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저승사자' 나타났다…존재감 커진 與 윤리위
"태·김 모두 공천 받기 어려울 것" 전망
재심 청구·가처분 신청 시나리오도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 공천에서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윤리위의 중징계로 대표직에서 물러난데 이어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까지 당원권이 정지되며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 공천이 불투명해지면서다. 내부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당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꾸려진 당 윤리위가 2년째 당 지도부의 '정치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칼날이 된 것이다.
'당원권 1년 정지' 김재원, 재심 신청할까?
12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당 윤리위는 지난 10일 김재원 수석최고위원과 태영호 의원에 대해 각각 당원권 정지 1년과 3개월 징계 처분을 내렸다. 김 최고위원은 극우성향의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반대" 발언에 이어 "전광훈 목사 우파진영 천하통일" 강연, "제주 4·3사태는 격 낮은 기념일" 등의 잇따른 설화가 징계의 발단이 됐다. 태 의원도 북한 김일성 지시로 제주 4.3이 촉발됐다는 발언과 더불어민주당을 종교집단 JMS에 빗댄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논란이 됐다.
특히 김 최고위원은 1년간 당원권이 정지되면서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 공천을 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이번 윤리위 결정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를 지지해준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라며 "앞으로 우리 당과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서 계속하겠다"고 썼다.
다만 17대 총선에서 고향인 경북 군위군·의성군·청송군에 출마해 첫 금배지를 단 김 수석최고위원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한 만큼 이번 징계에 불복해 윤리위에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효력정지 가처분 등 법적 절차를 밟는 선택지도 있다. 앞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은 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의 경우 지난해 6월 성희롱성 발언으로 당 윤리심판원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은 뒤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윤리위 징계를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한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1일 CBS 라디오에서 "(김 최고위원과)40년 지기"라며 "김 최고위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가처분 신청을 하거나 탈당하는 식의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 수석최고위원은 18대 총선에서 당시 당내 주류였던 친이(친이명박)계 김동호 변호사에 밀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승복하고 당적을 유지했다. 20대 총선에서도 지역구 경선에서 타락한 뒤 백의종군했다.
'공천 저승사자' 윤리위
당 윤리위가 무게감을 드러낸 시점은 지난해부터다. 그동안에도 당 윤리위는 각종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당 소속 정치인들을 처벌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 잇따라 '당원권 정지' 중징계를 내리면서 당 지도부의 정치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저승사자로 부상했다.
윤리위는 지난해 7월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내렸고, 3개월 뒤 이 전 대표가 '양두구육', '신군부' 등 표현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당을 비난했다며 당원권 1년 정지를 추가 처분했다. 이 전 대표의 경우 당원권 정지가 총 1년 6개월로, 내년 1월9일 당원권이 회복되더라도 당 소속 출마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당규는 '공천은 선거일 45일 전까지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는데, 공천은 책임 당원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당규에 따르면 책임당원은 당비를 1년 중 3개월 이상 납부해야 한다. 내년 총선(4월10일) 45일 전까지 공천을 완료하기 위해선 내년 3월1일 전에 공천을 완료해야 하는만큼 이 대표는 책임당원 기준에 부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지난 10일부터 1년 동안 당원권을 잃게 된 김 최고위원의 공천 기회도 사실상 사라졌다.
지난 2년간 윤리위가 사실상 '지도부 정리'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과정에서는 당시 윤리위원과 비상대책위원장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보도되며 '하명 징계' 비판도 있었다.
이번에도 윤리위 징계 결정 직전 자잔 사퇴한 태 의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의 경징계를 받으면서 당내 반발이 나온다. 당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윤리위의 결정에 아쉬움이 남는다. 자진사퇴라는 길을 택하면 공천 신청이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천 신청이 불가능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물으면서도 100% 당원투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에게 총선 출마를 위한 퇴로 정도는 남겨주길 바랐다"고 썼다. 사퇴와 공천을 저울질한 윤리위의 결정을 지적한 것이다.
당 윤리위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기구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유 수석대변인은 "윤리위가 당의 사법부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당원의 말이나 행동이 국민적인 신뢰를 손상하고 그것을 통해 당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경우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윤리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리위는 사법기관이 아닌 당의 조직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례로 김 최고, 태 의원의 경우 사법적인 차원의 문제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하겠다는 건 중도층의 눈높이를 고려한 당의 결정이다. 정치적인 차원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도 "윤리위가 중립적이고 정치적이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 철저하게 정무적 판단을 하는 집단이 윤리위"라며 "만약 윤리위가 정치적으로 중립이라면 황정근 위원장이 '정치적 해법' 발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달 9일 최고위원 보궐선거태 최고위원의 자잔 사퇴로 인해 국민의힘은 다음 달 9일 최고위원 1석을 다시 뽑는다. 당은 오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궐선거 관련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는 선출직 최고위원이 궐위시 그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에서 최고위원을 선출한다고 명시한다. 지난해 12월 '100% 당원투표 룰' 표결 당시 기준 국민의힘 전국위원은 790명이다.
이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꾸려지며 보궐선거 투표 방법과 선거운동 기간 및 방법, 선거일 등 전반을 결정된다. 그동안 선관위는 법제사법위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사무 1·2 부총장이 당연직으로 포함됐다.
당 지도부는 최고위원 보궐선거를 잡음 없이 치르기 위해 조만간 교통정리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경선 대신 1명의 후보로 사전에 압축해 사실상 추대하겠다는 것.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이만희, 박성중 의원과 3·8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던 이용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모두 친윤 진영 의원들이다.
하지만 친윤계 일색의 지도부가 또다시 실책할 경우 퇴로가 없을수 있는 만큼 '호남 배려'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 핵심관계자는 "전체 전당대회가 아니라 당원 대표인 전국위에서 뽑기 때문에 당대표와 의중이 같은 사람들"이라며 "현재 최고위원 중 호남이 없고, 선출직으로 호남 출신이 뽑히기는 힘들기 때문에 호남 기반을 배려하는 등 지역 안배나 균형이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당내 유일하게 호남 지역구를 둔 이용호 의원, 비례대표이지만 전주에 기반을 둔 정운천 의원이 거론된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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