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김남국에게 가난을 도둑 맞았다 [기자수첩-정치]
후보 시절엔 "100만원은 절박함" 호소키도
정치인 위선 지적해놓고 '가난한 청년' 행세
'문제 없는 투자'라면 의문점 남기지 말아야
박완서 소설 '도둑 맞은 가난'은 부자들이 자신의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하기 위해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행태를 꼬집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 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고 말한다. 1975년에 발표된 소설 속 상황과 약 50년 후 현재의 괴리가 크지 않은 건 누군가는 지독하게 끊어내고 싶은 가난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가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와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길거리 음식을 먹거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등의 행위를 일삼는다. 이는 선거 때 특히 자주 볼 수 있는데, 잘 되면 서민 이미지 구축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에 성공한 대표적인 정치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의 2007년 대선 당시 '국밥 광고'는 서민 출신으로 샐러리맨 신화를 쓴 그의 소탈한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이때 형성된 '서민 이미지'는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됐다.
반대로 실패하면 서민인 척 행세했다는,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 비난을 받게 된다. 거액의 가상화폐(코인) 투자·보유 의혹에 휩싸인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 의원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산 안경을 20년 동안 썼다는 것, 변호사 시절에도 부친의 차를 물려받아 24만㎞까지 탔다는 것 등을 언급하며 이렇게 자기가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내돈내투'(내 돈으로 내가 투자)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생을 짠돌이로 살았기 때문에 '서민 코스프레'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국민은 김 의원의 절약, 투자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수십억원대 코인을 손에 쥐고서 국민에게는 가난한 청년 정치인 행세를 했다는 것에 분개하는 것이다.
김 의원은 2020년 3월 국회의원 후보 시절 후원금 모금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영상에서 "김남국 후보에게 100만원은 절박함이다" "'다음 달에는 100만원만 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언급했다. "매일 라면만 먹었다" "3만7000원 주고 산 운동화에 구멍이 났다" 등의 말도 했다. 심지어 2021년 6월엔 "제가 돈을 번 건 비트코인이 아니고 진짜 아끼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안 사먹고…"라고 했다.
코인 자산이 60억원대였다는 지난해에도 후원금을 모금하면서 "후원금이 텅텅 비었다. 정말 아껴쓰겠다. 꼭 필요한 곳에만 쓰겠다"면서 "지난해 지방선거 부산 지원 유세 때는 방 두 개 안 빌리고, 모텔에서 보좌진이랑 셋이서 잤다"고 호소했다. 당시 김 의원은 3억3014만원을 모금해 국회의원 중 1위를 차지했다.
김 의원은 이렇게 자신을 '검소함'의 상징으로 띄우면서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는 지적해 왔다. 그는 2021년 11월 "집은 막 30억, 40억 아파트에 사는데 가방은 다 낡은 가방 들고 다니고. 이제 그런 컨셉 버려야 된다"고 했다.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 이틀 전 본인 소유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대폭 올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질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러니 김 의원을 향해 '서민 코스프레'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의혹이 불거진 초반 "한동훈 검찰 작품" "이준석이 하면 자랑이고 내가 하면 문제냐" 식으로 받아친 것도 공분을 살 줄 몰랐다면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같은 당 의원조차 "구멍 난 운동화 신고 다니고 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아끼고 살았다고 한 사람이 나중에 보니 60억원 추정되는 것을 뒤에 숨겨 놓고 있었다고 하니까 깜짝 놀란 것"이라고 지적했을까.
"진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사람은 라면을 먹었다고 자랑하지 않고, 진짜 구멍 난 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기가 청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고 했다. 결국 김 의원 본인의 주장대로 '문제가 없는 투자'였다면 소위 말하는 '잡코인'에 투자하게 된 경위와 자금 출처, 자금 행방 등에 관해 어느 하나라도 의문점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야만 '서민 코스프레'를 한 게 아니라는 김 의원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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