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10.19 명예교사로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이뤘어요"

김현주 2023. 5. 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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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10.19 조선자 유족, 순천성동초등학교 평화·인권 명예교사로 위촉

[김현주 기자]

여순10.19사건 75년, 여순10.19 특별법이 제정된 지 2년이 흘렸다.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순천성동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여순10.19를 깊이있게 배우는 '여순10.19 사건 Deep Learning(딥 러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5월 8일에는 여순10.19사건에 대해 배우는 개관수업, 5월 10일에는 유족과의 만남과 평화써클, 5월 11일~12일에는 여순10.19 평화공원과 동천 일대 유적지 탐방이 진행된다.

5월 10일 오전에는 여순10.19 조선자 유족, 박소정 '여순10.19 범국민연대' 대표와 학생들과 의미있는 만남이 이뤄졌다.
 
 여순10.19 조선자 유족에게 주경진 순천성동초등학교장이 ’여순10.19 평화인권 명예교사‘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이 날 순천성동초등학교는 여순10.19 조선자 유족에게 '순천성동초등학교 학생들의 평화・인권교육을 위한 여순10.19 명예교사' 위촉장을 수여했다.
조선자 유족은 "초등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했지만 형편상 더 배울 수 없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이 있었는데, '여순10.19 명예교사'로 학생들 앞에 서게 되니 감개무량하다"라며, "오늘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이뤘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여순10.19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 위촉장
ⓒ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조선자 유족의 아버지(조영두, 당시 25세, 상사면)는 1948년 11월 5일 진압군에 끌려가 순천경찰서에서 희생당했다. 당시 조선자 유족(75세)은 어머니 뱃속 4개월이었다. 여순10.19 사건이 흐른 지 75년이 지났고, 조선자 유족의 나이도 75세로 여순10.19 사건의 아픈 역사와 한 생을 같이 했다.

조선자 유족과 함께 살아온 할머니는 "니 아부지는 너무 잘 생기고 똑똑했어. 마을 일을 많이 도와줘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좋아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자 유족과 학생들의 만남을 진행한 박소정 대표(여순10.19범국민연대)는 "조선자 유족의 아버지가 살았던 상사면 서정마을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고, 주로 마을 일을 많이 했던 젊은 사람들이 희생을 많이 당했다"고 조사되었다고 전했다.
 
 5월 10일 순천성동초등학교 강당에서 진행한 여순10.19 조선자 유족과 6학년 학생과 만남. 진행은 박소정 여순10.19범국민연대 대표가 맡았다.
ⓒ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서정마을에 들이닥친 진압군과 경찰은 한 젊은 사람을 두들겨 팬 후 그를 내세워 '산에서 온 사람들에게 협조한 사람을 지적해라' 했고, 그는 조선자 유족의 아버지와 젊은 사람을 손가락총으로 지목했다.

지목당한 조선자 유족의 아버지와 젊은 사람들은 상사지서에서 조사받고 경찰서로 끌려갔으며 조선자 유족의 아버지는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박소정 대표는 "여순사건 때 손가락총이 나왔어요. 혹시 여러분도 친구가 미우면 잘못하지 않았어도 '저 친구가 그랬어요. 저 친구가 잘못했어요'라고 손가락질 한 적은 없나요?"라고 물었다. 이어 "손가락질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총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아버지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자 유족에게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버지 이름을 실컷 불러보고 카네이션도 달아드리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재롱부리고 아버지 사랑은 맘껏 받아보고 싶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하는 조선자 유족의 이야기에 몇몇 학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조선자 유족의 사연은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가 엮은 <여순10.19 증언록> 1편에 실려있다.
ⓒ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암흑 같은 긴 터널을 지난 지 73년 만인 지난 2021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2019년 여순10.19연구소를 만나 증언을 하는 조선자 유족
ⓒ 10.19연구소
조선자 유족은 "그날 국회 앞마당에서 통과 소식을 듣고 부둥켜 울었어요. 하늘에 대고 '아버지 아버지 이제 됐어' 모든 유족들이 외쳤어요"라고 회상했다.

고단했던 세월, 서럽고 원망스러웠던 감정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아버지의 억울함이 풀려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박소정 대표는 "여순사건은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1948년 당시 군법회의가 열렸던 성동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유족과 함께 만나게 되어 감격스럽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학생들과 40분간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조선자 유족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제대로 공부해서 좋은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멋진 사람이 되세요."
 
 유족과의 만남 이후 학생들과 함께 여순10.19를 통해 생각해보는 평화, 인권에 대한 써클을 김성근 센터장(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이 진행하고 있다.
ⓒ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조선자 유족과 만남에 이어 진행된 평화써클에서는 '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유족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여순10.19를 통해 우리 지역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는 작은 씨앗 하나가 학생들의 가슴에 남는 시간이었다.

주경진 순천성동초등학교장은 "우리 지역의 가슴 아픈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인 여순10.19사건을 6학년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 활동으로 깊이 있게 배우는 시간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순천성동초등학교 6학년과 함께하는 '여순10.19 마을교육과정'은 학교교육과정과 연계하고,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지역의 마을교육활동가들과 함께 협력해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여순10.19 유족과의 만남은 순천시 자치행정과 여순 담당 공무원, 여순10.19 범국민연대의 지원으로 추진되었다.

순천성동초등학교와 함께 여순10.19 마을교육과정을 준비한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은 "여순10.19 75주년을 맞이하여 순천성동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학교에서 여순10.19를 깊이있게 배우고 여순10.19 유족들을 만나서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는 교육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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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순천광장신문에도 기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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