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맞아 본 사람? 접니다... 놀이동산에서 경찰 부른 이유

대전광역시노동권익센터 2023. 5. 12. 11: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갑 찾아 연락했더니 돌아온 건 욕설... 자기 자식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은 2023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유진아씨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대전광역시노동권익센터 기자]

 나는 20년 동안 테마파크에서 일한 워킹맘이다
ⓒ 픽사베이
 
눈부신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곤히 늦잠을 자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살금살금 조용히 집 밖을 나선다. 콧노래를 부르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도착한 알록달록 동화 속 나라의 모습을 한 나의 직장. 난 약 20년 동안 테마파크에서 고객 서비스 업무를 하는 워킹맘이다.

개장 전에도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입구부터 길게 줄 섰다. 늘 보던 모습이지만 부담감과 압박감이 마음 한쪽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괜찮아~할 수 있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잘 지나갈 거야!!'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아직 아무도 없는 광장을 씩씩한 발걸음으로 당당히 지나간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르바이트 친구들에게 오늘 신경 써야 할 업무들과 주의 사항 등을 알려주고 "바쁘고 힘들겠지만, 힘내고 무사히 하루 잘 보내자"고 다독이며 조회를 마쳤다. 어린 친구들을 보며 20여 년 전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이 친구들보다 훨씬 더 미숙하고, 감정 조절이 안 되었던 나의 사회 초년생 모습이다.

돈으로 맞아보니 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입사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창한 봄날, 8살 정도 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한 남성 고객이 매표소로 왔다. 

"자유 이용권 두 장 줘봐"라는 말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속으로 '지금 반말한 건가' 생각하며 "고객님~혹시 할인 카드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아니 없고. 빨리 자유 이용권 어른 한 장, 어린이 한 장 달라고. 내가 지금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순간 정신이 나가 버렸다. 첫 사회생활이었고, 이렇게 대놓고 반말로 화내는 고객도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그때부터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티켓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고객님, 왜 반말로 말씀하시나요?"라고 묻자 "뭐라고? 야! 이게 어디다 대고"라며 남성 고객이 소리를 지르며 잔돈을 내 얼굴에 던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으로 얼굴을 맞아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눈물샘이 터지기 일보 직전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라며 후회하고 있을 때, 뒤에서 기다리시던 다른 고객이 "표를 샀으면 빨리 좀 비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다행히 그 남성 고객이 자리를 비켰다. 그 고객 옆에서 아이가 돈을 던지는 아빠 모습에 놀랐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 표정에 놀랐는지, 동그랗게 토끼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내게 트라우마가 된 거 같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난 현장에서 티켓 판매하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한다. 내가 겪었던 일을 이 친구들이 겪지 않길 바라며 끊임없이 교육하고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때론 로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화나도 웃고, 아파도 웃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만 훗날 나처럼 가슴 깊이 아물지 않는 상처가 생기지 않게 된다는 것을.

드디어 기다리던 개장 시간. 입구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뛰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인기 있는 놀이기구 앞에는 아르바이트생이 막대기를 들고 아이들의 키를 쟀다. 길게 줄 서 있는 사람 중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이 키를 쟀는데 아이가 작아 놀이기구를 탑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부모는 당황하며 아이를 달랬다.

고객 : 우리 저기 있는 거 타자. 저게 더 재미있어. 우리 00이 우유 많이 먹고 더 커서 이거 타러 오자.
근무자 : 고객님, 죄송합니다. 다음에 아이 키가 좀 더 크면 탑승 부탁드릴게요.
고객 : 아니에요. 저희가 아이 키를 미처 몰랐네요. 죄송해요. 다음에 올게요.

근무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고객센터에서 이런저런 민원을 상대하며 정신없이 보내고 있을 때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오셔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할머니 : 아니, 우리 아들이 여기 아르바이트하는 직원을 살짝 때렸는데 글쎄 그 아이가 경찰에 신고해서 지금 우리 아들이 경찰서 가게 생겼어요, 그 직원 좀 말려줘 봐요.
: 고객님,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할머니 : 우리 손자가 키가 조금 모자란다고 놀이기구를 안 태워주더라고. 그래서 우리 아들이 화가 나서 그 직원 뺨을 살짝 때렸어. 그랬더니 그 직원이 자기 오늘부터 여기 그만둘 거라고 하면서 경찰을 불렀잖아. 그래서 지금 경찰이 와있어요.

놀이기구는 안전상의 이유로 탑승 신장이 정해져 있어서 조금이라도 신장이 미달이면 탑승할 수가 없다. 그 직원은 매뉴얼대로 업무를 잘했고, 그 고객은 금쪽같은 내 자식이 키 때문에 못 탄다는 안내가 듣기 싫었는지 직원에게 손을 댄 것이다. 그리고 고객센터로 오신 할머니 역시 금쪽같은 자기 아들이 경찰서 간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던 것이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인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한 20대 청년의 뺨을 때리다니... 그런데도 자기 자식을 위해 그 친구를 말려 달라고? 속으로는 100% 경찰을 부른 친구의 편이었다. 그 상황에서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자기는 이제부터 여기 직원이 아니니 경찰을 부르겠다'라고 한 용기도 멋져 보였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곧이어 놀이기구 담당 직원 관리자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한참 후에 돌아오신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찰이 와서 상황을 진정시킨 후 직원을 때린 고객과 직원이 함께 경찰서로 갔다. 담당자 역시 이 일은 절대로 우리 직원 잘못이 아니라며 100% 직원 편이라고 해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에게 손을 댄 그 고객이 경찰서에서 제대로 교육받았기를 바랐다. 또한, 내 자식이 남의 귀한 자식 뺨 때린 것보다 경찰서 가는 것을 먼저 걱정하며 말려달라고 하셨던 할머니께서도 뺨 맞은 그 어린 청년의 마음을 우선 헤아리셔야 했다는 것을 깨달으셨기를 바랐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몸도 마음도 많이 다쳤을 것 같은 그 아르바이트 친구는 이 일이 큰 상처가 되지 않았길 바라며 앞으로의 인생에 꽃길이 가득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호의가 칼이 되어 돌아올 때
 
 테마파크에서는 별별일이 일어난다
ⓒ 픽사베이
 
어느새 폐장 시간이 다가왔고, 입가에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는 고객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구나' 하며 슬슬 업무를 마감했다. 그때 고객센터로 허겁지겁 들어오는 젊은 커플 한 쌍.

고객 : 제 지갑이 여기 있다고 방송 듣고 왔어요.
: 고객님 혹시 이거 맞나요?
고객 : 맞아요. 정말 감사드려요. 얼마 전에 선물 받은 거라 못 찾을까 봐 걱정했었는 데 진짜 감사드려요.
: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방송 못 들으실까 봐 걱정했거든요.
고객 : 아 정말 감사해요. 이거 별거 아니긴 한 데 정말 감사해서 사 왔어요. 같이 드세요.

고객님이 내미신 건 비타민 음료수 한 박스. 특별히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음료수를 주시니 괜히 머쓱해졌다. 그리고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떠오른 몇 년 전의 일.

폐장 시간이 임박했고, 그날도 역시 고객센터로 습득된 분실물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지갑이 있어서 확인해 보니 마침 지갑 속에 신분증과 연락처가 적혀있는 명함이 있었다. 지갑 주인 명함이길 바라보며 전화를 걸었다.

고객 :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000님 맞으신가요? 여기 대전 000입니다.
고객 : 그런데요?
: 여기에 고객님 지갑이 습득되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고객 : 야 이 @#$%&**!!! 내가 그 지갑 찾으려고 거기 얼마나 돌아다닌 줄 알아? 왜 이제 연락해?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물건을 찾았다 전화하면 대부분 기뻐하고 고마워 하는데 지금 이 고객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마치 내가 뭘 잘못한 것처럼 나를 향해 욕을 섞어 화를 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침착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 아~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분실물이 많을 때는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일도 있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갑은 택배로 받으실 수 있는데 주소 불러주시면 저희가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이 고객은 화를 실컷 내고 나서야 주소를 알려줬다. 택배로 받을 때는 착불이라고 안내해야 하는데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택배비를 선불로 내고, 지갑을 보냈다.

분실물을 찾아서 돌려준 호의가 칼로 되돌아와 사정없이 찔러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모두가 꽃을 보며 행복해하는 봄날의 어느 일요일 저녁,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결국 아무도 모르게 퇴근길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그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엄마~언제 와!! 우리 저녁 뭐 먹어?"
"응~엄마 지금 가고 있어~우리 오랜만에 외식할까? 가서 꽃구경도 할까?"

오랜만에 웃으면서 하는 기분 좋은 퇴근길이다. 먼저 자기 아이 키를 제대로 몰랐다고 인정하고,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아이를 달랬던 고객님. 지갑 찾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음료수를 건넸던 예쁜 커플. 오늘 하루는 다른 어느 날보다도 기분 좋은 하루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감정노동자도 누군가의 부모, 자식인 내가 사랑하는 가족 중 한 사람이다. 모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좀 더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꽃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이런 나의 바람이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기를, 거창한 것이 아니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