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일본인 변호사, 위안부 피해자 곁에서 한 호소
[김종훈 기자]
▲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 증인 출석을 앞두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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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선 3시간 가까이 일본어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일본인 변호사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씨.
야마모토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변론에서 증인으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내도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대한민국)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법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권면제를 제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법규 위반으로 인해 초래된 심각한 인권침해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일본 재판소와 미국 재판소 또 국제재판소 중재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국내(대한민국) 재판소에 호소를 하며 소송을 제기한 거다."
앞서 2021년 4월 한국 1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논리의 '주권면제'를 받아들여 소송을 각하했다.
주권면제는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 소송 당사자로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재판정에서 야마모토 변호사가 '2심 법원이 위안부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 행위에는 주권면제를 예외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 증인 출석을 앞두고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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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생인 야마모토 변호사는 1992년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소송, 일명 '관부(關釜)재판'에서 피해자 측을 대리해 시모노세키에 위치한 일본 1심 재판부로부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관부(關釜)'는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와 대한민국의 부산(釜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당시 일본 1심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기한 다섯 가지 청구 중 '입법 부작위에 의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 모집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배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1심 선고는 2001년 히로시마 고등재판소(2심)에서 뒤집혔고, 2003년 도쿄 최고재판소(3심)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이 내용은 2018년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의 줄기가 됐다.
11일 재판에서 야마모토 변호사는 시종일관 '불법행위를 주권면제에서 예외로 제외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주권면제를 인정한 '페리니 사건'을 언급하며 "판결이 나온 뒤 10년 이상 지났고 그동안 상당한 변화도 있었다. 당시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라고 호소했다.
"일본도 아마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절대적인 국가면제(주권면제) 범위를 인정해 온 나라다. 1927년 당시 판결이 절대적 국가면제를 천명했는데 8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인권을 위해 외국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는 이미 다수 국가에서 채택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사법재판소와 일본 법원은 상급심과 하급심 같은 관계도 아니다. 제도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를 꼭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
'페리니 판결'은 주권면제를 적용해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에 대한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중 불법행위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에 붙잡혀 강제노역에 끌려간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가 1998년 자국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은 "국가면제에 해당한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인권보호는 불가침'이라며 원심을 파기했다. 그러자 독일은 2008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에 이를 제소했고, 2012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는 다수 의견으로 독일의 국가면제권을 인정했다. 이에 이탈리아 의회는 국제사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을 존중해 국내 법원에 국가면제 적용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자 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기됐고,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014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 출석을 앞두고 증인으로 출석하는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와 악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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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도 이날 법정에서 "14살에 일본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해 지금까지 몸이 많이 아프고 수술도 받았다"며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30년 넘게 외쳤는데, 일본은 아무 대책도 안 내놓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서 '마음이 아팠다'는 거짓말만 한다. 너무 억울하고 서럽다"고 재판부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재판 말미 이 할머니는 재차 "재판장님" 하고 부르며 "(피해자들이) 오늘내일 하고 있다.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재판이 끝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할머니의 당부에 재판부는 "잘 알겠다"고 답한 뒤, 다음 변론기일에서 주권면제 원칙 등에 대한 영국 법률가 등의 의견을 더 들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 기일은 7월 20일로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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