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연휴 보내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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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우려와 달리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로 나온 것을 좋아하셨다.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 기사 '공짜가 더 많은 가게 우리엄마가 주인입니다'(https://omn.kr/22wco)를 '본문 듣기' 기능을 이용해서 들려드렸다.
편한 자세로 기사를 듣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어떤 느낌이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그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엄마는 물건을 공짜로 주는 자신의 마음을 늦게나마 알아줘 고맙다며 '장하다 내 딸'이라고 했다.
내 마음을 알린 엄마의 이야기를 엄마와 함께 듣는 그 시간. 효도가 따로 없다 하셨다. 서로의 마음을 치유한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이었다. 오빠 역시 "엄마가 뉴스에 나왔어. 평생 기록으로 남는 거야. 언제든 볼 수 있게"라며 놀라워했다.
▲ 자모의 사용을 엄마에게 미리 알려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 픽사베이 |
기념일, 밥만 먹고 가는 그 시간만큼 마음이 보이는 것인데 그저 밥 한번 먹은 걸로 내 할 일 다 했다며 스스로 위안하는 자식들. 홀로 남겨진 엄마는 그들의 뒤만 바라본다. 뒤통수에 눈이 없는 사람의 뒤를 바라보는 일만큼 어렵고 힘든 것도 없다.
바쁜 다른 가족과 달리 나만 남아 밀린 우편물을 확인하고 엄마에게 휴대폰 문자 사용법을 알려줬다. 카톡도 설치했다. 문자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자판에 한글 자모음을 설명했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야 글이 된다고 하자 엄마는 "아, 이걸 알았어야 했구나"라며 깨우친 듯했다. 그 순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나 또한 기본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필요한 낱말만 그때그때 알려드리는 방식으로 한글을 알게 했으니, 불효가 막심하다.
엄마가 한글을 궁금해했을 때 자모음을 알려줄 생각조차 못 했다. 가장 기초인데. 소름이 돋았다. 엄마가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한 몫했음을. '진작 알려주지'라고 말하면 어쩌지 하는데, 엄마는 끝까지 그 말씀을 안 하셨다.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 엄마지만, 나 스스로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늙어서 포기하겠다더니 자모음을 수첩에 적어달라 하셨다. '늦었다'고 말해버린 나를 자꾸 부끄럽게 만든다.
엄마는 귀중품을 꺼내 놓으셨다. 내가 드렸던 액세서리와 금이었다. 내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신이 나서 반지 열 개를 손가락마다 끼고 양손목에 팔찌를 주렁주렁 달았다. 엄마에게 보이며 예쁘지 자랑했다. 엄마는 더 이상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셨다.
금에 눈이 멀었을까. 보석을 돌려주는 엄마의 심정은 보지 못했다. 잊어버릴까 가방 속에 꼭꼭 넣어서 싸 들고 왔다. 어버이날 어버이는 안 보이고 이기적인 자식만 보였다. 손수 만들던 음식도 더 이상 하지 못해 사 와도 된다기에 그저 좋아했다. 이면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읽지 못한 채. 늙고 힘들어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음에, 가슴 아픈 일임을. 살아있음을 천천히 내려놓는 작업이었음을.
너무 늦기 전에 해야할 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좀 늦다. 늘 그렇듯이. 집에 오자마자 잠깐 선잠을 잤는데 무서운 꿈을 꿨다. 엄마가 사라지는 꿈. 기분이 섬뜩했다. 갑자기 울음이 쏟아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쳤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았건만, 자신의 마음 하나 알아주는 자식이 없는 엄마의 삶이 가여웠다. 가슴이 아렸다. 엄마에게 함부로 한 시간이 겹겹이 엉켰다. 보석 받고 좋아한 철없는 행동. 뭘 하기엔 늦었다고 포기하게 한 것들. 오랜 세월 보여준 그 마음을 외면한 것들. 그 시간만을 남기고 사라질 엄마를 떠올리자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
감정에 만취해 전화를 걸고 말았다. 견딜 수가 없어서.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참았던 눈물을 다시 쏟았다.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속마음도 마구 쏟아졌다. "엄마 안 죽어. 그러지 마. 울지 마. 왜 울어. 엄마 안 죽어"라며 엄마는 계속 나를 다독거렸다.
'엄마 안 죽어' 하는데 그 말이 더 슬프게 들렸다. 생전 처음 겪는 감정들이 마구 밀려왔다. 그 감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없다. 그러나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만은 선명하게 남아 감정을 견고히 만들었다.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효도였다.
효의 기준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은 제일 강력한 수단인 동시에 제일 쉬운 방법이다. 깊이를 가늠하는 오해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꽃보다 돈을 외치는 사람들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마음이 중요하다 하면서 마음을 보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우리는 너무 모른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 어버이의 마음을.
아니라고 해도 꽃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그 마음에서 '효'가 피어날지. 마음의 기본은 돈이 아니다. 마음마저 돈으로 계산된다면 그것처럼 슬픈 일도 없다. '효'라는 기본을 놓치면 가슴치고 후회할지 모른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야 글자가 완성되듯, 아들과 엄마가 함께해야 효가 완성되는 것임을.
수욕정이풍부대, 자욕양이친부대. 한시외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나 바람이 가만두지 않으며,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효를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미루는 건 둘째 치고 기회가 주어져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걸 바라지도 않고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저 같이 있어 주는 것. 시간을 함께하는 것. 매일은 아니더라도 어느 날 만큼은 그 마음을 알아주면 좋지 않을까. 시간이 멈추기 전에, 불효자가 되어 울기 전에.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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