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편견·차별 다 제압한 최초의 女강력반장
신창원·연쇄살인범 정남규
숭례문 방화사건 등 맡아
남다른 촉과 노련함으로
9년 만에 경위 직책 올라
30년 형사 생활 끝내고
현장서 본 사람들 기록
제주 집 한켠에 서점 열어
티켓다방 아가씨들에게 그는 특별했다. 포주가 짠 빡빡한 일정에서 종일 비용을 지불하고 쉼을 선사했다. 몸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시켜 함께 먹고는 쿨쿨 잠만 잤다. 헤어질 때 당시 귀했던 휴대폰도 선물했다. 필요한 것을 물었고, 빚을 다 갚고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경청해줬다.
포주에게 ‘몸뚱이’ 취급받던 아가씨들은 그에게서 ‘사람’ 대접받는 기분을 느꼈다. 탈주범 신창원이 2년 넘게 도주 행각을 벌일 수 있던 이유다.
박미옥 형사는 신창원의 애인이었던 여성 열 명을 만나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그는 강단 있는 여성이다. 특별검거 팀에 배정돼 남자 형사들로부터 받은 "웬 냄비(여성을 하대하는 비속어)"라는 빈정거림을 "주전자는 가만히 있으라"는 응수로 튕겨냈다. 탈주범의 전 애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자료는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남녀가 동거하지만 결혼사진이나 함께 찍은 사진이 없고, 가구와 살림 대신 운동기구와 반려견만 있다면 신고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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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은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다. 스물세 살이던 1991년 서울지방경찰청 최초의 여자형사기동대에 선발되면서 형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드물던 여자형사라는 신분을 활용해 혁혁한 공을 세웠고, 수준급 무도 실력으로 괄목할 만한 검거 실적을 쌓았다. 탈옥수 신창원 사건,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 한강 변 여중생 살인사건, 숭례문 방화사건 화재감식 등이다. 통상 순경에서 20년이 걸리는 경위 직책을 9년 만에 꿰찼다.
행로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0년 처음으로 여성 강력반장이 됐고, 2002년 양천경찰서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으로 임명됐다. 2007년부터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프로파일링)팀장과 화재감식팀장을 겸임했다. 숭례문 방화사건 현장의 화재감식 등을 총괄 지휘해 크게 주목받았다. 2010년에는 마포경찰서 강력계장, 2011년에는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을 역임했다.
형사로서 박미옥은 노련했다. 용의주도한 소매치기도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용의자 어깨에 기대고 서서 견갑골(날개 뼈)이 움직이는 찰나를 포착해 순식간에 제압했다. 도둑맞은 줄도 모르던 피해자에게 무사히 지갑을 넘겨줬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형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강력사건이나 흉악범들이 회자될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하지만, 형사들이 자신의 업에 뿌듯함을 느끼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다. 뉴스에 한 줄도 나가지 못할 작은 사건일지라도 시민들이 가슴 칠 일을 막아냈을 때 보람을 느낀다."
박미옥은 촉도 남달랐다. 그는 체포된 이들을 범죄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 대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자주 나눴다. 하루는 어느 절도범과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유독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피했다. 30대 중반 남성에게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은 감성이 느껴졌다. 박미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5년 전 초등학생 성범죄 가해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 성과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솔직히 털어놓는 대화로 사건을 해결했으나 그 뒤 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못한 점을 미안해한다.
이처럼 박미옥에게 범죄자는 악인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한때는 형사의 보람을 "수갑 채우는 맛을 아십니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경력이 쌓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범죄를 쫓고 범인을 연구하는 사이 나는 모든 사건들에 결코 쉽게 단정할 수도, 단죄할 수도 없는 수많은 상황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내 개인의 감정과 잣대로 누군가를 함부로 비난하기도 미워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 마약사범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허락을 받은 날 애인이 살해된 것도 모자라 유력한 용의자로 몰렸다. 경찰 조사를 받은 그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마약에 손을 댔다. 이런 내막은 박미옥이 범인을 ‘한낱 범죄자’가 아닌 ‘아직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전후 상황을 참작해 처벌을 경감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악’으로 간주하지 말자는 목소리다. 그는 "형사의 기술과 연륜이란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디테일한 사랑"이라며 "애정 없이 범인을 잡는 일에서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형사가 아니라 사냥꾼"이라고 설명한다.
형사를 천직처럼 여기던 그는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둔 시점에 명예퇴직하고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집 한 편에 서점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는 "꿈이 일이 된 시간을 원 없이 살아봤으니, 이제는 삶이 놀이가 되는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 현장이 된 사람들보다 현장이 되기 전 사람들을 만나서 한 판 더 잘살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공간에서 박미옥이 처음 한 일은 자신을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범죄 현장에서 본 사람과 희망, 특히 후자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을 기록하며 30년간 쌓아온 내상을 씻어내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형사 박미옥 |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300쪽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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