜 추억 (PSEUDOMNESIA : Fake Memories)’이라는 프로젝트 작품 중 하나로, 1940년대의 시각적 언어를 사용해 ‘가짜 기억’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존재한 적 없는 가상 인물의 얼굴이다. ‘가짜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묘사하는 것은 AI가 잘하는 일이다. 이것이 오랫동안 사진의 화두에 속한 ‘기억’과 ‘가짜’를 만났다.

소니가 후원하고 세계 사진재단이 주관하는 사진 공모전에 입상한 'THE ELECTRICIAN' ⓒBoris Eldagsen

수상자 발표 후 그는 “이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수상을 거절한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주최 측이 AI로 만들어진 작품이라서 입상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이 이미지를 사진이라고 속여서 상을 받고자 했던 의도는 없었고, 사진과 신기술(AI)에 대해 토론하고 AI 생성 이미지 부문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최 측과의 공개토론을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주최 측이 별 반응이 없어서) 수상을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입상은 취소됐고 한동안 무반응이던 주최 측은 지난달 다소 늦게 입장을 발표했다.

“최첨단 디지털 관행에 이르기까지 이미지 제작에 대한 다양한 실험적 접근 방식을 환영한다. 이와 함께, 보리스와의 서신 및 그의 확인에 따라, 우리는 그가 응모한 것이 이 범주의 기준을 충족한다고 봤고, 우리는 그의 참여를 지지했다. AI 관행의 요소는 이미지 제작의 예술적 맥락과 관련이 있지만, 이 상은 항상 사진 매체로 작업하는 사진작가와 예술가의 우수성과 기술을 옹호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AI 작업이라도 이 부문에서는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몹시 어렵게 했다. 수상을 거부한 것은 작가라는 말도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수상을 거부한 진의보다는 이미지 생성에 사용했다는 1940년대의 시각적 언어는 무엇일지가 더 궁금하다. 기계에 내리는 작업명령에 어떤 단어를 구사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현저히 달라진다. 인터넷에는 AI 작업의 명령어인 프롬프트를 사고파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말로만 사진 한다’고 했던 조롱이 현실이 됐다. 그의 작품은 사실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예술가 내면의 어떤 황폐나 우울마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낸다는 것, 그것이 인간 감정의 표현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기계가 쉽게 흉내 낼 만큼 얄팍한가 하는 허탈함도 함께다.

수개월 앞서 영국의 마리오 카발리(Mario Cavalli)란 예술가가 AI를 이용해 만든 빅토리아풍 옷차림의 사람들의 이미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AI의 결과물은 그림과 사진과 글과 영상 등 매체의 막대한 자료들을 언어화하고 연결 지어 학습하고 조합한 결과다.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후반,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을 통치하던 시대)의 이미지는 언어화되고 기계에게 이렇게 학습된 모양이다. 카발리는 이 이미지들을 생성하는 데 포토샵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미드저니(Midjourney)' 만을 이용해 텍스트로 된 프롬프트 명령어만 입력했다고 했다. '선명한 초점', '10mm 렌즈', '습판 콜로디온 사진' 같은 단어를 썼다. 마침 지난해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 실존 인물들의 사진이 들어간 장부가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이 있었다. 실제 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언어와 실제의 관계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AI로 만들어진 빅토리아풍 옷차림의 사람들 모습 ⓒMario Cavalli
빅토리아 시대의 실존 인물들. 영국에서 지난해 경매에 출품된 경찰 범죄 기록부에 붙어 있던 사진들이다. ⓒHansons Auctioneer 사진출처=Petapixel.com

AI로 만든 사진처럼 보이는 이미지로 공모전에 입상하고 수상을 거부한 것이 예술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쉽게 말할 수 없다. 다만 홈페이지 등을 통해 그가 드러낸 일관된 입장은 AI로 만든 ’프롬프토그래피(promptography)‘는 사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공모전에 출품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술은 다른 사람들이 해 보지 않은 일을 하면서 세상의 사고에 새 지평을 열기도 하고, 논쟁을 유발하는 것 자체가 본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떻게 논쟁이 진행될지, 예술과 현실은 어떻게 달라질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드디어,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라는 신뢰를 잃은 것일까? 오래전부터 그런 논란은 있어왔다. 디지털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이제 사진의 사실성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이미지 가공 소프트웨어로 거짓을 조작할 수 있고, 사실을 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사진의 사실성에 대한 신뢰는 역할에 따라 구분되었을 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뢰는 사진이라는 매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그 사진을 다루는 사진가들의 작업 방식과 깊이 관계있다. 사실이 필요한 곳에는 사실의 언어가, 예술이나 판타지처럼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곳에는 가공의 언어가 쓰인다. 관건은 사고의 디테일이고 정형화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맥락이다. 굳이 나누자면 사실 보도나 증명을 위한 용도인가, 창의적 시각 표현인가 하는 문제 같은 것이다. 혼란은 계속되고 논란은 끊이지 않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픽션과 다큐가 각자의 역할로 존재하듯 역할이 세분될 뿐, 사진은 여전히 사실을 말한다는 맥락으로 존재하는 자리가 있음을….

편집자주 - 즉각적(insta~)이지 않은(un~) 사진(gram)적 이야기, 사진의 앞뒤와 세상의 관계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씁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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