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라고? 다 해봤다" 건설노동자들이 공무원에게 소리친 이유
[김성욱, 남소연 기자]
▲ 김상문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건설산업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 토론회 좌장을 맡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국장, 임동희 고용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장, 한상준 대한건설협회 기술안전실장, 김영현 대한전문건설협회 건설정책본부장. |
ⓒ 남소연 |
국토교통부 공무원의 한마디에 토론회장에 참석한 건설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신고 해보세요'가 아니라 우리도 수도 없이 신고해봤거든요?", "신고해봤자 제대로 감독한 적 한번 없으면서!", "하나도 현실을 모른다", "사람 죽었는데 그게 할 말이냐"고 소리치며 강하게 항의했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산업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 2일 정부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양회동(49)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사망한 후 열린 첫 국회 토론회였다. '열사정신 계승'이라고 적힌 몸자보를 두르고 토론회에 자리한 건설노동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들은 체 안 하다 사람이 죽으니 겨우 관심을 가진다"며 울분을 토했다.
건설노동자들은 한자리에 모인 정부와 사용자 측을 향해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면 양회동 열사는 왜 죽었나"라고 물었다. "현재 발주자가 내려 보내는 단가로는 건설사들도 기업 운영이 힘들다"는 한상준 대한건설협회 기술안전실장과 김영현 대한전문건설협회 건설정책본부장의 발언에 한 건설노동자는 "가증스럽다. 건설사들은 수십억, 수백억씩 돈 벌어가면서 노동자 임금만 후려친다"고 반발했다.
"산업분야 중 내국인 인력이 부족해 외국인 인력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는 임동희 고용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장의 발언에 한 건설노동자는 "지금 건설현장에 내국인 인력이 부족한가"라며 "노조 조합원이라고 고용 안 하고, 더 비싸다고 고용 안 해서 내국인들은 현재 다 실업자 상태"라고 반박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건설노동자들의 고용을 70년째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자로 방치한 것은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원청인 대한건설협회, 그리고 대한전문건설협회, 정부 쪽의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여러분들"이라며 "정부는 양회동 열사가 죽고도 오늘 아침 또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언제까지 우리를 죽일 거냐"라고 했다.
▲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항의하는 건설노동자들 12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산업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건설노동자들이 김상문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 임동희 고용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장에게 "건설현장의 현실을 모른다"라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김성욱 ⓒ 김성욱 |
발제를 맡은 전문가들은 건설노동자들에게 ▲적정임금제와 ▲실질적인 교섭권이 보장돼야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적정임금제란 건설노동자들의 임금 하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것으로, 역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난무했던 화물운송시장에서 효과가 입증된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와 비슷한 제도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개별 기업단위를 넘어서는 건설산업 전반의 노사 교섭을 정착해 상호 지속가능한 임금 수준을 타협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심규범 박사는 "국내 건설산업은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끝도 없는 단가 삭감 경쟁이 벌어진다"라며 "미국의 'Prevailing Wage(적정 임금)' 제도나 독일의 건설업 최저임금제처럼 우리도 적정임금제도를 통해 임금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박사는 또 "독일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발주금액과 낙찰금액이 거의 같지만, 우리의 경우 발주금액이 100이면 낙찰금액은 87밖에 안 된다"라며 "강자인 발주처에 '돈 더 달라'는 소리는 못하고, 중간에 사라진 돈을 약자들로부터 보전 받기 위해 건설노동자들 임금을 후려치려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박사는 "적정임금제도가 마련되면 현재 불투명한 건설 비용, 작업방식들이 보다 투명해질 것"이라고 했다.
▲ 김상문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건설산업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 토론회 좌장을 맡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상문 국토부 국장, 임동희 고용노동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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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교수는 "결국 건설노동자들도 노조할 권리가 보장돼야 새로운 길이 트인다"라며 "현재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데, 이것이 통과되느냐가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이날 토론 좌장을 맡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입장이 다른 각자의 이해와 요구를 조정하기 위해 제대로 된 교섭권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라며 "국회에서도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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