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180명, 평균 연령 70세... 배움에는 끝이 없지
[이완우 기자]
▲ 학교 강당 시 낭송 행사 |
ⓒ 이완우 |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70세이다. 이 학교는 만학도의 배움터인 평생교육시설로 학력인정 학교이다. 4년제 초등학교, 2년제 중학교와 2년제 고등학교가 자매처럼 함께 있으며 전체 8학급으로 재학생이 180여 명인 튼실한 학교다.
▲ 인화초중고등학교 전경 |
ⓒ 이완우 |
수십 년의 세월을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듯 가족에 헌신하며 살아온 학생들이다. 이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듯 돌아와 머릿결에 서리가 내린 학생이 되었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몸의 기력도 젊은 시절 같지 않지만, 지금 학교 다니는 게 고맙고 행복하다.
이 학교는 전북 동부 산악권인 임실군, 남원시, 순창군과 장수군에서 많이 다닌다. 이 학교가 위치한 오수면은 조선 시대부터 호남 좌도에서 으뜸인 오수역참이 있던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 학교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역사와 문화가 튼실하게 뿌리내린 오수 분지의 길목에 터전을 잡았다. 이 학교는 이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나이테로 자란 커다란 나무와 같다.
▲ 다양한 길의 교량 풍경 |
ⓒ 이완우 |
이 구홧들에서 냇가 쪽에는 구한말에 나라를 구하러 신명을 바친 전 해산 의병장의 생가 터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홍길동은 허균의 고전 소설 속 인물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 때에 기록을 보면 실존 인물 홍길동이 있었다. 활빈당 활동을 전개한 홍길동이 조정에서 체포하려 하자, 전남 장성에서 이곳까지 왔다가 지리산 방향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조선시대 남원부 둔덕방의 삼계강사는 앞서가는 학문과 배움의 요람이었다. 이 삼계강사가 오수보통학교의 바탕이 되었었다. 오수보통학교의 학생들이 기미년(1919년) 3월에 보통학교의 어린 학생들로서는 전국 최초로 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쳤었다. 이 학교는 가을 물처럼 정신이 반듯한 이곳에 우뚝하다.
이 지역 땅 이름 '오수'는 주인을 구한 오수개 설화로 천년 넘게 의로움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오수개 설화가 이 지역에 전승되는 것도 이 지역의 반듯한 땅 기운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노봉마을, 둔덕방, 매안방 등 이곳 오수 분지의 역사와 문화를 모델로 한 작품이 최명희의 '혼불'이다. 최명희의 '혼불'은 남원과 임실이 만나는 지역 이곳 오수 분지의 정체성으로 꽃 피었다.
▲ 교실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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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화단에는 여름이면 학생들이 심어놓은 봉숭아꽃이 피어난다. 고향 집 장독대 옆에 핀 봉숭아꽃 같은 정서가 이 학교답다. 이 학교에 80세에 가까운 선생님은 봉숭아꽃이 피면 꽃밭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다. 그는 전주에서 오수역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오수역에서 학교까지 냇가 제방의 농로 3km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온다. 천천히 구르는 자전거 바퀴는 고향 같은 추억이며 고추잠자리 날갯짓처럼 평화로운 이 학교의 정체성이다.
이날 학생들은 오랜만에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시 낭송 행사를 경청하였다. 어느 시인의 시 낭송을 들으며 학생들은 하얀 교복 입고 학교에 가는 친구를 보며 골목에 숨어서 울먹이던 자신을 회상하였다. 학생들은 하얀 뿌리 깊게 땅에 내리고 겨울을 이겨낸 푸른 냉이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 학교 강당 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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