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김이한'에서 수베로까지... 한화의 '감독 잔혹사' 계속
[이준목 기자]
▲ 인터뷰하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3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잠실야구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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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감독 잔혹사가 또다시 재현됐다. 구단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한화는 지난 5월 11일 대전 삼성전 직후 수베로 감독과 결별하고 최원호 퓨처스 감독을 구단의 제13대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최 신임감독은 지난 2020년에도 시즌 중 한용덕 전 감독이 경질되었을 때 감독대행을 맡은 적이 있으나, 3년만에 이번에는 정식 감독이 됐다. 계약 조건은 3년 총액 14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3억 원, 옵션 3억 원)이다.
이로써 지난 2021 시즌부터 3년 계약을 맺고 팀을 이끌어온 수베로 감독은 계약기간의 마지막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게 됐다. KBO리그에서 남긴 성적은 11일 삼성전까지 통산 106승 15무 198패, 승률 .349, 순위는 지난 2시즌 최하위에 이어 올해도 10개 구단 중 9위에 머물렀다.
'리빌딩 명분' 시행착오는 감독 탓?
수베로 감독은 KBO리그 역대 4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다. 수베로 감독에 앞서 KBO리그에서 활약했던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2008-2010) 트레이 힐만 전 SK 와이번스(2017-2018),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2019-2021)이 모두 미국 출신이었다면, 수베로 감독은 남미인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최초의 라틴계 KBO리그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도미니카 다음으로 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남미 최강의 야구강국이다.
수베로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까지 대부분의 야구 경력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고 모국 베네수엘라 대표팀의 사령탑을 역임하기도 했다. 프로 최상위리그의 감독직을 맡게 된 것은 한화가 처음이었다. 한화 구단은 2020년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고 '리빌딩'을 선언하면서 마이너리그에서 15년간 지도자로 활동한 수베로 감독의 영입한 이유를 '육성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수베로 감독의 부임 당시 이미 한화는 그야말로 암울한 리그 최약체 전력이었다. 국내 선수 뎁스는 국가대표급 선수는 전무했고, 한화 주전 중 다른 팀에 가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할 만한 선수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외국인 선수 농사도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베로 감독이 아니라 누가 와도 성적을 내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구단도 팬들도 수베로 감독에게 당장 이기는 야구보다는 미래를 기약하며 세대교체와 리빌딩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수베로 감독 부임 이후 지난 두 시즌을 포함하여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한화는 채은성, 이태양, 오선진 FA 3명을 잡으며 2017년 이후 처음 외부 영입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노시환-정은원 등 한화가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낙점한 영건들도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과 경험을 쌓았다는 평가였다. 이제는 슬슬 성적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한화는 올해도 일찌감치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KBO리그 스타일과는 맞지 않은 수베로 감독의 실험적인 경기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한화 구단은 올해 시범 경기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개막 이후에는 4월 승률이 지난 2시즌보다 더 하락했다. 11일까지 11승 1무 19패로 3할대 승률(.367)에 머물자 구단은 결국 수베로 감독의 경질카드를 꺼내들었다.
▲ 한화 '연패 탈출' 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한화 선수들이 승리후 자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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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성적만 놓고보면 수베로 감독은 누가봐도 경질 당할 만했다. 그러나 정작 여론은 수베로 감독보다 오히려 한화 구단에 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리빌딩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지난 2년 여간 벌어진 모든 시행착오의 책임을 오롯이 감독 개인에게만 전가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과 한국야구는 리빌딩이나 육성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 세계 각지의 유망주들이 모여서 선수 뎁스가 엄청나게 두터운 미국은, 메이저리그 밑에 마이너리그도 다양하게 세분화되며 레벨에 따라 차별화된 운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40인 로스터 중 절반 정도가 자체 육성 선수들이고, 나머지는 FA 영입, 트레이드, 룰5 드래프트로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루트가 더 다양하다. 그에 비해 KBO리그는 신인 드래프트와 외국인 선수제도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 특히 한화는 1군에서 선수도 육성하고 성적도 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수베로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3년 뿐이었다. 선수층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두터운 미국도 리빌딩에 몇 년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상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된 지는 약 15년이 넘었는데, 가뜩이나 낯선 한국야구에 적응해야하는 외국인 감독이 오랫동안 망가진 팀을 바닥부터 재건하기에는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만일 한화에서 당장 이기는 야구를 기대했다면, 평생 마이너리그에서만 활동하여 미국식 육성시스템에만 익숙한 수베로 감독을 선택해서는 안됐다. 우려한 대로 수베로 감독은 한국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는 수베로 감독의 능력 문제만을 떠나, 처음부터 KBO리그와 한화의 실정에 맞지도 않는 감독을 '리빌딩의 얼굴마담' 역할로 도박을 걸었던 구단의 오판이었다.
한화의 감독 잔혹사
경질의 방식과 타이밍도 문제다. 한화가 수베로 감독으로 성적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면 차라리 지난 시즌이 끝나고 과감하게 결별 수순을 밟았어야 했다. 한화는 비록 9위지만 수베로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던 11일 대전 삼성전에서 4대 0 완승을 거두는 등, 5월 들어 3연승과 연속 위닝시리즈를 달리며 5승 2패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베로 감독을 돌연 내친 것은 구단이 이미 시즌 초반부터 감독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화가 이런 식으로 감독을 갈아치우는 것은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수베로 감독 이전에 한화의 암흑기를 흔히 '삼김이한' 시대로 요약할 수 있다. 삼김은 김인식-김응용-김성근의 베테랑 감독 3인방을 의미하고, 이한은 연고 지역 출신인 한대화, 한화 레전드 출신인 한용덕 전 감독을 뜻한다. 한화는 그동안 팀 재건을 위하여 다양한 개성과 배경을 지닌 감독들을 영입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했다.
이 중 김인식과 김응용 감독은 한화에서 계약 기간을 다 채웠지만, 한대화-김성근-한용덕 감독은 수베로 감독처럼 모두 계약 마지막 시즌을 채우지 못 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KBO리그 역대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감독은 유독 한화에서만큼은 모두 실패하며 KBO리그 감독 커리어를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한용덕 감독은 2018년 첫 해 팀을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2년 연속 성적 부진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대화 감독은 한화의 암흑기가 갓 시작되던 2000년대 후반에 리빌딩 임무를 맡고 부임했다가 실패하고 물러났다는 점에서 수베로 감독과 가장 흡사하다.
이러한 한화의 연이은 감독 잔혹사는 결코 감독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명 감독의 과거 명성에만 의지한다든지, 특정 감독에게 지나칠 정도로 비대한 권한을 몰아줘서 전횡을 초래했던 사례도 있는가 하면, 때로는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고 방치하다가 성적에 대한 책임만 뒤집어씌우고 토사구팽했던 사례가 더 많았다.
정작 감독 개인의 역량이나 언행에 모든 여론의 화제가 집중될 동안, 한화 프런트는 감독 선임과 팀 운영의 실패에 대하여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말로는 시스템을 강조했지만 정작 장기적인 연속성이나 일관성 없이 상황이 불리해지면 몇 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180도 바꾸기 일쑤였다. 내로라하는 감독들을 데려다놓고도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은, 한화가 감독들을 활용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삼김이한과 수베로의 시대를 거쳐 한화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만이 아니라 구단도 함께 공유해야 한다. 리빌딩과 윈나우를 몇 년마다 오락가락하다가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한화는 과연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수베로의 퇴진과 최원호 신임감독의 부임은 한화 감독 잔혹사의 마침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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