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한다… 초진·의료사고 책임은 어떻게?

신은진 기자 2023. 5. 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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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정
비대면 진료 초진허용 여부와 책임 소재를 두고 보건의료계와 산업계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위의 사진은 비대면 초진과 관계 없음. /보건복지부 제공
오는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조정된다. 위기 단계 하향에 따른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비대면 진료다. 비대면 진료는 그간 코로나 위기 '심각' 단계에 한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위기 단계가 하향되면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 된다. 정부는 입법 공백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자가 불법행위자가 되지 않도록, 위기 단계 하향 시점에 맞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둘러싼 보건의료계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 간 갈등은 첨예하기만 하다. 쟁점은 크게 ▲비대면 진료 범위와 ▲의료·약물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헬스조선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주요 쟁점과 전망을 살펴봤다.

◇안전성 최우선 '재진' vs 편리하게 '초진'… 양보 없는 의료계-산업계
비대면 진료를 재진부터 허용해야 한다는 의료계와 코로나 펜데믹 상황과 같이 초진부터 허용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료계는 산업계의 주장이 일말의 가치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비대면 초진이 허용된 지난 3년간 의사들이 직접 경험한 비대면 진료의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헬스조선이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비대면 초진으로 인해 환자가 부작용을 겪어 다시 대면 진료가 필요한 경우는 다수였고, 비대면 초진을 받은 환자가 적절성을 의심해 다른 의료기관에서 다시 대면진료를 받은 사례도 확인됐다.

피부과 전문의 A씨는 "비대면 진료로 여드름 치료제 '이소티논'을 처방받아 복용한 후 너무 심한 안구건조증이 생긴 환자가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며, "대면 진료를 하니 이 환자는 이소티논이 불필요한 상태였고, 잘못된 처방으로 심한 안구건조증만 생긴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소트레티노인 계열 약물인 이소티논은 다른 치료법으로는 치료 효과가 없는 중증 여드름 치료제로, 단순 피질조절 등에는 사용이 제한된다. 이소트레티노인은 임신 중 한 알만 복용해도 태아 기형을 유발해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는 약물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B씨는 "비대면 초진으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은 환자가 이 약을 먹어도 괜찮은 거냐며 다시 진료를 받으러 온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B씨는 "초진임에도 비대면 진료에선 키나 몸무게, 기저질환도 물어보지 않고 무슨 약을 원하느냐 묻더니 그대로 처방해주자 불안해진 환자가 직접 다른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며, "실제로 처방약 일부는 환자에게 적절치 않아 재처방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를 통해 다이어트 약물, 발기부전 치료제 등 비급여 진료·처방이 상당히 많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비급여 진료는 부작용 보고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얼마나 많은 환자가 비대면 진료 부작용을 겪었을 지 짐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들의 사례는 '예외적인' 비대면 초진 부작용 사례가 아니다. 비대면 플랫폼 업체 '닥터나우'는  이소티논 사진에 '매번 가서 처방받는 여드름 약, 이제 앱으로 쉽게 받으세요'라는 문구를 삽입해 인스타그램 등 SNS에 광고를 했고, 이후 부적절 처방이 다수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에 따르면, 비대면 초진을 주로 시행한 B 의원은 이소티논 부당청구 금액만 약 3억원에 달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비대면 진료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해 안전하게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맞다"며, "비대면 진료를 재진부터 허용하는 건 협의 불가능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계는 편의성 측면에서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조사를 통해 일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환자의 99%가 초진환자로 확인됐다며, 법이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대면 진료를 초진, 재진 구분하는 건 의미 없다고 보고 있다. 초진, 재진은 심평원에서 건강보험 부담금 때문에 만들어진 분류 체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비대면 플랫폼 업체인 닥터나우 전신영 홍보총괄이사는 "환자 부담금만 다르게 내면 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초·재진의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대부분의 비대면 진료는 아주 간단한 처방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어나며, 이미 진료 선택권은 의사에게 있다"고 말했다.

물론 산업계는 초진 허용 불가를 주장하는 의료계의 입장은 인지하고 있다. 업계는 환자 정보가 더 많이 확보된 재진이 의사에게 부담이 적기 때문에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또다른 비대면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환자에 대한 정보가 없는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 진료의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커져, 초진 허용에 굉장히 우려를 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 산업계 일각에선 진료가 원활하지 않은 소아과 등 일부 진료과목만이라도 초진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초진 허용 예외과목으로 언급되는 전문의들은 절대 허용 불가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대면진료를 해도 의료사고 위험이 더 큰 게 소아과"라며, "아이들은 의사표현이 서툴어 의사가 직접 진찰해야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소아 질환 중 하나인 '후두개염'의 경우, 증상은 기침, 목 통증 등으로 일반 감기와 비슷하지만,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10~30분 내에 사망한다. 진찰을 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질환이나, 비대면 진료를 통해 증상만을 얘기했을 땐 확진이 불가능하다.

◇환자 사고 나면 책임은 누가?
두 번째 쟁점은 안전사고 발생에 따른 책임소재다. 비대면 진료 후 환자의 건강이 악화하거나 또다른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와 비대면 플랫폼업체, 약을 조제한 약사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의료계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비대면 진료에서도 의사가 대면진료와 같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내부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다만, 비대면 진료의 특성을 고려한 단서조항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봉식 소장은 "의사가 비대면 진료 과정에서 대면진료가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환자가 이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면, 이에 대한 의사의 면책 조항이 필요하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고 밝혔다. 그는 "복약지도의 경우, 지역약사회와 협업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약사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대한약사회는 팬데믹 상황과 같은 체계의 비대면 진료 약 전달은 '절대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약사회 관계자는 "부득이하게 비대면 진료와 약 전달 시범사업을 하겠다면, 기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시범사업에 참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약사회는 ▲환자 중심의 약국 선택권 보장 ▲플랫폼 개입 없는 약사 주도의 합법적 약 전달 ▲비대면 플랫폼 업체 불법행위 관리·감독 기구 마련 ▲동일성분조제 활성화와 사후통보 간소화 ▲표준화·개방화 한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이 이뤄져야만 시범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업계는 이미 의사와 약사 중심의 비대면 진료와 약 전달이 이뤄지고 있어, 플랫폼 입장에선 책임소재에 대해 언급하기 곤란하다고 전했다. 닥터나우  전신영 이사는 "지금도 진료 요청서를 보고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12% 정도로 나타난다"며, "의료진들은 이미 진료 요청서를 보고 비대면 진료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책임소재와 관련해 법이 개정된다면, 의료진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항목이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또한 비대면 진료로 가능한 질병과 그렇지 않은 질병을 명확히 나누는 규제가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미 윤곽 잡힌 시범사업, 이르면 다음 주 중 발표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갈등이 첨예하지만, 헬스조선 취재를 종합해보면 정부는 이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획수립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부는 현장의 준비기간 등을 고려, 이르면 다음 주 중 구체적인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한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산업계는 오늘(12일) 오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비대면 진료를 초진까지 허용하라는 주장을 펼칠 예정이나 이들의 주장이 수용될 가능성은 작다.

시범사업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비대면 진료 관련 법안 의료법 개정안 5개(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최혜영, 신현영 의원, 국민의힘 이종성, 김성원 의원안)를 기반으로 하되, 정부와 의협이 지난 2월 9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합의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 원칙을 반영하는 것으로 가르마를 탔다. 당시 정부와 의협은 ▲대면 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 ▲재진 환자 중심 운영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실시 ▲비대면 진료 전담 의료 기관 금지에 대해 합의했다.

여기에 의협은 ▲비대면 진료를 도서·산간·벽지 등 의료 취약지 환자와 중증 장애인 등 신체적 거동이 불편·불가능한 환자에 우선 적용할 것과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 등 중독·오남용 위험 의약품의 처방 제한을 추가로 요청한 상태인데,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자문 회의 등을 통해 안전성 측면을 최우선 원칙으로 판단한 결과로 전해진다.

의료계 관계자는 "당장 6월부터 국민이 불편함 없이 시범사업을 이용하려면 적잖은 준비가 필요해 시간이 촉박한 상황임을 정부도, 의료계도 인지하고 있다"며 "다음 주 중 세부내용 발표를 목표로 구체적인 시범사업 내용을 조율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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